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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더블클릭!>“둘레길 폐쇄하라”

코리아트레일 2010. 11. 30. 22:45

<현장, 더블클릭!>“둘레길 폐쇄하라”

입구부터 불법주차·쓰레기·소음… 시끌벅적 관광지化 ‘도보여행 코스’

문화일보 | 유병권기자 | 입력 2010.11.17 12:01 | 수정 2010.11.17 12:21

 

 


전국의 도보 여행 코스가 몸살을 앓고 있다. 제주 올레길을 시작으로 전국에 '둘레길', '바우길', '마실길' 등 다양한 이름으로 조성된 도보 여행 코스는 20여곳. 그러나 '자연 속에서 사색과 여유를 느끼는 웰빙 여행 코스를 만들겠다'는 당초 개설 취지와는 달리 방문객들이 한꺼번에 몰려들면서 갖가지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특히 쓰레기 무단 투기, 소음, 코스 주변 불법 주차, 노상방뇨, 농작물 도난 등 기초질서가 무너지면서 코스 주변 마을에선 길을 폐쇄하라는 민원마저 제기되고 있다. 새로운 개념의 여행형태로 주목을 받고 있는 '걷기 여행'이 성숙하지 못한 시민의식으로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문화일보는 주말인 지난 13일 전국 유명 도보 여행 코스를 현장 취재했다.

↑ 지난 13일 서울 은평구 불광2동 북한산 둘레길 마을 통과구간에 등산객들이 불법 주차한 차량들이 늘어서 있다. 김동훈기자 dhk@munhwa.com

◆ 북한산 '둘레길'= 서울 은평구 진관동 선림사 부근의 북한산 둘레길 구간인 '구름정원길'. 인근 아파트 길에서 산길로 접어드는 입구에서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등산객 2명이 담배에 불을 붙였다. 옆에 있던 한 아주머니가 "이곳에선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고 하자, 이들은 "여기는 아파트길인데 왜 안 되느냐"며 따졌다. 이곳은 북한산 둘레길 가운데 사유지를 통과하는 10여곳 중 한 곳으로, 둘레길 접근성이 좋아 등산객들이 몰려들면서 주민 민원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마을 주민 이태원(47)씨는 "쓰레기 투기와 소음은 물론 주변 농가에서 애써 키운 농작물을 뽑아 가는 몰상식한 등산객들로 마음 편한 날이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산길로 들어서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등산용품을 판매하는 좌판이었다. 물론 불법이다. 등산로 주변에는 '애완동물을 데려와선 안 됩니다', '산악자전거 이용을 금합니다'라는 푯말이 세워져 있었다. 이씨는 "사람이 많은 주말과 휴일에는 애완동물을 데려오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주중에는 그런 사람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 울산 '솔마루길'= 울산의 도심 순환 산책로인 솔마루길은 숲길이 잘 정돈돼 있어 많은 시민이 찾고 있지만, 곳곳에 버려진 쓰레기와 무질서로 이용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남구 신정동 솔마루길 진입로 입구 주변 소나무에는 석유배달 문구가 적힌 커다란 불법 광고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산길을 걸어 누각인 '은월루'에 오르자, 울산 시가지가 훤히 내려다보일 정도로 훌륭한 풍광이 연출됐다. 그러나 누각 내부 바닥은 은월루에 붙어 있는 '기초질서를 지키자'는 문구가 무색할 정도로 더럽혀져 있었다. 숲길 곳곳에서는 등산객들이 버린 쓰레기가 눈에 띄었다.

이경미(여·40)씨는 "도심지에 이렇게 잘 가꾸어진 산책로가 있어 자주 찾고 있는데,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와 무질서한 행동 때문에 기분이 너무 상한다"며 안타까워했다.

◆ 지리산 '둘레길' = 지리산 둘레길 1코스(주천~운봉)는 이정표를 비롯해 쓰레기 청소 등 비교적 잘 정돈된 상태였다. 이 지역은 남원시 시민사회단체들이 주말마다 쓰레기봉투를 들고 '둘레길 쓰레기 줍기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둘레길 쉼터 주변은 크고 작은 쓰레기들이 버려져 있었다. 특히 음식점 주변 산비탈은 쓰레기 투기가 심했다. 지리산 둘레길은 최근 한 유명 TV프로그램에 소개된 이후 단체 관광객이 많이 찾으면서 왁자지껄한 '관광지'로 변질된 곳이 적지 않다. 단체 관광객들의 소음과 무질서에 질린 주민이 둘레길 폐지를 요구할 정도다.

