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손성일 걷기 이력입니다.

코리아트레일 2011. 3. 9. 18:45

1. 손성일 걷기 이력 

 

전문적으로 아름다운 도보여행 코스를 개척하는 로드플래너(Road Planner) 손성일 대장입니다.

 

http://blog.daum.net/sonsungil 손성일 도보 블로그

http://cafe.daum.net/beautifulwalking 손성일 도보 카페 "아름다운 도보여행" 운영 회원 14,300명

010-5257-3765 손성일

 

 

1. 손성일 걷기 이력 사항

1). 2006년9월부터 파주 임진각~고성 통일전망대~부산~제주~목포~서울 100일간 2,200km 단독 도보

2). 2007년9월부터 스페인 산티아고 70일간 5개 코스 1,800km 단독 도보 .

3). 2006~2010년 4년 동안 국내/외 13,000km 도보-GPS 측정 기록 

4). 2008년 04월부터 다음 도보 카페 ‘아름다운 도보여행’운영.현재 회원14,200명

5). 2008년11월부터 해남 땅끝~서울간 장기 도보여행길 “삼남길" 개척 중

6)  2009년3~5월 2개월간 문화체육관광부 "이야기가 있는 생태 탐방로"심사위원

7). 2010년10월“우리 동네에도 올레길이 있다”도보여행 책 출판

8). 2011년 사단법인“아름다운 도보여행” 설립 준비 중

9). 2011년 06월 서울시 선정 110코스 생태탐방로 관련 책 헬스조선에서 출판 예정

 

2. 경력

1). 국가기관 연동 경력사항

   - 해남,강진,영암군 삼남길 코스 개발. (2008년 11월 ~ 현재)

   - 문광부 주최 “스토리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 2개월간 심사위원 활동.(2009년)

   - 종로구청 의뢰 서울성곽지도 제작. (2009년 5월 1개월 간)

   - 강진군 “스토리가 있는 문화 생태 탐방로” 개발 및 자문 위원(2009년)

   - 하동군 “박경리 토지길” 개발 및 자문위원(2009년)

   - 영덕”불루로드” 개발 및 자문위원(2009년)

   - 서울특별시 생태 탐방로 조성 자문위원(2010년)

   - 경기도 평화누리길 사진 공모전 심사위원(2010년11월)

   - 전라남도 영광군 생태 탐방로 자문(2010년12월)

   - 충청남도 서산시 아라메길 자문중(2011년01월~)

   - 농촌진흥청 그린로드 자문위원(2011년02월~) 

 

2). 정부

   - 행정고시 연수교육원 합격자 도보여행 특강 진행. (2007년 1월)

 

3). 민간기업

   - 락앤락 임직원 대상 도보 여행 진행. (2009년)

   - 락앤락 써포터즈 회원 대상 연간 도보 여행 총괄 기획 진행.(2009년)

   - 프로스펙스 W 써포터즈 활동(2009~2010년)

   - 코오롱스포츠 트레일 워킹화 개발 자문 및 트레일 이벤트 진행(2010년)

   - 코오롱스포츠 후원 "삼남길" 개발중(2010년10월~)

 

4. 미디어 노출 

  TV.라디오

    1) SBS 스페셜 “걷기의 기적” 2분 노출 (2007년 1월 31일)

    2) SBS 뉴스와 생활경제 5분 노출 (2009년 5월)

    3) KBC(광주지역민방)  “호남길” 10분 노출(2009년05월22일)

    4) 신한은행(기업방송) “잘 쉬는 방법” 5분 노출(2009년07월08일)

    5) 목포 MBC 생방송 전국시대 15분 노출(2009년08월07일)

    6) MBC 창사 특집 생방송 "명사들의 사랑나눔"에 8분 노출(2009년11월21일)

    7) SBS 뉴스와 생활경제 10분 노출 (2009년12월24일)

    8) KBS내 나라여행 박람회 특별 생방송 10분 노출(2010년01월27일)

    9) KBS VJ특공대 5분 노출 (2010년04월02일)

   10) KBS 생방송오늘 3분 노출 (2010년06월17일)

   11) KBS 생생정보통 4분 노출 (2010년10월04일)

   12) TBN 교통방송 라윤경의 굿모닝 코리아 게스트 출연중(2010년11월~현재)

    

 신문

   1) 세계일보 1면 “People. 사람들” (2007년 1월 27일)

   2) 한국일보 서울 성곽 도보 (2009년 4월)

   3) 아름다운 재단 기부 보도 자료

   4) 중앙일보 산따라 물따라 분당 도보 보도 자료(2010년03월09일 )

   5) 중앙일보 아름다운 도보여행  보도 자료(2010년05월13일)

   6) 매일경제 삼남길 기사 월 1회 보도중(2010년08월~현재)

 

 잡지

   1) 시사IN “환상의 길, 감동의 길” (2008년 5월 24일)

   2) 전라도 닷컴 “아름다운 도보여행”을 하는 사람들”(2009년2월)

   3) 아름다운 재단 “콩 반쪽” 창간호 보도(2008년12월)

   4) 월간 “마운틴” 잡지 삼남길 보도(2010년03월)

   5) 월간 “숲” 잡지 손성일 도보 관련 보도(2010년05월)

