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정보

섬진강 매화가 피었습니다.

코리아트레일 2007. 2. 22. 23:30
(::구례∼하동∼광양… 매화 찾아 가는 길::)

# 일찍 온 꽃소식에 환해진 마을 풍경

“워메, 매화가 오지게도 피었네. 여그 시집와서 정월도 되기 전에 매화가 꽃을 내민 건 올해가 첨이여.”

전남 광양시 다압면 매화마을에서 고개를 하나 넘으면 진상면 비평리 날마을(비촌)이다. 억불봉(1008m)과 쫓비산(538m), 깃대봉(495m)으로 둘러싸여 있는 날마을은 이맘때 고로쇠 수액으로 유명한 곳이다. 활짝 핀 매화 앞에서 섰다가 인근 마을로 산책을 다 녀오던 우남숙(62)씨와 마주쳤다. 우씨는 길섶의 늙은 매화나무 에 환한 꽃이 가득 달린 모습을 보고는 “세상이 다 환하다”며 탄성부터 질렀다. 햇볕은 따뜻하고, 산촌마을은 평화롭다. 활짝 핀 매화 사이로 꿀벌이 잉잉거리며 꿀을 모으고 있다.

매화는 남도 땅 여기저기서 고개를 내밀고 있다. 매화로 유명한 섬진강 자락이야 그렇다고 쳐도 다른 곳들의 매화까지 일제히 꽃송이를 내놓고 있다. 아직 꽃을 틔우지 않은 매화나무 가지들에 서도 둥글게 말고 있는 연초록 꽃받침 사이로 희고 붉은 꽃잎이 드러나보였다. 봄이 성큼성큼 큰 걸음으로 남도 땅의 도처에 도 달했다. 음력 정월이 채 되기도 전에 말이다. 동네 주민들은 “매화가 일찍 피면, 열매가 튼튼하지 않다”며 걱정하지만, 봄을 싣고 온 꽃소식이 싫지 않은 눈치다. 이제 곧 매화는 소복이 쌓인 눈처럼 섬진강변을 흰빛으로 가득 채우고, 북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리라.

# 눈보다 마음을 따스하게 덥히며 시작하는 여정

남도 땅의 매화를 만나려면 전남 구례에서 시작하는 것이 옳다. 거리나 시간으로 보면 경남 하동에서 출발하는 것이 더 빠르겠지만, 넉넉하고 부드럽게 흘러가는 섬진강의 정취를 함께 즐기려면 구례에서 출발하는 편이 훨씬 더 낫다. 이즈음 매화마을을 찾는 것은 꽃을 만나기 위한 것보다 ‘봄’을 만나기 위한 것이니 ?

뼈甄?.

구례에서 하동으로 향하는 길에서는 운조루를 먼저 찾아보는 게 순서다. 풀이해보자면 문화 류씨의 종갓집인 운조루는 ‘고대광 실’이지만, 없는 이들에 대한 배려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집이다. 운조루 곳간의 원통형 뒤주에는 조그마한 직사각형 구멍을 만 들고, 그 구멍을 여닿는 마개에다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글씨를 새겨넣었다. ‘누구라도 마음대로 열 수 있다’는 뜻이다. 누구라도 와서 쌀을 퍼갈 수 있는 이 뒤주는 운조루가의 나눔의 정신을 담은 보물 중의 보물이다. 끼니를 굶은 이웃들의 눈을 생각해 밥 짓는 연기가 오르지 않도록 굴뚝을 낮게 세워 놓은 것도 이런 배려의 정신 때문이다.

운조루 앞의 곡전재도 100여년이 된 천석꾼 부잣집이다. 지형이 금가락지처럼 생겼다고 해서 ‘금환락지’라는 이름이 붙은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은 수박만 한 돌로 둥글게 담을 쌓았다. 3m가 훌쩍 넘는 돌담에는 대나무가 심어져있어 집밖에서는 전혀 안을 들여다볼 수 없다. 마당 안쪽으로 연못의 물길을 파고 문간채 방?

【? 연못과 물길을 내다볼 수 있도록 해놓았다. 곡전재는 최근 민박을 받기 시작했는데, 고풍스러운 고택에서 봄향기를 느껴보 는 것도 새삼 각별하리라.

