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따라 걷기1/데미샘~마령~사선대~옥정호~장구목
강은 그리움을 따라 흐른다
글·사진 황소영 기자
전북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원신암마을 상추막이골에서 발원해 광양만에 이르기까지 3개도 10개 시·군에 걸쳐 약 212.3km를 흐르는 섬진강은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긴 강이다.
동으로는 백두대간과 낙남정맥, 서로는 호남정맥, 북으로는 금남호남정맥을 둔 산들의 강. 백두대간과 호남정맥의 마지막 정점인 지리산과 백운산 사이를 흐르며 530여 리의 여정을 한껏 풀어내는 남도의 강 섬진강. 대략 7박 8일, 길게는 열흘 이상 걸리는 이 여정은 섬진강을 유영하는 한 마리 물고기처럼 지친 영혼을 평온케 할 것이다.
첫째 날
데미샘~마령~포동~사선대 한 줄기 샘에서 태어난 강
아침 6시 20분에 출발하는 백운행 버스를 타고 진안을 벗어난다.
승객은 고작 취재진 뿐. 차창 밖은 온통 희뿌연 안개여서 덜컹대는 ‘무진장’ 버스의 낡은 소음만 안개 속을 헤집고 있었다.
날이 덥기는 더울 모양이다.
토해내듯 승객들을 버린 버스는 횅하니 사라지고, 그 동네 딱 한 대 뿐인 택시에 몸을 싣고 원신암마을로 이동한다.
해가 높아지면서 안개도 서서히 물러서고 있었다.
원신암 비포장도로 끝에서 천상데미 데미샘까지는 산길로 약 1.19km. 생태공원으로 지정된 초입을 들어서자 햇빛 들어올 틈도 없이 빼곡한 숲길이다.
25분쯤 올라서자 그늘에 가려진 데미샘이 보인다.
“데미라는 말은 더미(봉우리)의 전라도 사투리로 섬진강에서 천상으로 올라가는 봉우리란 뜻이어서 천상데미로 불리며, 이 샘이 천상데미에 있어 데미샘으로 불린다”라는 안내판이 서있다.
530여리를 흘러 남해까지 가는 동안 전라남도 47%, 전라북도 44%, 경상남도 9%를 적실 강줄기의 근원이 되는 곳. 데미샘에서부터 본격적인 섬진강 줄기 여행이 시작된다.
왔던 길을 되짚어 원신암마을로 내려간다.
섬진강 도보여행, 물줄기는 아직 ‘강’으로 승급하지 못한 실개천에 불과하다.
길은 강을 따르지만 그렇다고 온전히 물이 휘는 방향으로 걸을 수는 없었다.
5만분의 1 지형도(도엽명 임실)를 꺼내 들고 아스팔트길에 발을 내딛는다.
742번 지방도로다.
유동과 대전마을 진입로를 지나 도로변에 배낭을 내린다.
데미샘을 출발한 지 1시간 50분만이다.
미처 2시간을 걷지 못했는데 벌써부터 힘에 부친다.
새벽에 사온 김밥으로 급한 허기를 달래고 다시 출발이다.
오전 10시 28분 최양유허비와 정자 두 채가 지어진 반송마을을 지난다.
이렇게 멋진 정자가 있는 줄 알았다면 차량이 오가는 아스팔트 한 편에 배낭을 내리는 일은 없었을 텐데. 반송에서 20분쯤 걷자 관촌과 진안으로 갈리는 삼거리다.
삼거리 슈퍼 평상에 배낭을 내리고 시원한 병맥주를 마신다.
안주는 필요 없었다.
벌써부터 발바닥이 화끈대기 시작한다.
데미샘에서부터 치자면 약 10km 거리다.
슈퍼가 있는 동창마을에서 백운교를 건너 오른쪽 동산·윤기마을 방향으로 걸음을 옮긴다.
가로수가 전혀 없어 한낮의 태양이 고스란히 얼굴과 어깨 위로 내려앉는다.
우측으로 두 귀를 쫑긋 세운 마이산이 보인다.
12시 10분, 덕운교 아래로 붉은 물레방아 건물이 위태롭게 섰다.
