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코스 : 용두동~청량리~정보도서관~안암동~한성대(8km)~최순우옛집~선잠단터~성락원
~간송미술관~수연산방~덕수교회~이재준집~심우장~와룡공원(서울성곽)~삼청공원~삼청동길
~정독도서관~안국역~인사동~파고다공원(17km)~삼일교~두물다리~용두동(22km)
도보시간 : 11:25~17:20 5시간55분
도보거리 : 22km
성북천은 공사중
홍릉앞 영휘원
카이스트앞
거대한 가로수
홍릉터
최순우 옛집
성북동길에서 만나는 첫 문화유산은 최순우 옛집이다.1916년 개성에서 태어난 혜곡 최순우(1916∼1984) 선생은 고려청자 전문가로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냈다. 그는 1920년대 이 한옥을 지어 우리 것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뽐냈다. 미닫이창, 이름 모를 나무, 추녀 끝의 소방울, 백자 항아리…. 그의 대표적인 저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도 이곳에서 집필했다.
특히 2002년 이 집은 헐릴 위기에 놓였으나 시민들이 되살렸다. 문화유산위원회가 민간모금운동을 펼쳐 집을 사들였고 1년여 보수공사 끝에 복원했다. 이후 ‘시민 문화유산 1호’라는 별칭을 얻었다.
많이 본 책입니다.
최순우 선생이 쓴 "두문즉시심산" 문을 닫아 걸면 이곳이 바로 깊은 산중이라는 뜻입니다.
방문자분들에게 보리차 한잔대접합니다.
마당
담장
벌떼가 물을 먹고있습니다.
우물도있습니다.
성락원은 출입금지입니다
선잠단지를 지나 성락원길로 올라가면 조선시대 별장 성락원(사적 378호)이 나온다. 의친왕 이강이 35년간 별궁으로 사용했던 곳이다. 물줄기가 폭포와 연못을 돌아 아름드리 나무가 빼곡한 정원으로 유유히 흐른다. 추사 김정희가 서쪽 암벽에 ‘장빙가(檣氷家)’라는 글씨를 남겼다. 개인소유라 방문할 수가 없다. 담 너머로 경치를 훔쳐보고 돌아섰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사립박물관이 보인다. 고 전형필(1906∼1962) 선생이 33세 때인 1938년에 세웠다. 종로 부호의 아들이던 전 선생은 휘문고와 일본 와세다대학을 졸업한 엘리트였다. 그는 나라를 지키는 길은 문화재를 보존하는 것이라 생각, 가산을 쏟아부어 평생 민족문화재를 수집했다. 매년 5월과 10월에 전시회를 열 때만 출입이 허용된다.
수연산방-작년 MBC 드라마 닥터깽에서 한가인과 양동근이 살던집입니다
전통 찻집 수연산방은 상허 이태준 선생의 고택을 손녀가 개조한 곳이다. 전통 차를 마시며 한옥에 정취에 빠져들면 시간이 멈춘 듯하다. 라일락 나무 아래 놓인 둥그런 의자와 테이블이 운치를 더한다. 가장 인기 있는 자리는 사랑방 바깥쪽 자리. 담장 너머로 북악산 자락이 보이는 까닭이다.
우리나라 5대교회에 속한다는 덕수교회
이태준가 맞은편 덕수교회 안에는 이재준가가 있다.1900년대 지어진 건평 29.8평의 아담한 집이다. 사랑채 비슷한 별채의 안채와 이에 딸린 행랑채로 이뤄져 있다. 집터 주위의 수목은 마당 소나무와 어우러져 예스러운 멋을 풍긴다. 마포에서 젓갈장사로 부자가 된 이종상이라는 사람의 별장으로 소설가 이재준씨가 살았기에 이렇게 부른다. 교회가 관리하고 있어 주로 문이 닫혀 있다.
만해 한용운(1979∼1944) 선생의 집 ‘심우장’은 폭 1m 골목에 숨어있다. 만해가 3·1운동으로 3년 옥고를 치르고 나와 거처가 없을 때 주위 도움으로 지은 집이다. 그는 조선총독부가 싫어서 집을 남향이 아니라 북향으로 지었다. 마당에는 만해가 직접 심은 향나무가 있다.1944년 조국의 광복을 앞두고 그는 이 집에서 눈을 감았다. 방에는 만해의 글씨, 연구논문집, 옥중공판기록 등이 쓸쓸히 놓여 있다.