# 넉넉하게 또 부드럽게 섬진강의 풍경

섬진강은 봄에 가장 아름답다. 느릿느릿 넉넉하게 흘러가는 섬진강은 한쪽에 모래톱을 만들기도 하고, 다른 쪽에 갈대숲을 세워 놓기도 하면서 광양만을 향해 흘러내려간다. 섬진강에서 만나는 봄은 여러 가지 색깔이다. 우선 화개 쪽으로 꺾어져 쌍계사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초록색 보리밭이 눈길을 잡는다. 길 양옆에 도열해 있는 벚나무들은 아직 꽃봉오리를 만들지 않았지만, 융단처럼 깔린 보리밭은 구불구불한 이랑의 모습과 어울려 조형적인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화개천을 끼고 산 이쪽 저쪽의 비탈에는 차밭이 펼쳐져있다. 차나무는 사철 푸르다지만,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어진 이랑을 따라 심어진 차나무는 겨울철에는 무거운 초록이었다면, 봄에는 훨씬 더 가볍고 경쾌한 초록빛이다. 차밭으로 가는 길 곳곳에서는 운치있는 찻집들이 손님을 맞고 있다. 창밖 으로 화개천을 내다보면서 잘 우려낸 차 한 잔을 다기에 따라내 들면 코끝을 스치는 차향과 함께 풍류가 넘친다.

하동읍 방향으로 더 내려가면 악양면에 다다른다. 이른 봄이라 풍광은 가을만 못하지만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가 됐던 평사 리 들판과 최 참판댁을 둘러보면 여행의 느낌이 한결 풍성해진다. 악양에 닿기 전에 남도대교를 넘어서면 전남 광양땅이다. 이쪽은 그야말로 매화 천지다. 가로수로 심어진 매화가 푸릇푸릇한 꽃받침을 내놓고 있다. 꽃받침 사이로 희고 붉은 매화의 색깔이 번져 나온다. 성급한 몇 그루의 매화나무에는 꽃이 매달려 있다. 매화는 섬진강변부터 시작해 언덕을 타고 오르는데 이번 주말쯤 이면 섬진강변의 매화는 일제히 폭죽처럼 꽃을 피워올릴 것이다.

# 환한 매화부터 선혈 같은 붉은 동백까지

광양에서는 선혈과도 같이 붉은 동백꽃도 만날 수 있다. 광양 백계산의 동백림은 외지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선운사오동도의 동백에 못지않은 풍광을 자랑한다. 신라 때 도선국사가 옥룡사를 창건하고 풍수지리설에 따라 동백을 보호수로 심었다 는 전설이 전해온다. 동백숲은 백계산의 나지막한 산자락에 붉은 치마처럼 펼쳐져 있다. 2천100평의 동백숲에 7000여그루가 자생한다. 인공림이 아닌 자연림인 데다 수백 년 된 동백이 옥룡사지터와 운암사 뒤쪽 산을 가득 메우고 있다. 매년 3월 초에 꽃이 피기 시작한다는데 꽃소식이 빠른 올해는 동백꽃이 이미 절정으 로 치닫고 있다. 동백이 터널을 이룬 옥룡사에서 운암사에 이르 는 산책로에서는 동박새의 경쾌한 울음도 들을 수 있다. 한번의 여정으로 흰 매화와 붉은 동백을 함께 만나는 흔치 않은 경험을 해볼 수 있다.

하동에서 2번 국도를 타고 광양으로 향하다가 진월을 지나면 수 어댐을 만난다. 여기서 어치방면으로 우회전해 고개를 넘으면 수어저수지를 끼고 도는 운치있는 길로 접어든다. 이 길에도 지금 매화가 한창이지만, 이곳은 그보다 고로쇠 수액으로 유명한 곳이다. 섬진강변에서 차로 고작 10분도 안되는 거리지만, 외지인들 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곳. 봄철에 하동이나 광양의 섬진강변 마을이 관광객들로 넘쳐나도, 이곳은 한적하기 이를 데 없다. 고로쇠 수액이 3월 말까지 나니 매화나 벚꽃이 필 무렵에 찾아가면 고로쇠 물을 맛볼 수 있다. 저수지와 어치계곡을 따라 깔끔한 민박집들도 즐비하다.

구례·하동·광양 = 글·사진 박경일기자parking@munhwa.com

◆ 섬진강 가는 길 = 서울에서 출발하자면, 경부고속도로나 중부고속도로로 대전까지 가서 대전 - 통영 간 고속도로를 타고 하동IC에서 나와 하동 쪽으로 진입하는 것이 가장 빠르다.

구례 쪽에서 섬진강을 따라 여정을 잡았다면, 대전 - 통영 간 고속도로를 이용해 함양JC에서 88고속도로로 갈아탄다. 남원IC에 나와 19번 국도를 따라 가면 구례에 가 닿는다. 섬진강을 끼고 강 양편으로 길이 나있다.

화개에서는 섬진강을 기점으로 위쪽은 경상도, 아래쪽은 전라도 땅이다. 오고 갈 때 강 이쪽 저쪽 길을 번갈아서 이용하는 편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