전라북도 민속자료 제36호 건물이다.
1850년 이전부터 있었다던 이 붉은 집에서도 무수한 사랑들이 피고 졌으려나. 헛헛한 걸음으로 계남마을을 지난다.
시간은 이미 낮 1시를 넘어섰다.
배가 고프다.
면소재지에 나가기까지는 식당도 전혀 없다.
마령면으로 접어들자 모내기를 끝낸 논 너머로 마이산이 다시 고개를 내민다.
양 손은 퉁퉁 부어 바늘을 꽂기만 하면 풍선처럼 터져버릴 것 같다.
펄럭이는 ‘냉면’ 깃발을 보고 육일식당으로 들어선다.
토왕폭의 시원한 물줄기 사진이 허름한 식당 한쪽에서 연신 청량감을 쏟아 붓고 있었다.
“졸리면 좀 자고 가요.” 커다란 배낭에 주인아주머니가 어쩔 줄을 몰라 하며 면 사리를 한가득 챙겨준다.
하물며 ‘태워주겠다’는 운전자들의 유혹은 오죽하겠는가. 그저 걸어서 가야 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정중히 거절할 수밖에.2시 26분 마령을 출발해 5분쯤 걸었을 때 사거리가 나온다.
물론 직진, 강정마을 방향이다.
원강정을 지나면 강정교차로가 나오는데 한눈에 봐도 최근에 건설한 도로다.
수선루 쪽은 아직도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교차로에서 남원·관촌 방향으로 진입한다.
이제부터는 마을도 없다.
2003년 수정된 지형도에는 비포장도로로 표기된 구간. 처음 만나는 월운교 안내 동판에는 2004년 6월이라고 되어 있다.
정말 ‘따끈따끈한’ 도로다.
덕분에 바람도 그늘도 잠든 길, 매서운 속도로 쌩쌩 달리는 도로에서 두 발과 어깨만 고생하게 생겼다.
30분쯤 지나서야 겨우 내좌마을 입구가 보인다.
버스정류장에 앉아 양말을 벗고 열심히 주물럭댄다.
발바닥이 얼마나 화끈대는지 종이 한 장 갖다 대면 금방 점화가 될 것 같은 기분이다.
정류장에서 10분을 더 걸으면 원좌포와 양화 갈림길인데 관촌으로 가려면 직진이다.
오후 4시 47분 풍혈냉천에 닿는다.
석간수인 냉천은 사시사철 섭씨 3도를 유지하는 찬물로 피부병과 위장병에 특효가 있다고 알려진 곳. 발은 한 발자국도 움직이기 힘들만큼 지쳐 있었다.
산길을 걷는 것과 아스팔트를 걷는 것은 확연히 다르다.
허벅지와 엉덩이를 잇는 고관절에 무리가 온 모양이다.
절뚝대는 모습에 기념품 가게 아주머니가 며칠을 걸었냐고 묻는다.
오늘 아침 출발했다고 얘길 했더니 “겨우 하루 걷고 그러면 어쩌나. 작년에 온 여자는 배낭에 텐트까지 넣어 갖고 왔더라고. 그때가 벌써 20일 이상 걸었을 때라지. 저 다리 밑에서 텐트를 치고 잤다니까.”라며 위로인 듯 격려인 듯 질책인 듯한 말을 내뱉는다.
여자 혼자, 세상엔 대단한 여자들이 많다.
땀에 쓸린 허벅지를 냉천수로 닦아내고 다시 길을 나선다.
오후 5시 8분 양산교차로 앞. 왼쪽은 성수와 반룡 방향이고 직진은 좌포터널이다.
터널을 통과하면 관촌까지 빠르게 갈 수 있지만 강줄기를 거스를 수는 없다.
반룡으로 방향을 틀고 걷다 도로변에서 휴식을 취한다.
발바닥에 전해지는 통증과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의 무게가 걸음을 한참이나 더디게 한다.
휴식을 마치고 10분쯤 걷자 ‘명산휴게실’이 보인다.