심우장 내부
심우장에서
심우장 지붕 물내려오는곳이 새모양입니다.
말바위 고개 가는길
북악산이보입니다.
벚꽃
북악산,인왕산,안산이 나란히 보입니다.
삼청공원 생태연못
삼청공원 카페
학고재 심우장과 같은 모양의 지붕
세계 장신구 박물관
정독도서관 담장에 붙어있는 설명
삼청동 언덕위에 자리잡은 박물관
삼청동 기와 지붕
덕성여고 교문옆의 안내문
인사동 쌈지길
청계천의 하늘
물고기가 떼지어 노닐고있습니다.
▽역사의 흔적=가장 대표적인 것이 서울 성곽. 1396년 조선 태조는 수도 한양에 성곽(약 18㎞)을 세웠다. 성북동 성곽은 그것의 일부로, 현재 남아 있는 서울 성곽 가운데 가장 잘 보존돼 있다. 이 구간은 성북동길 중간 지점인 서울과학고 뒤편에서 성균관대 후문까지 약 2㎞ 정도 이어진다.
성곽 안쪽엔 산책로가 잘 단장돼 있고 옆으로 시골 정취가 물씬 풍기는 오솔길도 있다. 성곽 너머로 펼쳐지는 주변 풍광이 가슴을 후련하게 해준다.
성곽 입구 건너편엔 간송(澗松)미술관이 있다. 일제강점기 한국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사재를 털어 귀중한 문화재를 수집했던 간송 전형필의 뜨거운 마음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 봄가을 전시 때만 실내가 공개돼 지금은 미술관 내부를 볼 수 없지만 미술관 정원과 전형필 흉상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감동적이다.
이곳에서 삼청터널쪽으로 200여m 올라가다 보면 왼쪽으로 만해 한용운이 말년을 보냈던 심우장(尋牛莊)이 나온다. 조선총독부를 등지고 북향으로 집을 지었던 만해의 꼿꼿한 삶이 그대로 전해온다.
심우장 맞은편엔 일제강점기 한국 최고의 단편 작가로 꼽혔던 소설가 이태준의 한옥이 있다. 그가 1930년에 지어 46년까지 머물며 소설을 집필했던 곳. 특히 정원의 단정함이 돋보인다. 지금은 이태준의 외증손녀가 ‘수연산방(壽硯山房)’이란 이름의 찻집으로 운영하고 있다.
성북초등학교 옆길로 들어서면 선잠단(先蠶壇)터가 있다. 조선시대 왕비들이 양잠(養蠶)의 번창을 기원하기 위해 제를 올렸던 곳이다.
▽문화의 향기=선잠단 옆길로 좀 더 들어서면 법정 스님이 창건한 길상사(吉祥寺)가 나온다. 가톨릭신자인 조각가 최종태씨가 제작한 석조 불상을 감상하는 것도 이색적이다.
삼청터널 입구의 삼청각(三淸閣)도 빼놓을 수 없다. 비밀 요정에서 2001년 문화공간으로 변신해 요즘엔 전통문화 공연과 전시가 열린다. 발코니가 있는 2층 찻집에서 밖을 내다보면 마치 울창한 수풀 위에 둥둥 떠 있는 듯하다. ▽먹는 즐거움도 있다=성곽 입구엔 전통 국밥, 갈치조림, 북어찜, 설렁탕, 돈가스 등 값 싸고 맛 좋기로 유명한 음식점이 많다. 최근엔 간송미술관 앞에 정통 일식집 ‘구보다 스시’ 가 생겼다. 서구적인 음식을 원하는 사람에겐 삼선교 옆에 위치한 피자 스파게티 명가 ‘나폴레옹제과점’이 제격이다.