   6) 월간 “마운틴” 트레일 워킹 코스 연재 중(2010년06월~ 현재)

   7) 월간"마운틴" 삼남길 코스 동행 취재 중(2011년01월~현재(매월)) 

   9) 월간"산" 2월호 82페이지 1면에 소개(2011년02월) 

  10) 주간동아 773호 2011년02월08일~15일자 "남도길 대장정 희망을 걷다"에 삼남길 동행 취재(2011년02월) 

 

 

[여행] `삼남길`, 산타고 물건너 1000리…산티아고 순례길 안부럽네
기사입력 2010.11.26 15:07:27 | 최종수정 2010.11.26 19:33:57 트위터 미투데이 블로그 스크랩
◆ `삼남길`, 대한민국서 가장 걷기 편한 1천리 / ③ 해남 ~ 강진 손성일 대장과 함께 ◆

삼남길의 시작은 해남 땅끝마을이다. 땅끝마을의 삼남길은 제주 올레와 지리산 둘레길을 반반씩 모아놓은 것 같은 절묘한 풍광이 일품이다. 한쪽은 은빛 남해바다가 넘실거린다. 또 다른 쪽엔 우거진 숲이 객을 맞는다. <해남 / 김호영 기자>

대한민국에서 가장 걷기 편한 `삼남길`을 매일경제신문ㆍMBN이 코오롱스포츠(kolonsport.co.kr), 그리고 로드 플래너(road planner) 손성일 대장과 함께 만들고 있습니다. 전라남도 해남 땅끝마을에서 강진 나주 익산을 지나 서해를 훑고 서울까지 이어지는 그 옛날 `삼남길`입니다. 삼남길 시리즈 1회 때는 이현세 화백과 함께 차령ㆍ쌍령의 숲길을 둘러봤고 2회 시리즈에선 영화 `친구`를 만든 곽경택 감독과 함께했습니다. 3회는 삼남길의 총지휘자나 다름없는 손성일 대장이 함께합니다. 이 남자 야심이 하늘을 찌릅니다. 한국판 `산티아고 순례길`을 만들겠다고 큰소리칩니다. 산티아고가 2000년 역사에 800㎞ 덩치라면, 한국판 산티아고 삼남길은 500년 역사에 500㎞는 됩니다. 통일 이후 관서대로(의주대로)를 따라 북한까지 이어진다면 1000㎞를 넘어선 세계 최장의 걷기 트레일 코스가 만들어진답니다. 어디 그 큰소리를 한번 들어보실까요.

이 남자 미쳤다.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 돈이나 여자에게 미쳤다면 이해가 갈 텐데 이 남자는 묘하게도 길에 미쳤다.

스스로도 대한민국 최초의 `로드 플래너`라며 당당히 명함에 새기고 다니는 남자. 소녀시대 9명의 아찔한 S라인보다, 잘 빠진 `길`에 더 환장하는 이 남자.

북한을 넘어 중국을 관통하는 아시안웨이의 전초 코스 `삼남길`을 만들고 있는 손성일 대장(40)이다. 지난달 초 결국 난생처음 땅끝 마을 전남 해남까지 끌려갔다.

"같이 가셔야죠. 안 오시면 섭섭하죠. 첫 말뚝작업 하는 건데. 자 여기 푯말 세워주시고요. 망치팀 어서 때리세요."

꽝꽝. 그렇게 삼남길 최초의 표시목이 해남 맴섬 바로 맞은편 해안길 계단 초입에 세워진다.

잠깐 손 대장의 눈에 이슬이 맺힌다. 감동일 것이다. 해남을 출발해 강진, 나주, 광주, 완주, 익산을 거쳐 평택, 수원, 서울 남태령, 남대문까지 1000리가 이어지는 삼남길.

걸어서 갈 수 있는 가장 편한 길을 만들겠다는 목표의 상징적인 첫 다짐이다. 꽝꽝. 땅에 박히는 푯말 버팀목을 따라 손 대장의 다짐도, 각오도 단단히 박힌다.

삼남길은 매일경제 독자와 코오롱스포츠 고객이 함께 만든다. 현재는 4차 개척단까지 모집이 완료된 상태. 1차 개척단은 지난 10월 16일과 17일까지 첫 길을 열었고 2차 개척단은 같은 달 30일과 31일 동호리에서 서흥리까지 길을 다듬었다.

삼남길 첫 시작을 알리는 푯말 앞에서 손성일 대장(뒤줄 오른쪽 둘째)과 삼남길 개척단 1기생들이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김호영 기자>

3차 개척단은 11월 20일과 21일 서흥리와 와룡리를 돌았다. 각 개척단은 코스마다 이름도 지어붙인다. 1구간은 처음길. 처음 마음처럼 변함 없으라는 의미다. 2구간은 올망졸망한 코스를 따 이름도 `올망길`로 지었다.

3차 개척단의 3코스 이름은 해들길. 유난히 들이 많았고, 해가 비친 길의 풍광이 백미라는 뜻이다.

말이 개척단과 함께 만드는 것이지 사실 모든 길은 손 대장이 미리 다 가보고, 손대고, 다듬은 길이다. 손 대장 팀은 그림자 같은 4명의 대원이 함께 움직인다. 해남길 개척을 위해 해남만 둘러본 게 10번이 넘는다. 이제 해남길은 손금만큼 훤하다.