◆ 광주 '무등산 옛길'= 지난해 5월부터 지난 7월까지 3개 구간(23.17㎞) 전체가 개방된 광주 '무등산 옛길'의 경우 잘 관리되고 있으나, 일부 등산객들이 버린 쓰레기가 부담이 되고 있다. 이날 안호섭(36)씨 등 무등산관리사무소 직원 5명과 함께 서석대에 이르는 2구간(4.12㎞)에 대한 등산로 점검에 나섰다. 1시간쯤 올라 물통거리에 이르자, 단체로 무등산을 찾은 10여명이 모여 앉아 귤 등 과일을 간식으로 먹은 뒤 껍질을 주변 숲 속에 버리는 모습이 목격됐다. 안씨가 "과일 껍질을 버리면 구더기가 쉽게 생기고 썩는 과정에서 냄새가 나기 때문에 버리면 안 된다"고 하자, 등산객들은 "껍질이 썩으면 퇴비가 될 텐데 버리면 왜 안 되느냐"고 오히려 역정을 냈다. 무등산관리사무소 직원들과 1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은 2구간에서 쓰레기를 줍는 게 일과가 돼 버렸다고 하소연했다.

◆강화 '호국 돈대길'='호국 돈대길'은 강화도 동쪽 해안을 따라 늘어선 용당돈대, 화도돈대, 오두돈대, 용두돈대 등을 둘러보는 15㎞ 구간으로 탁 트인 전망이 일품이다. 이 구간 중 용두돈대(광성보) 일대는 호국정신을 배우려는 단체 방문객의 방문이 사시사철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단체 방문객 등이 대거 몰리면서 일대는 신미양요 당시 어재연 장군 등 53명이 국토를 수호하기 위해 전사한 역사 현상 답지 않게 경건한 분위기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날 이곳을 찾은 방문객 중 40대 가장을 포함한 가족 4명은 용두돈대 입구를 무단출입한 후 10여분 후 서쪽 나무 울타리 담장을 넘어 바닷가로 나갔다. 가족과 함께 이곳을 찾은 김인수(48·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씨는 "정숙하고 경건하게 순국선열의 정신을 되새겨야 할 용두돈대 일대 나들길이 어쩌다가 이렇게 어수선하고 무질서한 장소로 변했는지 모르겠다"고 개탄했다.

◆부산 '달맞이길'= 해운대 달맞이 둘레길은 문탠로드(moontan·달빛을 맞으며 걷는 길)로 유명해 야간에도 산책객들이 많다. 길을 따라 10여m 간격으로 바닥에 설치된 그루터기 모양의 예쁜 가로등은 이곳의 명물이다. 이곳은 쓰레기 투기와 소음보다는 주차문제가 심각하다.

차량 이용객들이 많지만 주차면적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아내와 이곳을 찾은 김영철(49)씨는 "달빛을 받으며 모처럼 아내와 좋은 시간을 가졌지만 주차문제로 다른 사람과 말다툼이 벌여 기분이 상했다"며 "달맞이길을 찾는 시민이 많이 늘어난 만큼 이에 걸맞은 기반시설이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울산 = 곽시열·광주 = 정우천기자 sykwak@munhwa.com

 

 “성숙한 시민의식이 북한산 살려… 둘레길엔 쓰레기통 설치 않을 것”

박기연 국립공원관리公 공원시설팀장
유병권기자 ybk@munhwa.com | 기사 게재 일자 : 2010-11-17 11:53
“지난 9월 개방 이후 당초 예상을 뛰어넘는 100만명 이상의 등산객들이 북한산 둘레길을 찾으면서 여러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박기연 국립공원관리공단 공원시설팀장은 “이 가운데 가장 시급한 문제는 마을 통과구간에서 발생하는 쓰레기 무단 투기와 소음”이라면서 “이는 북한산 둘레길뿐 아니라 전국의 도보 여행 코스가 비슷한 문제점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산 둘레길은 연간 1000만명 이상이 찾는 북한산을 효율적으로 보호하고, 노약자 등이 좀 더 쉽게 북한산을 찾을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박 팀장은 “북한산 훼손의 원인인 수직탐방을 수평탐방으로 전환하고, 샛길 10개를 한 개로 줄여 산을 보호하자는 취지로 둘레길을 조성했다”며 “둘레길 조성 이후 수 없이 나 있는 샛길이 정비되고 수직탐방이 감소하는 등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둘레길 최대의 적은 미흡한 시민의식이라는 것이 박 팀장의 지적이다.

그는 “탐방객들의 불법주차와 무질서로 마을 통과 구간에서 민원이 적지 않게 쏟아지고 있다”면서 “그렇다고 산을 깎아 길을 새로 만들 수 없는 만큼 등산객들이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둘레길 주변에 쓰레기통을 설치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며 “등산객들이 가져온 것들은 다시 가져가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했다.

박 팀장은 “둘레길에 부족한 화장실 추가 설치 등 편의시설을 확충하기 위해 내년에 30억원의 예산이 편성돼 있다”면서 “둘레길이 시민의 편안한 쉼터이자, 활력소 역할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