식당을 겸한 그 집 평상에 배낭을 내리자 후덕한 인상의 주인아주머니가 냉장고에 넣어둔 찬물을 꺼내 오신다.
작년 이맘때쯤 광주에서 왔다는 중년 여자도 혼자 섬진강 여행을 한다며 이곳을 지나쳤단다.
대단한, 아니 여자는 정말 무섭고 독한 존재다.
오후 6시가 되어서야 걸음을 옮긴다.
해가 긴 계절이어서 이른 아침과 늦은 오후 이동이 한결 수월하다.
포동교차로에서 왼쪽 임실 방면으로 방향을 튼 후 다시 좌산교차로에서 직진한다.
저녁 8시 2분 마지막 기착지 사선대 국민관광지에 닿는다.
이미 사위는 어둑하고 두 다리는 중심을 잃은 채 흔들리고 있었다.
겨우 하루 걷고 이 모양이라니…. 사선대 주차장 정자 위에 침낭을 펴고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잠이 든다.
멀리 전라선 기차 소리가 귓전을 맴돌고 있었다.
둘째 날
관촌~옥정호~밤재~강진 옥정호 통과가 관건이다
새벽 5시쯤 눈을 뜬다.
말썽을 부리던 다리도 어느 정도 회복이 된 모양인지 제법 걸을만하다.
급하게 아침을 지어먹고 짐을 챙긴다.
운동을 하러 나온 주민들이 정자 위에 짐을 부린 취재진을 낯선 시선으로 바라본다.
네 명의 신선이 아름다운 풍광에 취해 놀았다는 사선대를 떠난 시간은 아침 7시 30분. 사선교를 건너 관촌교차로에서 직진하니 군부대가 나오면서 길이 막힌다.
예감이 안 좋다.
지도정치를 해보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동네 주민을 불러 세워 이곳이 어디쯤인지 확인한다.
“서산리란 마을인데 아마 지도에는 안 나올 겁니다.
대리로 가려면 관촌역에서 우회전해야 하고요.”다시 지도에 신경을 쏟는다.
가만, 처음부터 길을 잘못 짚었다.
길은 사선대에서 바로 이어진다.
전날 다리를 건너 사선대로 진입한 까닭에 이튿날 그 다리를 다시 건너 나온 것뿐인데, 낭패다.
관촌교차로로 돌아 나와 관촌역에 닿으니 8시 11분. 시원한 대합실에 앉아 허물어진 마음을 달래고 다시 이동이다.
덕분에 1시간을 까먹었다.
관촌역에서 공사 중인 오원교를 건너 대리마을에 진입한다.
구멍가게에서 두유와 ‘초코파이’ 하나씩을 사먹고 걸음을 서두른다.
9시 10분 제6탄약창을 지나고 두류마을 입구를 지나 도로변 그늘에 배낭을 내린다.
쉬는 횟수가 점점 늘어난다.
쉴 때마다 발을 주물러대며 제발 아프지 말아 줄 것을 당부해본다.
지형도는 ‘임실’에서 ‘갈담‘으로 바뀐다.
오전 10시 신평삼거리 정자. 아직도 해는 동쪽에 걸쳐져 있는데 반바지 밖으로 드러난 종아리는 붉은 소시지 두 개를 매달아 놓은 것 같다.
화끈대고 따갑고 간지럽기까지 하다.
비교적 태양과는 친숙한 편이라 생각했는데 어쩌면 태양을 향한 혼자만의 짝사랑인지도 모르겠다.
정자에 벌떡 누워 강바람을 쐬다 근처 파출소로 들어선다.
옥정호가 눈앞인데 도저히 저 댐을 제대로 건널 재간이 없다.
파출소를 홀로 지키던 K경사는 신평으로 온지 겨우 며칠 되었을 뿐이라며 여기저기 전화를 해서 옥정호 건너는 배편을 알아봐준다.
그러나 배는 없었다.
운암대교가 개통되면서 그나마 나루터를 오가던 배도 끊겨버렸단다.