올 연말까지 목표는 100~120㎞까지 전진. 강진 성전이나 강진과 영암의 경계인 누릿재까지는 개척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전체 삼남길 개통 D데이로 잡고 있는 건 2011년 1월 11일. 전라도 길이 뚫리면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로 밀어붙인다는 계획이다.

"해남길은 풍광으로는 최고의 길이에요. 마치 제주 올레와 지리산 둘레길을 합쳐 놓은 느낌이랄까요. 남해의 저 코발트빛 바다, 그리고 한쪽으로 늘어선 이 든든한 산. 거기에 섬에 한정된 게 아니라 뻗어가는 활기참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지요."

그가 길에 미친 건 2006년이다. 대한민국 땅을 `ㅁ`자로 돌면 정확히 2200㎞. 100일 동안 혼자서 20㎏짜리 배낭을 메고 덜컥 혼자 걸은 것이다.

종단의 의미였지만 사각형 모양으로 대한민국을 돈 사람은 아마 없을 거라고 손 대장은 말한다.

삼남길 거사를 벌이기 전에 방문한 곳은 걷기 마니아들의 필수 코스인 산티아고.

70일간 다섯 개 코스 1800㎞를 악착같이 걸었다. `이런 길을 걸으면 도보여행이란 게 가능하겠구나.` 그때 그는 무릎을 쳤다. 산티아고의 길은 우선 안전했다. 친절했고 또 배려도 있었다. 5~10㎞ 지점마다 저렴한 숙소가 있고, 또 대부분 흙길이었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자료조사를 했지요. 조선시대 10대 대로 정보를 샅샅이 뒤졌어요. 영남대로, 호남대로, 관동대로. 그러다 호남대로(별칭이 삼남대로다)를 보면서 느낌이 팍 왔지요."

삼남대로는 매력적이다. 발전이 덜 된 게 오히려 매력이다. 당연히 옛길이 많다. 풍광도 그 옛날 그대로다. 흙길도 물론 넘친다. 연결만 잘 해 주면 그 자체로 작품이 된다.

"길 개척 정말 아무나 못 해요. 삼남길 15㎞짜리 한 코스 만드는 데 얼마나 걷는 줄 아세요? 최소 50㎞, 많으면 100㎞도 걸어요. 갈림길 나오잖아요. 그 갈림길 다 가본다고 생각하면 돼요."

1㎞ 잘 닦인 코스를 위해 그는 묵묵히 10㎞, 아니 100㎞도 마다않고 걷는다.

2006년 8월부터 그렇게 만 4년간 걸은 길이 1만2000㎞다. 1년에 3000㎞꼴이다. 물론 GPS에 찍힌 공식 기록이다. 그냥 평상시 걷는 비공식 기록이라면 여기에 열 배는 곱해야 한다. 지구 한 바퀴 4만2000㎞는 너끈히 걸은 셈이다.

"지금 딱 마흔 살이잖아요. 환갑 때까지 GPS로 5만㎞가 목표예요. 딱 지구 한 바퀴."

그에겐 길은 곧 삶이요, 전부다. 남들은 바쁜 생활 속에서 가끔씩 걷기나 도보를 생각하지만 손 대장은 반대다. 쭉, 내내 걷기만 생각하다 가끔 딴 생각을 한다. 모든 게 걷기 위주다.

걷는 건 평등해서도 좋다. 산을 400개 이상 오른 손 대장이지만 그는 등산이나 트레킹보다 걷기, 즉 트레일을 주창한다. 등산이 수직적이라면 걷기는 수평적이다.

등산할 때는 꼭 목표가 서야 한다. 꼭 `정복`을 해야 하니 목표 중심이다. 걷기는 반대다. 소통이요, 과정 중심이다. 그저 걸으면 된다. 힘들면 쉬었다 가도 되는 게 걷기요, 걷다 지치면 그냥 길을 벗어나면 그만이다.

길을 사랑해 대한민국 최초의 로드플래너 직업까지 생각해 낸 손 대장. 그에겐 엉뚱한 약점이 있다. 믿기지 않겠지만 길치라는 것. 지하에만 가면 나오는 구멍을 못 찾아 헤매기 일쑤요, 자동차는 내비게이션이 없으면 가지를 못한다.

"지하철을 타고 후원사 코오롱스포츠를 매번 가는데도 나오는 출구를 못 찾아요. 갈 때마다 헤매죠."

그런데 희한한 게 있다. 지상의 땅을, 발로 타박타박 걸어가면, 그 길이 머릿속에 각인된다는 것이다. 그의 말마따나 천상 `걸어 먹을` 팔자다.

■ 전라남도와 삼남길 개척 MOU

매일경제와 코오롱스포츠가 함께 만드는 삼남대로는 철저히 트레일 워킹을 위한 길이다. 수평을 지향하는 가장 편한 길이다. 전남 해남에서 시작해 강진, 나주, 광주, 전북 완주, 익산, 충남 논산, 공주, 천안, 경기 평택, 수원, 서울 남태령, 남대문까지 1000리가 이어진다. 삼남대로 시발지는 제주로 이어지는 땅끝마을(관두포항과 강진 마량항)이다.

