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칼럼 길] 천천히 걷기처럼 길 만들기도 천천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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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길의 성공 사례가 보여주듯, 가까이는 화천의 산소길에 몰려드는 관광객 수가 증명하듯 좋은 길은 관광상품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관광상품도 문화상품이 지니는 일반적인 속성을 피해갈 수 없다. 문화상품은 ‘승자독식’의 원리가 철저히 적용된다. 코미디 프로에 등장하는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 바로 이 승자독식현상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많은 길을 만들어 놓았다고 해서 사람들이 그 많은 길들을 두루두루 나누어 ‘관광’하리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감성세대들은 소문난 곳,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을 찾아갈 가능성이 너무나 높은 것이다. 자기 지역의 어메니티를 높이기 위해서 소박하게 길을 만들겠다고 한다면 달리 할 말이 없다. 걸을 수 있는 길이 많아진다는 것은 백 번 천 번 좋은 일이다. 그러나 관광수요를 늘리기 위해서라면 무조건 길을 만들고 보자는 식의 길 만들기는 지양되어야 한다. 막대한 예산을 들인 시설물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방치되는 것처럼 급하게 만들어진 길 또한 사람들의 외면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길을 만들 때도 많은 지혜가 요구된다. 길은 그 코스를 한번 만들어 놓으면 바꾸기 어렵다. 특히 많은 지자체에서 그렇게 하고 있는 것처럼 안전목책을 치고 돌계단을 놓고 디딤돌을 만들어 놓으면 코스는 그것들을 따라 정해져 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길의 원형을 훼손하게 되고 오히려 길의 가치를 떨어뜨릴 가능성이 높다. 걷기를 즐기는 사람은 느림을 즐기는 사람이다. 조금의 불편쯤은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길’로 끌어들여야 하는 사람은 바로 이러한 사람들이지 튼튼한 목책이 없다고, 바닥이 진흙길이라고, 계단이 없다고 걷기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길의 코스를 개발하고 그 길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줄 스토리텔러들을 배치하겠다는 문화체육관광부의 계획은 일견 참신해 보인다. 그러나 사람들이 언제까지 남이 만들어놓은 코스를 따라 걸을지, 그리고 그 길에 재미를 느낄지 그것은 의문이다. 제주 올레가 그렇고, 지리산 둘레길이 그렇고, 대관령 바우길도 그러한데 이 길들을 걸으면서 재미를 가장 많이 본 사람은 당연히 그 길의 코스를 개발한 사람들이다. ‘없는 길’을 내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그 길은 가장 소중한 길이 되었을 것이다. 지자체에서 코스를 개발하고 이야기를 만들어 일반에 제시하는 것 말고, 길을 걷는 사람이 끊임없이 자기만의 코스를 개발하게 하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가 걷는 길에 애정을 갖게 하는 그런 방법말이다. 교육만 백년지대계가 아니다. 자연에 손을 대는 일이라면 숙고에 숙고를 거듭해도 지나치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