지형도의 정 가운데를 대각선으로 긋고 있는 커다란 댐, 더구나 이리저리 굴곡진 이 길을 모두 돌아간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아니, 여유 있는 일정과 체력만 된다면 몇 십 km든 충분히 돌아갈 수 있겠는데, 아직은 그럴 여력이 없다.
옥정호는 1926년 동진 농지개량 조합에 의해 처음 준공됐고,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사업으로 1965년 준공됐다.
유역면적이 763㎢ 저수면적 26.5㎢ 총저수량 4억3천만 톤에 달하며, 섬진강 상류 물을 옥정리에서 막아 반대쪽인 서쪽 정읍군 칠보로 넘겨 계화도와 호남평야를 적신다.
물을 배수하면서 그 낙차를 이용해 발전하는 다목적 댐이기도 하다.
이곳에 다리가 건설된 건 1989년 8월 31일.일행들의 체력 상태를 고려해 운암대교까지 차량 이동을 결정한다.
아침부터 길을 잘못 드는 등 수선을 떨더니 결국 옥정호를 앞에 두고 도보여행에 오점을 남기게 된 것이다.
서로 아무 말이 없다가 11시 20분쯤 도착한 버스를 타고 신평을 벗어난다.
버스는 곧 운암면 쌍암리에 일행들을 내려놓는다.
동네 어귀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다시 1시 25분 버스를 타고 운암대교로 간다.
거리마다 ‘섬진강댐 정상화에 따른 생계대책 간구하라’, ‘수몰민의 한 섬진강댐 정상화’라는 현수막이 펄럭인다.
이 댐을 두고 임실군민들은 무슨 시름에 잠겨 있는 걸까.
운암대교 ‘다리방휴게소’에 배낭을 맡겨두고 시인 김용택 씨가 근무했던 마암분교에 다녀오니 벌써 오후 3시 20분. 10시 신평마을에 닿은 이후 5시간 만에 온전히 두 다리를 이용해 일정을 이어가는 셈이다.
운암대교 동쪽 운종리에서 27번 국도를 타고 밤재를 넘어가기로 한다.
댐은 산에 가려 보이지 않고 전주를 오가는 차량들만이 시원하게 길을 달린다.
무인카메라 앞에서 손을 흔들어 보이고 금계화랑 사진을 찍기도 하며 한껏 여유를 부리지만 힘에 부치는 건 어쩔 수 없다.
물집이 잡힌 새끼발가락과 발바닥이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도로에 배낭을 내린다.
지나던 차량이 4km 전방에 찜질방이 있다고 일러준다.
오늘은 비박이고 뭐고,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편하게 자고 싶다.
눈앞엔 온통 찜질방 생각뿐이다.
지친 몸을 뜨거운 물에 푹 넣고 충분히 쉬어주리. 어기적어기적 마지막 남은 힘을 완전히 짜내가며 걷는 취재진 앞에 대형 간판이 들어온다.
찜질방이다.
옷가지와 배낭에선 땀에 전 악취가 진동하고 있었다.
속옷도 빨아 널어두고 땀에 찌든 몸도…. 어, 이상하다.
폐교를 수리한 듯한 찜질방 마당에 잡초가 무성하다.
주차된 차량이 한 대도 없다.
매섭게 짖어대는 이웃의 개소리 뿐, 24시간 영업한다던 찜질방은 침묵으로 일관한다.
혹시나 하여 문을 밀어보니 단단히 잠겨있다.
철퍼덕, 다리가 휘청인다.
면소재지 강진까지는 약 4km. 1시간이면 된다.
나머지는 그때 가서 생각하자. 6시 57분 필봉농악전수관을 지나 7시 16분 강진 도착. 편의점에 들려 근처에 목욕탕이나 여관이 있는지 물어보지만 역시 아무 것도 없다.
피로한 몸을 이끌고 일정을 소화할 순 없었다.
제일 가까운 순창읍까지는 버스로 20여 분. ‘순창에서 가장 좋다’는 주민들의 추천에 따라 영업 종료시간이 코앞에 닥친 맥반석목욕탕에 들어가 이틀간의 피곤을 녹여본다.
살 것 같다.
이제야 살 것 같다.
