[스크랩] 2016년09월29일(목)~10월14일(금)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14박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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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도보여행기 길 위에서 지나온 내 인생을 만나다
힐링 스토리
육십이 되어서야 비로소 나를 위한 여행을 결심한 어느 중년의 여행자가 있다. 그의 발길이 닿은 곳은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까미노)’. 물결치는 밀밭, 올리브나무 숲, 포도밭…. 끝없이 펼쳐지는 길 위에서 그는 지나온 인생을 만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어느 불자의 산티아고 입성기
어느 날 환갑이란 놈이 냉큼 이마 위에 붙었다. 앞만 보며 달려온 세월을, 이제는 한번쯤 정리해보고 돌아봐야 한다는 책임의식 같은 것이 나를 자꾸 재촉해댔다. 그동안 여러 도시를 여행했지만, 나만의 여행은 아니었다. 그래서 이번만은 온전히 나를 위한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그 순간 산티아고 순례길이 내게로 왔다. 백지 위에 그림을 그리는 심정으로 사전 지식 없이, 불자인 내가 예수의 제자 야고보가 복음을 전하러 떠나던 길을 가보는 것은 어떨까. 기대감도 들었다.
헬스조선에서 진행하는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 여행의 참가자들은 나와 연배가 비슷했다. 우리는 프랑스 툴르즈에서 창밖에 스치는 프랑스 남부의 풍광을 보면서 성모 발현지 루르드 샘에 도착했다. 병고에 시달리는 많은 사람이 ‘기적의 샘’에 모여들었고, 성모상 앞에는 기도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세계 각국의 신도들이 자원봉사로 헌신하고 있다. 한국 수녀도 와 있다고 하여 혹시 만날 수 있을까 했는데, 역시나 환하게 웃으며 반갑게 인사 해주는 수녀님을 만났다. 천주교 신자라고 오해하는 수녀님에게 불자라고 어렵게 말을 꺼내니 “이곳까지 온 인연에 감사하세요” 하며 꼭 잡아주는 손에 온기가 따뜻했다. 실례가 될 것 같아 수녀님 손에 쥐어드리지 못한 적은 금액을 기부함에 넣고 감사 마음은 내 가슴에 담았다.
이곳은 날씨도 변화무쌍하여, 산티아고 순례길이 시작하는 생장으로 출발하려는 순간 우박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뜻밖의 대대적인 환영인사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루트가 여럿 있지만 사람들이 가장 많이 걷는 길은 ‘프랑스 길’이다. 800km에 달하는 대장정이 시작하는 곳은 생장 피에 드 포르라는 마을이다. 생장에 도착해 먼저 해야 할 일은 까미노를 걸으며 찍어 가야 할 순례자 여권을 만드는 일이 다. 이때 참 가슴 설렌다.

밀밭, 올리브나무 숲, 유채밭 그리고 고향
드디어 순례 첫날, 스페인 생장 피에 드 포르에서 스페인 론세스바예스까지 무려 27km를 걸어야 한다. 심지어 그 길은 피레네 산맥 위를 지난다. 숨차고 힘들다는 생각은 해볼 겨를도 없었다. 훅훅 내뿜는 열기 속에 60년간 채우고 살던 욕심이 쑥쑥 빠져나가고 피레네가 내 가슴으로 들어왔다. 자욱한 안개 속을 헤치고 나가니 십자가가 세워진 무덤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작은 돌멩이 하나를 무덤가에 올려놓았다.
‘천국도 이렇게 아름답겠지요? 당신은 행복한 영혼입니다. 나의 천국도 이러했으면 좋겠습니다.’
‘롤랑의 샘’은 해발 1378m에 솟아나고 있었다. 먼 옛날 피레네를 넘은 순례자가 이 샘을 만났을 때 얼마나 반가웠을까? 생명수 앞에서 숙연한 마음으로 물 한 모금을 들이켰다. 오직 신만이 베풀 수 있는 자애로움에 고개 숙여졌다.
이튿날 길은 푸엔타 라 레이나에서 에스테야까지 이어져 있었다. 녹색 물결 치는 밀밭 사이로 어머니가 점심 소반을 머리에 이고 들로 나가고, 미루나무 몇 그루 서 있는 초원 위로는 석양을 지게에 진 아버지가 황소 몰고 오시던 내 어린 시절이 눈앞에 오버랩 됐다. 부모님이 그리워지는 풍광 속을 걸으며 엄마를 찾으러 들에 간 아이가 되어 종일 타박타박 걸었다.
에스테야에서 로스 아르코스로 걷는 날은 비가 살짝 내렸다. 어디쯤에 끝이 있을지 알 수 없는 밀밭, 올리브나무 숲, 유채밭 사이를 걷다보니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평원을 벗어난 길 위에 로그로뇨 관문에 위치한 피에드라 다리로 이어진 에브로강을 가로지르니, 포도밭이 내내 따라붙는다. 포도밭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사이 포도주 수도꼭지가 있는 이라채에 도착했다. 이 지역에는 와이너리가 많아 순례객이 목을 축일 수 있도록 무료로 포도주를 제공해주는 곳이 있다. 포도밭을 따라오기 잘했다 싶다.