《서울 종로구 삼청터널∼성북구 삼선교 사이의 성북동길. 이곳엔 역사의 흔적과 문화의 향기가 살아 숨쉬는 명소가 즐비하다. 모두 걸어서 10분 거리 이내. 천천히 걷다 보면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나’ 할 정도로 매력적이다.》
성북동 고택에서 여유로운 茶 한잔…

흔히 ‘부자 저택이 몰린 숨은 동네’쯤으로 인식돼온 서울 성북동. 알고 보면 근대사의 조각들을 여기저기 간직한 곳이다. 강북에서 손꼽히는 ‘맛 골목’이기도 하다. 요즘 이곳 풍경을 담은 사진이 인터넷 블로그 등에 자주 소개되고, 강북 명소 삼청동·인사동의 ‘왠지 진부한 모습’에 싫증난 사람들도 즐겨 찾는다.
◆도심속 넉넉한 절 길상사

70년대 잘나가던 요정에서 1997년 도심 속 사찰로 새롭게 태어났다. 성북동을 찾는 모든 이에게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다. 매력은 여느 절 같지 않다는 것. 주요 전각의 처마에 화려한 단청을 쓰지 않았고, 나무 결을 살려 편한 느낌을 준다. 관세음보살상에도 신자·비신자 가리지 않는 도심 절의 넉넉함이 느껴진다. 관세음보살이라기보다 성모마리아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는 이 조각상은 천주교 신자인 최종태 서울대 미대 교수의 작품. 방에 앉아 명상하는 ‘침묵의 집’은 오전 10시~오후 5시 이용할 수 있다. 절 입장은 오전 4시~오후 8시.(02)3672-5945~6, www.kilsangsa.or.kr
◆곳곳에 유서 깊은 저택들

성북초등학교에서 성북2동사무소 방향으로 가는 길 곳곳에 규모는 작지만 의미 깊은 유적들이 숨어있다. 하지만 ‘성북구 동네 명소’라고 친절히 알려주는 표지판들이 있어 찾기가 어렵진 않다. 먼저 만나는 것은 성북초교 건너편의 선잠단지(先蠶壇址). 누에치기가 국가 주요 산업이던 조선시대에 잠신(蠶神)에게 제사 지내던 곳으로 지금은 터만 남아있다. 입구를 잠궈 놓았지만 내부를 훤히 볼 수 있다.

좀 더 가면 근대사의 질곡이 어린 옛 저택들을 만난다. 채 녹지 않은 눈 위에 연탄재를 뿌려댄 좁은 골목을 따라 올라가면 만해 한용운이 1933~1944년 살았다는 심우장(尋牛莊). 일본 총독부가 꼴 보기 싫어 일부러 등지고 지었다고 한다. 성북2동사무소 옆에는 작가 상허 이태준이 만해와 비슷한 시기(1933~1946년)에 살았던 집이 있다. 지금은 ‘수연산방’이라는 고풍스런 찻집으로 바뀌어 손님들 발길이 이어진다. 고적한 분위기에서 전통 차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손꼽히는 문화재를 많이 소장한 간송미술관(성북초교 옆)도 있지만, 5월과 10월에만 잠깐 문을 여는 점이 아쉽다.
성북동의 관문은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버스정류장 ‘쌍다리앞’과 ‘동방대학원대학교’ 사이는 식당 30여 곳이 있는 맛 골목이다. 터줏대감 격인 기사식당들과 돈가스집에 만두집·한정식·칼국수집 등이 합류했고, 한옥도 많다. 간판도 가지가지. 깔끔한 현대식부터 족히 30년은 됐음직한 낡은 간판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공통점은 모두가 최고의 맛을 자랑한다는 점. 사실은 다들 그럴 만한 사연을 가진 터여서, 고르는 일이 즐거운 고민이다.
●시민문화 유산 최순우 옛집
성북동길에서 만나는 첫 문화유산은 최순우 옛집이다.1916년 개성에서 태어난 혜곡 최순우(1916∼1984) 선생은 고려청자 전문가로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냈다. 그는 1920년대 이 한옥을 지어 우리 것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뽐냈다. 미닫이창, 이름 모를 나무, 추녀 끝의 소방울, 백자 항아리…. 그의 대표적인 저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도 이곳에서 집필했다.
특히 2002년 이 집은 헐릴 위기에 놓였으나 시민들이 되살렸다. 문화유산위원회가 민간모금운동을 펼쳐 집을 사들였고 1년여 보수공사 끝에 복원했다. 이후 ‘시민 문화유산 1호’라는 별칭을 얻었다.