이 길은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깊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용도는 군사길이다. 이 길을 통해 관리들을 임지로 파견하고 군사도 이동시켰다고 한다. 진상품도 이 길을 따라 이동했고, 과거를 보거나 장사를 위해 한양으로 간 길 역시 삼남길이다. 이 길은 아픔의 길이기도 하다. 중앙관리가 제주도 유배지로 귀양을 갈 때도, 임진왜란 때는 왜구들 역시 침략을 위한 요로로 이 길을 이용했다.

현재 삼남길은 해남 땅끝 탑에서 시작해 강진 누릿재 구간까지 90㎞가 조성돼 있다.

해남에서 서울까지 삼남길이 완성되면 500㎞에 달하는 대한민국 최대 장거리 도보길이 완성된다. 삼남길 공식 개통식은 내년 1월 11일로 예정하고 있다. 오는 30일에는 전라남도와 코오롱스포츠가 삼남길 개척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식을 가질 예정이다.

매일경제 독자, 코오롱스포츠 고객과 함께 만드는 삼남길은 개척단을 매번 모집하고 있다. 올해는 4차 개척단까지 마감이 된 상태. 내년 2월 개척단 모집을 다시 시작한다.

자세한 내용은 코오롱스포츠(www.kolonsport.com) 홈페이지 베이스캠프 코너에 있는 삼남길 개척단 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 매일경제ㆍ코오롱스포츠 공동

[해남 = 신익수 여행레저전문 기자]



2011년02월"산"잡지 기사입니다 

[피플] 해남에서 서울까지 삼남길 개척하는 손성일 씨
“산티아고 같은 감동적인 순례길을 우리나라에 만들고 싶어요”

만나고 보니 그와는 구면이었다. 2006년 포천 광덕고개에서 우연히 만났다. 기자는 한북정맥 취재산행 중이었고 그는 전국일주 2,200km를 걷는 중이었다. 그냥 걷는 게 아니라 1km에 100원씩 기부한다고 했다. 허름한 몰골이었던 그는 돈을 아끼기 위해 야영을 하고 있었다. 그랬던 그가 걷기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손성일(孫成一·40)씨는 코오롱스포츠에서 주관하는 ‘12인 삼남길 개척단’ 대장이다. 삼남길은 해남~광주~천안~서울을 잇는 500km에 달하는 우리나라 최장거리 걷기 코스로 코오롱스포츠에서 12명의 고객을 매월 초청해 길을 개척하고 있다.


손성일 대장을 비롯한 팀원들이 사전답사를 통해 미리 코스를 정해 놓으면 최종단계로 고객을 초청해 표지기를 달고, 화살표 스프레이를 뿌리는 등의 작업을 한다. 그의 명함에는 로드 플래너(road planner)라 적혀 있었다. 걷기 코스를 개척하는 게 그의 직업이다.


손씨는 1987년부터 산을 탔다. 백두대간과 한남정맥을 완주했고 국내산은 400개 정도를 탔다. 등산잡지를 수년간 정기구독할 정도로 산꾼이었던 그가 전국일주에 나선 건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기 위해서였다. 800km에 이르는 장거리 코스를 가기 전에 우리나라를 먼저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직장을 그만뒀다.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며 가야겠다는 생각에 기부도 생각해 냈다. 그는 “사람들의 기부금이 쌓이면 그게 미안해서라도 중간에 포기하지 않을 것 같았다”고 한다. 이후 그는 시민 모금가가 됐다. 인터넷 카페를 열어 걷기에 참가할 때마다 회원들에게 기부금 1,000원을 받아 작년 한 해에만 1,000만 원을 아름다운 재단에 기부했다. 걷기 카페는 회원이 1만4,000여 명에 이를 정도로 커졌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35세에 직장을 그만두고 전국일주를 하는 그를 보고 처음에는 “대단하다”고 하던 사람들이 나중에 꼭 하는 말은 “나중에 뭐 먹고 살거냐”였다. 스페인 산티아고를 걸을 때도 다른 사람들은 모두 정해진 800km의 코스만 걷는데 그는 4개 코스를 더 걸어 총 1,870km를 걸었다. 현지의 순례증명 관계자들이 “당신 미친 거 아니냐”고 얘기했다. 산티아고를 다녀온 후 그는 한국에도 이런 길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전국일주를 할 때 찻길이 너무 위험해서 두 번이나 죽을 뻔했습니다. 산티아고는 2000년을 이어온 길답게 길이 친절하고 배려가 있었어요. 걷기 편한 흙길에 화장실과 쉼터가 곳곳에 있고 숙소도 5km마다 있었어요. 길의 문화를 보면서 감동받았어요.”


옛길을 살리기 위해 그는 영남대로와 삼남대로를 걸었다. 그러나 대부분 아스팔트로 바뀌어 있었다. 결국 옛길 복원은 어렵다고 보고 새로운 걷기 코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활발히 걷기 활동을 하다 보니 방송 인터뷰도 밀려오고, 책도 내고, 지자체 걷기 코스에서 자문을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1년만 걸을 생각이었는데, 직업으로 해보자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GPS를 2001년부터 쓴 손씨는 2006년부터 1만3,000km를 걸었다고 한다. 보통 적게는 3번, 많게는 7번을 답사해서 길을 만드는데 일주일에 5~6일을 걷는다고 한다.