어느덧 ‘고독의 길’에 접어들었다.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에 내딛을수록 오크나무 숲으로 빨려가는 듯했다. 다른 순례객과 떨어져 혼자 걸을 때면 혹시 늑대라도 나올까봐 조심스러웠다. 숲을 벗어 나니 끝도 없는 평원 위로 양떼와 젖소들, 시골 거름 냄새 나는 질퍽이는 진흙길, 새소리, 흰 구름 몇 조각 떠가는 푸른 하늘, 쏟아지는 태양 등이 조화로운 모자이크처럼 펼쳐져 있다. 그저 뚜벅뚜벅 걸었다. 어쩌다 만난 마을에서는 개들조차 한가로워 내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뜻 없이 서럽다는 생각이 달려들었다. 뭐라 표현할 길 없는 눈물이 흘러, 엄마 찾아 ‘맴에에 맴에에’ 우는 아기 염소와 같이 울었다.

길은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었다. 깊숙한 시골에는 폐가로 방치된 농가도 종종 눈에 띄었다. 돌이 많은 나라라 석조 건축물이 오랜 세월을 버티고, 전통 가옥에서 후손이 현재를 살아가고 있었다. 1962년 미노강에 지어진 벨레사르 저수지 때문에 옛 포르트마린은 사라졌으나, 새로 지어진 서 아스토르가에 이르는 19km의 평원의 이름이 꽤나 심오했다. 살짝 내리는 비를 하염없이 받아내는 평원은 화려해서 역설적이게도 ‘고독’이란 이름과 잘 맞아떨어졌다. 야생화가 융단을 깔아놓은 듯 펼쳐 있고, 이름 모를 새소리를 들으며, 오랜 역사와 전통의 흔적이 산재한 길을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외로이 우뚝 선 ‘성 토리비오 십자가상’을 만났다.
‘당신도 고독하군요. 우리 모두 그 고독한 길을 가고 있습니다.’



마음으로 걷는 길
순례길에 오른 지 어느덧 중반에 다다랐다. 레온을 출발해 까미노의 마지막 구간이 있는 갈리시아 지역으로 넘어가는, 날이다. 비가 많이 내리기로 악명 높은 갈리시아는, 완주증명서를 받으려는 순례객이라면 반드시 걸어야 한다. ‘악명’을 증명이라도 하듯 초입의 산악지대 폰세바돈에는 비까지 내렸다. 발끝만 내려다보며 걸어야 하는데 어디 그럴 수 있으랴. 야생 라벤더 군락이 눈을 유혹하고, 무궁화를 닮은 꽃나무들까지 아우성이다. 해발 고도 1504m를 통과해야 하는 고난도 등반에 돌투성이 내리막길은 위험천만이었다. 이곳을 지나간다면 자칫 풍광에 넋을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 험난한 여정을 마치고 나니 중세 영주의 성에서 보내는 하룻밤 호사가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푹 쉬고 나서 이른 아침 사리아에서 길을 나섰다. 한 걸음 도시는 옛 전통을 이어가는 듯했다. 우리가 머문 호텔 옆, 2000년 된 성곽을 마주 할 때는 숨이 턱 막혔다. 성곽에 올라 ‘2000년 전에 나는 누구였을까? 여기 어디쯤에 내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봤다. 행복한 미소가 입가에 번졌다.