●누에 풍년기원 선잠단지
최순우 옛집 건너편에는 선잠단지가 있다. 옷감짜는 일이 중요하던 시절 누에농사의 풍년을 빌던 곳이다. 매년 늦은 봄(음력 3월) 뱀날(巳日)에 왕비가 친히 참여하는 친잠례(親蠶禮)가 열렸다. 현재는 그 터만 남아 50여그루의 뽕나무가 자라고 있다. 지금도 동네 어른들이 매년 4월에 제사를 지낸다.
●조선시대 별장 성락원
선잠단지를 지나 성락원길로 올라가면 조선시대 별장 성락원(사적 378호)이 나온다. 의친왕 이강이 35년간 별궁으로 사용했던 곳이다. 물줄기가 폭포와 연못을 돌아 아름드리 나무가 빼곡한 정원으로 유유히 흐른다. 추사 김정희가 서쪽 암벽에 ‘장빙가(檣氷家)’라는 글씨를 남겼다. 개인소유라 방문할 수가 없다. 담 너머로 경치를 훔쳐보고 돌아섰다.
●환골탈태 길상사
성락원의 아쉬움을 길상사에서 위로받았다. 길상사는 1980년 말까지 삼청각, 청운각과 함께 최고급 요정의 하나였던 대원각 자리에 세워져 있다. 주인 고 김영한 여사가 법정 스님의 ‘무소유(無所有)’에 감명받아 7000여 평 대지와 건물 40여 동(약 1000억원)을 시주하면서 1997년 길상사로 환골탈태한다. 그래서인지 사찰이 조선시대 별장처럼 아늑하고 평화롭다. 숲 속을 걷듯 계곡물이 맑고 새소리가 정겹다. 일반인이 불교 경전과 수행법을 쉽게 체험하도록 ‘길상선원’을 개원했다. 덕분에 외국인 관광객의 필수 관광코스로 자리잡았다.
●최초의 사립박물관 간송미술관
성북초교 운동장을 가로지르면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사립박물관이 보인다. 고 전형필(1906∼1962) 선생이 33세 때인 1938년에 세웠다. 종로 부호의 아들이던 전 선생은 휘문고와 일본 와세다대학을 졸업한 엘리트였다. 그는 나라를 지키는 길은 문화재를 보존하는 것이라 생각, 가산을 쏟아부어 평생 민족문화재를 수집했다. 매년 5월과 10월에 전시회를 열 때만 출입이 허용된다.
●전통 찻집 수연산방
성북2동 동사무소 옆에 자리한 전통 찻집 수연산방은 상허 이태준 선생의 고택을 손녀가 개조한 곳이다. 전통 차를 마시며 한옥에 정취에 빠져들면 시간이 멈춘 듯하다. 라일락 나무 아래 놓인 둥그런 의자와 테이블이 운치를 더한다. 가장 인기 있는 자리는 사랑방 바깥쪽 자리. 담장 너머로 북악산 자락이 보이는 까닭이다.
●20세기 한옥 이재준가
이태준가 맞은편 덕수교회 안에는 이재준가가 있다.1900년대 지어진 건평 29.8평의 아담한 집이다. 사랑채 비슷한 별채의 안채와 이에 딸린 행랑채로 이뤄져 있다. 집터 주위의 수목은 마당 소나무와 어우러져 예스러운 멋을 풍긴다. 마포에서 젓갈장사로 부자가 된 이종상이라는 사람의 별장으로 소설가 이재준씨가 살았기에 이렇게 부른다. 교회가 관리하고 있어 주로 문이 닫혀 있다.
●만해 한용운 집 심우장
만해 한용운(1979∼1944) 선생의 집 ‘심우장’은 폭 1m 골목에 숨어있다. 만해가 3·1운동으로 3년 옥고를 치르고 나와 거처가 없을 때 주위 도움으로 지은 집이다. 그는 조선총독부가 싫어서 집을 남향이 아니라 북향으로 지었다. 마당에는 만해가 직접 심은 향나무가 있다.1944년 조국의 광복을 앞두고 그는 이 집에서 눈을 감았다. 방에는 만해의 글씨, 연구논문집, 옥중공판기록 등이 쓸쓸히 놓여 있다.