손성일 로드 플래너는 ‘아름다운 도보여행’이란 사단법인 창립을 준비 중이다. 그가 만든 삼남길이 얼마나 아름다울지 기대된다.

 


2011년02월08일자 "주간동아" 기사입니다

호남대로의 흔적 삼남길서 역사와 자연에 몸 맡기다, 그리워 문득 찾아간 그곳 다산 정약용 선생 숨결이…
해안길과 산길, 삼남길과 다산길
>>> 호남대로의 흔적 삼남길서 역사와 자연에 몸 맡기다
 
201101280500006_9.jpg
 소나무숲을 걸으며 바다를 보면 마음속까지 시원해진다.
북위 34도 17분 21초. 전남 해남군 송지면 갈두산 사자봉은 한반도 최남단, 즉 ‘땅끝’이다. 땅의 끝이지만 저 멀리 서울, 평양으로 뻗어가는 길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이곳 땅끝에서 삼남길이 시작된다. 삼남길은 과거 조선의 대로(大路) 중 하나인 호남대로(湖南大路)의 자취를 따라 잇는 길이다. 호남대로는 대표적인 군사길이었다. 이 길을 따라 군사가 이동했고 신임 관리도 부임했다. 남도 땅의 진상품, 청운의 꿈을 품은 과거 지망생도 이 길을 따라 한양으로 향했다. 요즘으로 치면 국가에서 관리하는 고속도로쯤 된다.        
 
국내 제1호 로드 플래너 손성일(41) 삼남길 개척단 대장은 전라남도와 협약을 맺고 삼남길 만들기에 앞장서고 있다. 이 사람, 길에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 산티아고 길을 걷고 온 그는 해남과 서울을 잇는 500km의 삼남길을 한국의 산티아고 길로 만들 꿈을 품고 있다. 2008년 11월 시작해 해남에서 강진까지 약 90km 구간을 만들었고 2011년 전남까지, 2014년 서울까지 잇는 것이 목표다. 손 대장과 함께 삼남길 해남 구간 1코스를 걸었다. 거리는 총 16.9km. 바다와 산, 시골마을을 모두 만끽할 수 있는 최고의 코스다.        
 
바다와 산, 시골을 만끽하는 코스        
 
삼남길은 땅끝 여객선 매표소 옆에서 시작한다. 바로 앞에는 맴섬이 보인다. 갈라진 맴섬 사이로 1년에 2번 해가 떠오른다고 한다. 길은 삼남길 리본과 바닥, 벽 등에 그려진 >>> 표시를 따라가면 잃지 않는다. 리본과 표시 색깔은 주황색과 녹색인데 각각 황토와 숲을 상징하며 녹색은 서울 방향을, 주황색은 땅끝 방향을 가리킨다.        
 
땅끝전망대 모노레일 매표소 앞에서 왼쪽을 따라 걸어 올라간다. 왼편을 바라보니 탁 트인 바다가 시원하다. 전복, 김 양식장이 눈에 들어온다. 남도 땅에는 이미 봄이 왔다. 바닷바람만 찰 뿐 햇살이 따뜻하다. 조금 걸어가니 왼쪽에 군부대 초소로 내려가는 가파른 계단이 있다. 지금은 길이 막혔지만 계단 아래에는 사재끝샘 터가 있다. 옛날 마을 사람들은 파도의 위험을 무릅쓰고 해안가를 따라와 이곳에서 물을 길렀다. 벼락이 친 뒤 떨어진 바위가 샘을 막아 흔적만 남았지만 물은 여전히 샘솟는다.        
 
길은 힘들지 않다. 손 대장은 “길을 낼 때 수직이 아닌 수평을 지향한다. 남녀노소 누구나 오갈 수 있는 길”이라고 말한다. 손 대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 아버지가 남자아이를 등에 업고 옆을 지나친다. 삼남길은 땅끝의 상징, 땅끝탑도 지난다. 해남군은 “땅끝에서 백두대간의 혼이 마지막으로 타올라 기(氣)와 역(力)이 모인다. 이곳에 서면 절망을 털고 희망을 안고 갈 수 있다”고 광고한다. 기와 역은 몰라도 시원한 파도 소리와 드넓은 바다는 분명 우리네 가슴을 뻥 뚫어준다.        
 
해안길 구간에서 나무 구경과 설화 감상은 덤이다. 해안길에는 소사나무, 다정큼나무, 주리뽕나무, 곰솔 등이 줄지어 서 있다. 나무에 이름표를 달아놓아 나무를 모르는 기자도 이름과 간단한 식생은 알 수 있다. 또 곳곳에 쉼터를 조성해 쉼터마다 설화의 제목으로 이름을 붙여놓았다. 사재끝샘, 당할머니, 학도래지, 달뜬봉, 댈기미, 사자포구 쉼터 등. 설화를 읽으며 걸으면 혼자 와도 심심하지 않다. 기자에게는 댈기미 쉼터 설화가 인상적이다. 땅끝전망대 서쪽 아래바다를 댈기미라 부른다. 이곳에서 사자봉 땅끝전망대를 보며 소원을 빈 뒤 자갈을 집어 물속으로 던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하지만 조건이 까다롭다. 곁에 아무도 없어야 한다. 주위를 둘러보니 사람이 줄지어 지나가는 데다, 손에 쥘 자갈도 없어 포기다.
        