오늘을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
길에서 소떼를 만나면 길을 비켜줘야 한다. 어미 양이 새끼 양을 품고 있는 모습에서, 첫아이 젖 물리던 모습을 보았다. 푸른 밀밭에 부는 바람은, 어릴 적 내게서 불던 바람이었으며, 진창길을 걸을 때는 사는 것이 힘들어 어찌 살아갈까 서럽게 울던 시간을 반추했고, 유채꽃 만발한 길 위에서는 비로소 오늘을 감사할 줄 아는 진짜 순례객이 되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두 발로 걷는 길이 아니라, 마음으로 걸어야 한다는 것을 산티아고 대성당에 입성하며 깨달았다. 11세기 말 12세기 초에 건축된 대성당이 바로크 풍 건축양식이란 것쯤은 돌아와서 책으로 공부할 일이다. 800km를 걸으며 땅 끝이라 여겨 여기에 복음 하나 전하는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왔을, 그 성인의 기도 소리를 들어야 할 것이다.
원래 순례길에 비하면 내가 걸은 200km는 짧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나를 위한 온전한 여정임에는 틀림없다. 그것을 증명해주는 완주 증명서를 손에 쥐니 마음에 잔잔한 물결이 일었다. 힘들다는 생각이 한 번도 들지 않은 이 길을, 60년 후에 다 비워 가벼워진 몸으로, 이 천국의 길을 다시 걷고 싶다.
TIP. 헬스조선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 걷기’ 떠나볼까?
헬스조선의 가을 프로그램은 200km 9월 7~22일(14박16일), 130km 9월 27일~10월 7일(9박11일) 각각 진행된다. 중장년이나 여성을 위해 코스를 조정해 걷기 편하고 의미 있는 코스만 골라 하루 평균 20km씩 걷는다. 짐은 호텔이나 버스에 두고, 가벼운 배낭만 메고 걷기 때문에 체력 부담이 덜하다. 매일 인근의 4성급 호텔에 머물며 충분히 쉴 수 있고, 이 길을 여러 차례 완주한 한국인 전문 가이드가 동행한다. 올해부터 200km 참가자의 경우, 순례길이 시작되는 프랑스의 생장 피에 드 포르에서 출발해 피레네산맥을 넘는 도전을 하고, 순례자라면 누구나 꼭 한 번 방문하고 싶어 하는 ‘치유의 샘’ 루르드를 방문한다. 산티아고 대성당, 포르투갈 포르토 관광 포함. 1인 참가비 200km 595만원, 130km 445만원(유류할증료·가이드 경비 포함).
[착한여행 - 세계문화유산을 찾아서](4) 산티아고 순례길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6222100005&code=350102#csidx294e0ba313043cb8c9afa55503a0064
ㆍ이 힘든 길 왜 걸을까?…그 길 위에 사람이 있더라

지난 5월22일(현지시간) 순례자 두 명이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의 사리아~포르토마린 구간을 걷고 있다.
배낭을 메고 무작정 걷기 위해 비행기를 14시간이나 타고 가야 한다고? 이건 ‘여행’이 아니라 ‘고생’ 아닐까. 한국에도 걸을 수 있는 길이 많은데, 수천㎞ 떨어진 외국까지 가는 건 낭비 아닐까.

갈림길에서 방향을 알려주는 표지석.
일정표를 받아본 순간 ‘헉’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지난 5월20일 오후 1시 인천공항을 출발, 러시아 모스크바까지 9시간 비행. 2시간을 기다려 비행기를 갈아탄 다음 스페인 마드리드까지 5시간 비행. 여기서 끝이 아니다. 마드리드에서 이 여정의 출발지인 사리아까지 가려면 또다시 기차를 6시간 타야 한다. 이동하는 데만 20시간이 넘게 걸리는 셈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순례자들.
9세기 무렵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인 야고보의 유해가 수습됐다고 알려진 후 1000년 동안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은 길. 제주 올레의 모델이자 걷기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길. 해마다 10만여명이 찾아와 몸은 힘들었어도 마음은 행복했다고 말하는 길. ‘착한여행-세계문화유산 시리즈’(경향신문 후원, 착한여행사 주최) 네 번째 목적지인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사전 지식은 대략 이 정도였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도 이 길이 나왔던가. 마드리드행 비행기에서 기억을 더듬고 있는데 옆 좌석의 여행 참가자 한 사람이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이번 여행을 위해 10년 만에 코엘료의 <순례자>를 다시 읽었어요. 코엘료는 길을 다 걷지 않고 중간에 돌아왔다고 하죠? 왜 그랬을까요?”