■ 북악스카이웨이와 서울 성곽 길
북악스카이웨이 산책로(3.2㎞)는 성북구민회관에서 성가정입구를 거쳐 북악골프장, 팔각정, 종로구 경계까지 이어진다. 처음에는 등산하듯 산을 올라 힘겹지만, 곧이어 북한산과 남산, 한강, 서울이 왼쪽과 오른쪽으로 번갈아가며 펼쳐진다. 숲 속길이 대부분이지만, 도로와 맞닿은 산책로도 있다. 매연이 싫다면 손수건을 준비하자. 아쉽게도 북악골프연습장 부근에서 산책길이 끊긴다. 성북구가 구름다리 설치공사를 시작했다.
서울 주위를 둘러싼 조선시대 성곽(4㎞)이 또 다른 산책로다.
바닥에서 쏘아올리는 야간 경관조명이 은은히 밤하늘을 비추면 평화롭기 그지없다. 돌계단이지만, 길 따라 쉼터가 많아 초보자도 걷기에 힘들지 않다.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노부부에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는 10대까지 다양한 사람도 구경할 수 있다. 정상에 오르면 멀리 서울타워가 보이고, 성균관대와 창경궁이 손에 닿을 듯 가깝다.
한 해를 365일로 묶은 건 천체의 운행에 따른 것이겠지만 한 주일을 이레 단위로 묶은 건 인간의 탁월한 지혜였다. 그 아깝고 귀한 주말, 당신의 금쪽같은 시간을 허송하지 않을 나들이 장소를 소개한다. 가깝되 붐비지 않아야 하리라. 큰돈 안 들되 오관을 열어놓을 구경거리 풍성해야 하리라. 나는 지금부터 그런 곳들만 표시된, 새롭고 요긴한 지도 하나를 만들어볼 요량이다. 멀리 가지 말자. 주머니 걱정도 말자. 행복은 가까이 있다. 서울 성북동 길상사는 열린 절이다. 우선 절문을 통과할 때 눈을 부라리는 사천왕상이 없다. 까마득히 부처님을 올려다보며 계단을 올라갈 필요도 없다. 바로 거기 늙은 느티 서너 그루를 휘돌면 그윽하게 웃으며 아미타 부처님이 앉아 계신다. 자판기 커피를 빼들고 느티나무 아래 앉아 세상 근심을 저멀리 떼어놓자. 당신이 불자가 아닐수록 더욱 좋다. 뜰에 세워진 관세음보살상을 눈여겨봐야 한다. 고운 눈썹, 둥근 볼, 여린 몸매, 관세음보살인지 성모마리아인지 통 구분할 수가 없다. 가톨릭 신자인 최종태 교수의 솜씨다. 종교 간의 장벽 따위, 마냥 사소하고 부질없을 뿐임을 이 관세음보살상은 수줍고 아름답게 주장하고 있다. 알다시피 이곳은 원래 절집은 아니었다. 대원각이란 요정을 주인 길상화 보살이 법정스님에게 시주해 만든 절이다. 기둥과 서까래에 오색단청을 입히지 않았고 후불탱화도 오방색을 쓰지 않았다. 먹탱화에 금분으로 윤곽선만 그어, 안 그래도 절제된 절 안이 더 고요해졌다. 극락전 왼쪽, 계곡에 걸린 다리를 건너가 이 집 옛주인 길상화 보살의 공덕비 앞에 잠깐 서보자. 여기서는 돈을 버는 법보다 그걸 잘 쓰는 법을 명상해 봤으면 좋겠다. 혹 결핍과 충만이 둘이 아님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간결한 비석머리는 주판알인가 했더니 발우의 형상이란다. 길상사가 석가모니불 대신 내세를 관장하는 아미타불을 법당에 모신 건 이 할머니의 원이었다 한다. 연이 닿는다면 당신도 계곡 저 위쪽, 개울가에 새집처럼 걸린 스님들의 요사채를 지나 법정스님에 이어 새 주지를 맡은 덕조스님 거처에서 향좋은 차 한 잔을 나눌 수도 있을 게다. 그게 어렵거든 '침묵의 집'에 들어가 앉자.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방이다. 명상음악을 들을 수도 있다. 굳이 단전에 힘을 주고 가부좌하지 않아도 좋다. 10분만 벽을 향해 고요히! 창밖 나뭇잎이 이마전에 푸른 그늘을 드리우는 걸 느끼기만 해도 충분하다. 덕조스님은 길상사 터도리에 맘먹고 야생화를 잔뜩 심어뒀다. 젊은 한때 길상화보살의 애인이었던 천재 백석은 이런 시를 남겼다.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덕조스님이 그 시를 알았던가, 특히 취가 많다. 