201101280500006_3.jpg
 굽이굽이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 걸어 올라가면 서해와 남해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
2km 해안길은 해안초소 앞에서 끝난다. 이제는 넓은 임도를 따라 송호리 마을로 향한다. 잘 정돈된 마을에서 마을 사람들의 마음 씀씀이가 느껴진다. 도보 여행객에게는 한 번 스쳐지나는 곳이지만 그들에게는 삶의 터전이다. 도보의 흔적을 남기지 않고 걷는 것이 미덕이다. “특히 농작물에 손을 대는 것은 금물”이라고 손 대장이 알려준다. 눈이 마주치면 가볍게 목례 정도 하면 좋다.        
 
마을을 지나 아스팔트길을 따라 걸으면 오토캠핑장과 송호리해수욕장에 닿는다. 이곳에서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 오토캠핑장을 지나면 길을 잘 찾아야 한다. ‘송광민박마트’ 옆길로 따라 올라가야 한다. 바닥에 표시가 있지만 지워진 곳도 있어 찾기가 쉽지 않다. 손 대장은 “구제역으로 전남도가 계획했던 개통식이 3월로 미뤄졌다. 안내판 설치 작업에 해남군이 조금만 더 신경을 써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제부터 풍경이 확 바뀐다. 파도 소리는 이미 잦아들었고 한적한 시골길이 이어진다. 오른쪽으로 남해바다 대신 갈두봉에서 도솔봉으로 이어지는 산세가 넘실댄다. 삼남길 개척단은 갈두봉과 도솔봉 산길로 삼남길을 이을까 고민하다 길이 험해 이곳으로 코스를 삼는다.        
 
좁은 길을 따라 올라가자 순간 시야가 트이더니 매실농장이 펼쳐진다. 매실꽃 피는 봄이면 하얀 꽃잎이 절경을 이룬다. 매실농장을 뚫고 직진하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오른쪽 오르막길로 올라야 한다. 이제는 굽이굽이 치는 ‘S라인’ 임도를 따라 걷는 길이다. 약 9km지만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기에 크게 힘들지 않다. 멀리 보이는 서해와 병풍처럼 펼쳐진 도솔봉의 장관도 일품이다. 다리가 묵직해져올 때쯤 내리막이 끝난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향하면 마련마을이 나온다. 과거 제주도에서 보낸 말이 이곳에서 쉬며 훈련도 받았다고 해서 마련이란 이름을 얻었다.        
 
발아래 서해와 남해를 한눈에        
 
마련을 지나 길을 따라가면 도솔봉약수터가 나온다. 이곳에서 목을 축이며 체력을 보충한다. 현재 바이오순환림 조성 사업 중이라 우량 목재만 심어져 있어 황량한 느낌도 들지만 그 덕에 시야만큼은 시원하다.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도솔봉을 눈에 넣으며 한 발, 한 발 내디딘다. 10km 이상 걸었으니 점점 다리가 묵직해지지만, 오를수록 보이는 풍경이 늘어나니 참을 만하다. 도보여행의 보상이다 생각하며 정상을 향해 걷는다. 송지면 일대가 눈에 보인다 싶더니 멀리 서해까지 눈에 들어온다. 아직 감탄은 이르다. 정상부에 오르면 멀리 남해까지 볼 수 있다. 한자리에 서서 고개만 살짝 돌리는 것으로 서해와 남해를 한꺼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은 흔하지 않다.        
 
이제 내려갈 때다. 또 한 번 길 찾기에 유의해야 한다. 바닥 표시와 여러 산악회에서 걸어놓은 리본이 있는 곳에서 오른쪽을 내려다보면 조그마한 샛길이 있다. 겨울나무 사이를 눈을 밟고 내려간다. 여름에는 나무가 우거져 밀림처럼 변한다고 한다. 갈림길에서 다시 왼쪽으로 움직인다. 손 대장은 “1km 길을 만들려면 10km는 걸어야 한다. 갈림길이 나오면 모두 가본 뒤에 길을 이었다. 이곳은 송호리와 마련마을 사람들이 오가던 길”이라고 말한다.
        
옛길을 따라 내려가면 저수지가 펼쳐지고 곧 1코스 종착점인 통호리 마을에 도착한다. 중천에 떠 있던 해도 뉘엿뉘엿 땅끝기맥 너머로 떨어진다. 지는 해의 마지막 빛이 억새밭을 붉게 물들인다. 6시간을 걸으며 고생한 도보여행객에게 주는 자연의 선물이다. 마을 안에는 당집도 있으니 꼭 보길 바란다. 16.9km 거리가 짧다면 짧지만, 땅끝에서 시작해 해안길, 마을길, 임도, 산길, 옛길 등 길이란 길은 모두 걸었다. 도보여행의 종합선물세트다.        
 