순례자 여권(크레덴시알)에 스탬프를 찍고 있는 순례자.
사리아에 도착한 것은 21일 오후 7시(현지시간). 사리아는 스페인 북서부 갈리시아 지방의 작은 마을이다.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로 가는 코스 중 가장 인기 있는 길은 프랑스 남부 생 장 피에드 포르에서 출발하는 ‘프랑스 길(카미노 데 프랑세스)’인데, 사리아는 이 프랑스 길이 지나가는 곳이다. 이곳부터 산티아고 순례길의 종착지인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까지는 117.3㎞. 프랑스 길 전체(약 800㎞)를 걷자면 적어도 30일이 걸리지만, 100㎞만 걸어도 순례길을 걸었음을 입증하는 순례자 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다.

■자연의 선물, 산티아고 순례길
22일 오전 3시, 어둠 속에서 눈을 떴다. 사리아에 도착한 전날 비가 내려 알베르게(순례자 숙소) 내부는 눅눅했다. 알베르게는 한 방에 많게는 100여명이 남녀 구분 없이 2층 침대에서 자는 공동숙소다. 일부는 화장실이나 샤워실까지 남녀 공용이다. 숙박비용은 10유로(1만3000원) 정도. 알베르게 이외에 ‘펜션’이라는 명칭이 붙은 좀 더 안락한 숙소들도 있다.
약간의 한기가 감도는 침대에서 잠을 설치다 숙소 밖으로 나오자 달빛 아래 잠긴 세상이 고요했다. 날이 밝아오자 수도원의 적요함은 청아하고 농밀한 소리로 우는 새소리들의 합창으로 대체됐는데, 풍성한 청각적 쾌감이 다른 감각들까지 일깨웠는지 코끝에 닿는 공기마저 달콤하게 느껴졌다. 알베르게의 공동 주방에서는 부지런한 외국인 순례자들이 이날 하루치의 순례를 위해 배낭을 정비하고 있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한편으로는 자연에 취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과 다투는 여정이다. 여행팀은 매일 평균 20㎞를 걸었다. 첫날인 22일과 23일, 날씨는 ‘환상적’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었다. 밝고 부드러운 봄 햇살이 팔다리에 적당한 탄력을 공급했다. 숲속에서는 개울과 나무와 작은 돌들이 만들어내는 오밀조밀한 풍경이 매 순간 다른 형태로 나타났고, 숲 밖에서는 푸른 대지 너머 탁 트인 시야가 가슴을 뚫어줬다.
현지에서 구입한 우비가 거추장스러운 장식이 아닐까라는 생각은 24일과 25일 이틀 동안 철저하게 깨졌다. 아침부터 1시간가량씩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하는 빗줄기는 우비 없이는 걷기 힘들 정도였다. 알고 보니 이런 날씨가 이 지방의 일상이었다. 이곳의 나무들이 왜 녹색 이끼를 조끼처럼 두르고 있는지 온몸으로 이해됐다. 그러나 몇 차례 날씨의 변덕을 경험하고 나면 비를 맞는 것조차 싱그러운 경험으로 각인되는 것 또한 산티아고 순례길의 매력이다.
고도성장의 엔진이자 부산물인 토목과 건설과 부동산의 나라에서 온 순례자의 눈에 특기할 만한 것은 이 아름다운 길에 숙박과 휴식을 위한 시설이 최소한으로만 설치돼 있다는 점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제주 올레에서 해마다 3개월가량 머물렀다는 정우진씨(39)는 “한국이었다면 수백개의 게스트하우스와 유흥업소가 지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엔 카미노’, 길 위의 사람들
‘부엔 카미노(Buen Camino)’. ‘좋은 길’이란 뜻의 이 말은 스페인어 인사인 ‘올라(Hola)’와 함께 순례길에서 가장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이들은 대략 세 유형으로 나뉜다. 먼저 가톨릭과 개신교를 막론하고 기독교 신앙을 지닌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산티아고 순례는 종교인으로서 스스로에게 지운 자발적 의무에 가깝다. 다른 한 유형은 실존적 고민을 안고 떠난 이들이다. 인생의 결정적 고비에서 벽에 부딪힌 이들은 무거운 배낭을 메고 오로지 자신과 자연만이 있는 이 길을 걸으면서 해답을 찾는다.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을 만큼 가치를 인정받은 길 자체의 매력은 수많은 트레킹 마니아들의 발길도 잡아끈다. ‘부엔 카미노’는 서로 다른 이유로, 각기 다른 나라에서 온 순례자들이 서로에게 건네는 격려와 위로, 공감과 연대의 인사말이다.