지금은 바위취가 한창이고 곧 개미취가 꽃필 차례다. 길상사는 숲속 절이다. 시내보다 기온이 3도쯤 낮다. 무엇보다 도심에서 가깝다. 4호선 한성대역 6번출구 앞에서 마을버스를 타서 7분이면 닿는다. 일행이 많거든 택시를 타라. 주차장도 충분하다. 눕거나 먹거나 고성방가하지만 않는다면 길상사는 한나절 서늘하게 쉬다 올 최상의 장소다. 길상사에서 고개 하나를 넘으면 월북한 소설가 상허 이태준의 옛집이 나온다. 당호는 수연산방(壽硯山房), 지금 찻집으로 개방 중이다. 몸체 규모는 작지만 사랑채와 안채를 집약시킨, 한 세기 전 개량한옥의 모습을 알뜰하게 보여준다. 앙증맞은 문과 누마루, 자그만 뜨락이 다 단정하고 정답다. 이태준은 여기 살다 1946년 북으로 갔다. 누님의 따님인 생질녀에게 집관리를 부탁하고 갔다. 세월은 흘러 지금 주인은 다시 그 따님이다. 서울시 민속자료 11호, 마루를 두른 난간과 보온을 위한 세 겹 문이 재미있다. 겨울엔 양지바른 누마루에 앉아 뜰을 내다보는 게 좋고 5월엔 꽃핀 라일락나무 아래 앉는 게 최고이나 지금 철엔 달아낸 별채가 서늘하다. 마루에 걸린, 2남3녀가 조롱조롱 매달린 상허의 가족사진에서는 숱한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현판은 추사의 글씨를 집자해 팠다. 상허는 추사 글씨를 모사해가며 획의 힘과 뜻을 파고들던 열성팬이었다. 문향루(聞香樓) 현판도 자세히 들여다보라. '…수묵체의 필법으로 산그늘이 짙어갈 무렵 어성어성 이 골짜기를 찾아드는 맛은, 나귀는 못 탔을 망정 맹호연의 탐매정취가 없지 않다'던 성북동, 당시엔 이 집앞에 제법 소리나는 개울이 흘렀을 게다. 상허의 심정이 되어 저녁 나절 수연산방에 놀러가자. 손엔 '무서록' 한 권을 들고 가자. 직접 담그는 차맛이 혀에 달고 배즙 오미자 빙수니 죽순 인절미니, 내놓는 메뉴도 얍삽하지 않아서 좋을 것이다. |
서울 북촌 한옥마을의 봄날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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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의 사각지대였던 이곳에 최근들어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그 변화는 그동안 서울의 다른지역에서 되풀이된 마구잡이식 개발이 아니라, 전통의 가치와 현대의 기술이 어우러져 거듭나는 역사가치의 부활이다. 북촌에 가면 개발에서 소외된 탓에 보존되었던 900여 채의 전통 기와집과 수많은 가지모양의 골목길에서 600년 역사도시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카페와 박물관이 즐비한 삼청동 거리 곳곳에는 카메라에 이곳의 풍경을 담아내는 사진동호인들이 넘쳐난다.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디자인의 건축물이 밀집한 이곳은 이미 사진동호인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출사 지역이 되었다.
서울시는 최근 북촌의 복원과 보전을 담당할 ''북촌추진반''을 신설해, 북촌을 서울의 대표적인 관광자원으로 만드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일상에 찌든 봄 저녁 봄꽃이 만개한 북촌으로 산책을 떠나보자. 된장찌개와 스파게티 향이 어우러진 식당가에서 저녁을 먹고, 북카페에서 차 한잔과 책의 향기를 마신 후, 미로처럼 이어진 골목길에 자리한 각양각색의 사설박물관을 둘러보는 여유를 맛볼 수 있다.


문화 유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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