[ Basic info. ]        
☞ 교통편        
버스 | 서울고속버스터미널을 출발해 해남으로 간다. 1일 7회 운행, 5시간 30분 소요. 해남읍에서 땅끝마을행 버스 이용        
자동차 | 경부호남고속도로 - 양재IC → 광산IC → 나주 → 영암 → 해남 서서울고속도로 - 서서울IC → 목포 → 영암 → 독천 → 해남읍 전남 해남군 송지면 땅끝마을 1202        
 
☞ 코스 땅끝선착장 매표소 → 땅끝탑 → 송호리해수욕장 → 마련 → 도솔봉 약수터 → 통호리(16.9km)
 
>>> 그리워 문득 찾아간 그곳 다산 정약용 선생 숨결이…        
둘째 날, 삼남길 강진군 코스를 돌아보았다. 이 길을 따라 걸으면 다산 정약용이 강진으로 유배 와 실학의 기틀을 닦았던 다산초당(茶山遺蹟), 사의재(四宜齋)와 다산 유물전시관, 백련사(白蓮寺), 철새도래지 등을 둘러볼 수 있다. 출발지는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다산유물전시관이다. 1999년 설립된 다산유물전시관은 다산의 일생과 업적, 유물 등을 잘 정리해놓았다. 유물전시관을 바라보고 오른쪽 길을 따라 곧게 뻗은 두충나무길을 지나서 얕은 고개를 넘으면 귤동마을이 나온다. 이곳에서 오르막을 따라 오르면 다산초당에 닿을 수 있다.        
 
이 길에는 사계절 푸른 대나무숲이 이어진다. 편백나무도 눈에 띈다. 오랜만에 마주 대한 푸른색이 반갑다. 군데군데 남아 있는 눈의 흔적이 아니라면, 겨울이 아니라고 해도 믿겠다. 무심코 땅 위로 나온 나무뿌리를 밟고 올라가는데 손 대장이 “울퉁불퉁한 근육처럼 힘찬 뿌리는 수백 년 된 소나무 뿌리다. 정호승 시인은 이 길을 ‘뿌리의 길’이라 이름 붙였다”고 알려준다. 시인이 어떤 연유로 뿌리의 길이라 이름 붙였을까 궁금하던 차에 ‘뿌리의 길’ 시가 적힌 나무판이 눈에 들어온다. 왼쪽이 시의 일부분이다.        
 
시를 읽으며 한숨 돌린다. 제 몸을 타인에게 내주고 발걸음을 가볍게 해준 뿌리에 감사한 마음이 들자 갑자기 차분해진다.        
 
뿌리의 길을 지나 다산의 제자 윤종진의 묘를 지나면 왼쪽에는 서암(西庵)이, 오른쪽에는 다산초당이 보인다. 서암은 18인의 제자가 기거하던 곳으로, 차를 마시며 밤늦도록 학문을 탐구한다는 뜻에서 다성각이라 부르기도 한다. 다산초당은 제자들을 가르치고 책을 썼던 곳이다. 다산은 18년간의 강진 유배생활 중 11년을 다산초당에 머물며 후진 양성과 실학 집대성에 힘썼다.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 600여 권의 저서의 산실이기도 하다. 이름은 지붕을 새끼를 이어 만들었다 해서 다산초당이지만 1957년 복원하면서 기와를 올렸다. 그래서 현재 이곳의 정확한 이름은 다산와당(瓦當)인 셈이다.
  201101280500006_6.jpg
다산초당, 사의재, 수백 년 된 소나무를 오르는 청설모, 눈 사이에 핀 꽃(왼쪽부터)
 
다산초당 주변의 다산4경        
 
다산초당 주변에는 다산4경이 있다. 다산이 해배(解配·유배에서 풀려나는 것)될 때 썼다는 정석(丁石, ‘정약용의 바위’란 뜻)의 글씨가 새겨진 정석바위, 다산이 찻물을 받았던 샘물 약천, 차를 우려 마셨던 널따란 바위 다조, 그리고 직접 해변가에서 돌을 날라 만든 연못 연지석가산이다. 약천에서는 지금도 물이 나오고, 연지석가산은 여전히 아름답다. 다조 옆에 서 바라보니 멀리 강진만이 눈에 들어온다. 손 대장은 “간척 사업을 한 뒤 논밭이 들어섰지만 옛날에는 이 앞까지 바다였다”고 말한다. 강진만과 다산이 살았던 한양의 한강의 잔잔한 물결이 닮았다고 하니 그리움이 애달프다.        
 
연지석가산을 지나 동암에 이른다. 동암의 다른 이름은 송풍루(松風樓). 다산이 저술에 필요한 2000여 권의 책을 갖추고 손님을 맞았던 곳이다. 초당에 있는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이곳에서 보내며 집필에 몰두했다. 다음은 천일각(天一閣)이다. 천일각은 ‘하늘 끝 한 모퉁이’라는 뜻의 천애일각(天涯一角)을 줄인 말이다. 강진군은 1975년 다산이 흑산도로 유배 간 형님 정약전이 그리울 때면 이 언덕에 서서 강진만을 바라보며 마음을 달랬으리라 생각해 천일각을 만들었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오르면 백련사로 가는 오솔길이 나온다.        
 