첫날 포르토마린으로 가는 길에서 만난 한 영국 노인은 돌담에 걸터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세례명인 ‘파도바의 안토니오’라고 소개했다. 이 순례길을 찾기 위해 아내와 함께 10년 동안 준비했다는 그는 돌담에 앉은 천사처럼 평온한 모습이었다. 셋째날 길가에서 50대 한국 여성을 만났다. 혼자서 800㎞를 걷고 있다는 그는 2년 전에도 산티아고 순례를 계획했지만 직장 때문에 실행에 옮기지 못하다가 지난 4월에야 스페인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길에서는 세 가지가 전부예요. 먹고 자고 걷고. 그리고 하나 더 있죠. 깊은 생각.” 그는 “길에서는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걷다 보면 항상 만나는 사람들이 있어요. 잠깐 이야기를 나눠요. 그러고는 자신의 페이스대로 걸으면서 다시 헤어지게 됩니다. 신기한 건 걷다 보면 또 어디선가 만나게 된다는 거예요.”
말이 통하지 않아도 교감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달은 것은 마지막 날이었다. 다른 일행보다 조금 이른 오전 5시 오 페드로조의 숙소를 나서자 아메리카 원주민의 얼굴을 한 노인이 양팔을 돌리고 있었다. 그가 물었다 “프리오?” 프리오? 무슨 뜻이지? 프리즈(freeze)? 춥냐고? “노.” 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앞장서 걸었다. 숲속으로 들어가자 나무가 달빛을 차단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가 손전등으로 길을 비췄다. 그가 없었더라면, 인적 없는 숲속의 어둠을 뚫고 지나갈 수 없었을 것이다. 길이 갈라지는 곳에서는 표지판을 먼저 발견한 사람이 손짓으로 방향을 일러줬다. 해가 뜨자 그는 자신만의 속도로 걸어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를 한 시간쯤 남겨놓은 언덕길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웃음 노트와 펜을 건네자 그가 이름과 나이를 적어줬다. “Gullermo Torres. 69. Bolivia(길레르모 토레스. 69. 볼리비아).”
26일 오전 11시 무렵 도착한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대성당은 장엄했고, 순례자들을 위한 대성당의 정오 미사는 화려했다. 그러나 대성당의 장중함과 미사의 아름다움은 길을 걷는 동안 마주친 이들의 한결같이 평화롭고 사색적인 얼굴과 그들이 걸어온 싱싱한 자연의 아름다움에 견줄 바가 아니다. 광장에서는 마침내 여정을 마친 이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작은 축제를 벌였다. 순례자들이 길에서 얻은 것이 무엇이든, 그것은 순례자 인증서가 아니라 그들의 마음에 새겨질 것이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렇게 믿을 것이다. “사람들은 누군가 자신을 기다리는 곳에 가야 할 순간을 거스르지 못하고 결국 제때 그곳에 이르게 되리라는 것을.”(<순례자>)
나 대신 걷는 그의 순례길 ‘나의 산티아고’ 4만 관객 돌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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