백련사로 가는 길은 유서가 깊다. 다산은 초당에 머물면서 백련사에 기거하던 아암 혜장선사와 우정을 나누었다. 혜장선사가 열 살 어렸지만 둘은 차를 마시며 학문을 논하던 서로의 스승이자 제자였다. 저 너머 백련사가 있다고 생각하니 발길이 빨라진다. 숨이 가빠온다. 다산이 혜장선사를 만나러 이 길을 걸었다고 생각하자, 반가운 벗이 있는 곳에 달려가는 그 두근거림이 느껴지는 듯하다. 그도 이처럼 바쁜 마음이었을까. 둘의 우정은 남달랐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혜장선사가 요절했기 때문이다. 다산이 쓴 글에서 혜장선사에 대한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삼경에 비가 내려 나뭇잎 때리더니
 
숲을 뚫고 횃불이 하나 왔다오.
 
혜장과는 참으로 연분이 있는지
 
절간 문을 밤 깊도록 열어놓았다네.”        
 
드디어 오솔길 정상이다. 오른쪽에 강진만을 둘러볼 수 있는 해월루(海月樓)가 있다. 얼음이 얼어 미끄러운 길을 조심조심 내려가자 눈 덮인 겨울 땅이 끝나고 양지바른 자리가 나오더니 야생 녹차밭이 펼쳐진다. 흰색과 대비되는 짙은 녹색이다. 여기서 백련사를 가려면 동백림 숲을 뚫고 지나야 한다. 지나가는 길에는 스님의 부도가 서 있다. 이른 봄 동백숲이 온통 붉은빛으로 휩싸이고 부도 위로 동백꽃이 떨어질 것을 생각하니 아찔하다.        
 
백련사에 당도하니 대웅전 보수 공사가 한창이다. 돌담에 기대앉아 앙상한 백일홍을 보며 한숨 돌린다. 백련사는 만덕산에 있어 ‘만덕사’라 부르기도 한다. 무염 스님이 839년 통일신라 때 창건했다. 백련사의 첫째 자랑은 절을 둘러싼 천연기념물 제151호 동백림이다. 겨울 풍경도 아쉬울 것 없으나 동백꽃 피는 봄에 꼭 다시 오리라 다짐한다.        
 
백련사·사의재·영랑 김윤식 생가 들러볼 만
 
이제부터의 길은 선택이다. 백련사에서 내려와 오른쪽의 늦봄대안학교를 끼고 다시 마을로 가 유물전시관으로 돌아갈 수도 있고, 늦봄대안학교 갈림길에서 그대로 내려와 철새도래지까지 걸어가면 제방길을 따라 강진읍내로 나갈 수 있다. 철새도래지와 갈대숲을 볼 수 있는 제방길을 걷는 데는 1시간 남짓 걸린다. 손 대장은 “평지라 걷기 좋지만 1시간 이상 걸으면 지루하다는 평이 많고, 화장실이 없어 불편하다”고 말한다.        
 
갈대숲은 제방길 끝 무렵에 있는데 그곳엔 남포다리가 있다. 제방길을 따라 남포다리까지 걸어도 되고, 우회도로로 차를 몰아 갈대숲만 보고 와도 된다. 차를 타고 가면 탐진강과 강진만이 합쳐지는 광경과 철새의 군무를 멀리서만 바라봐야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강진군은 다산초당에서 백련사를 지나 사의재, 영랑생가로 가는 문화생태탐방로를 만들었지만 제방길을 나와 남포다리부터는 길을 찾기가 무척 어렵다. 이 길을 만드는 데 참여한 손 대장이 없었다면, 길을 찾을 엄두도 못 낼 정도다. 오늘 도보의 종착점은 사의재다. 사의재는 다산이 강진으로 유배 와 처음 묵은 주막집이다. 다산은 이곳에서 절망과 좌절에 빠지지 않고 자신을 다잡고자 주막집 한쪽을 사의재라 이름 붙이고 마을 아이들을 모아 가르쳤다. 다산의 시 ‘우래’ 중 한 구절이 햇볕을 받고 서 있다.        
 
“천 명이 술에 취해 떠드는 속에 단정한 선비 하나 의젓하게 있고 보면 그들 천 명이 모두 손가락질하며 그 한 선비야 미쳤다고 한다네.”
        
사의재에서 강진경찰서, 강진군청 뒤를 따라 걸어가면 영랑생가가 나온다. 현대시 문학의 선구자 영량 김윤식이 나고 자란 곳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등 아름답고 따뜻하고 구수하고 부드러운 남도 서정시풍을 꽃피웠던 곳이다. 생가의 사랑채에 앉아 그의 시를 읊어보는 일도 도보여행의 또 다른 백미다. 영화 ‘취화선’을 비롯한 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장소이기도 하다.        
 
[ Basic info. ]
 
☞ 교통편        
 
버스 | 서울고속버스터미널을 출발해 강진으로 간다. 1일 6회 운행, 5시간 소요.        
 
자동차 | 경부 호남고속도로 - 양재IC → 광산IC → 나주 → 영암 → 성전에서 2번국도 → 강진 → 목리IC → 다산초당 방향 서해안고속도로 - 서서울IC → 목포IC → 영산강 하구둑 따라 2번국도 → 강진 → 목리IC → 다산초당 방향 전남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369번지        
 
☞ 코스 다산유물전시관 → 다산초당 → 백련사 → 철새도래지(제방길) → 강진읍 → 서의재 → 영랑생가(15km)
 
3-주간동아-2.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