셋째 날
덕치~구담~장구목~21번 국도 시간에 얽매이지 말고 즐기라
길은 끊어진 곳에서 이어진다.
순창 영빈모텔을 나와 아침 7시 30분에 출발하는 강진행 버스에 몸을 싣는다.
전날 패잔병처럼 떠나온 곳, 길은 강진터미널에서 다시 시작될 것이다.
터미널을 벗어나 회진교부터 회문리까지 제방길을 따른다.
지난 이틀이 지방도로와 국도 중심의 걷기였다면 셋째 날에야 비로소 섬진강 따라 걷는 재미가 있다.
지형도 도엽명은 ‘갈담’에서 ‘순창’으로 바뀐다.
광양까지는 총 8장의 지도, 1차 구간에서 소화해낼 지도는 순창까지 3장이다.
물우리를 지나며 “고추 맛있겠다” 무심코 내뱉었는데, 길 건너편의 할아버지가 “그럼 갖고 가라”며 양손 가득 풋고추를 따주신다.
설령 섬진강 물이 다 마른다 하더라도 순박한 전라도 인심은 쉽게 마르지 않을 듯하다.
감사한 마음으로 배낭 한쪽에 고추를 챙겨 넣는다.
돌담길이 예쁜 두무마을과 ‘섬진강 시인’ 김용택씨의 덕치초등학교를 지나 10시 25분 물우교에 닿는다.
사흘간의 일정동안 이 일대에서 가장 많이 보아온 건 복잡하게 얽힌 전깃줄, 민망할 만큼 납작해진 뱀들의 흔적, 강과 강을 잇는 다리, 신나게 짖어대는 동네 개들, 그리고 여전히 이곳저곳 파헤치는 공사 현장이다.
다행히 시인의 고향 장신리 진메마을부터 오늘 일정을 끝낼 21번국도 삼거리까지는 대부분 비포장 길. 섬진강은 길옆으로 바짝 다가서 있었다.
오전 11시 18분 장신리에 도착, 시인의 어머니는 집을 비우셨고 취재진은 동네 앞 노거수 앞에 배낭을 내리고 모처럼 여유를 부려본다.
길이 주는 편안함과 아름다움에 굳었던 근육들도 긴장을 풀고 있었다.
이 나무에게선 그리움이 묻어난다.
나무는 조잘대던 새소리를 기억할 것이며, 그늘 아래 평상을 펴고 누운 늙은 농사꾼의 하소연과 깊은 밤 사랑을 고백하던 파란 지붕집 사내아이의 수줍음을 기억한다.
잎을 모두 떨어뜨리고 아궁이 속 한줌 재로 사라지는 그날까지 숱한 세월 그에게로 와서 쉬어가고 위로를 얻던 모든 것들을 그리워하며 조용히 늙어갈 것이다.
섬진강과 그 물줄기를 따르던 여행객들의 뜨거운 땀 냄새도 나이테에 각인되길 바래본다.
낮 12시 23분 자갈과 흙이 섞인 오솔길 우측에서 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시멘트 약수터는 말라 있고, 그 옆 산비탈 사이로 차가운 물이 시원스레 몸을 풀고 있었다.
설탕과 섞어온 미숫가루를 타 마신다.
낮 1시 7분 섬진강수련원(063-644-6775)으로 변신한 구 천담분교를 지난다.
점심은 구담마을에서 먹기로 한다.
아침을 순창에서 먹고 왔으니 배가 고파도 한참 고플 시간이다.
천담마을을 벗어나자 너른 아스팔트다.
천담교 앞 구멍가게에서 아이스크림 하나씩을 사먹고 일어선다.
그늘도 바람도 잠이 든 어떤 오후, 아스팔트는 점점 키를 세우고, 길가에 나와 있던 뱀 한 마리만이 화들짝 놀라 풀숲으로 몸을 숨긴다.
천담을 떠난 지 한참이 지나도 도통 나타날 기미가 없던 구담마을엔 낮 2시 4분에야 닿는다.
이광모 감독의 <아름다운 시절> 촬영지 구담마을. 할아버지들은 전혀 뵈질 않고 할머니 서너 분이 회관 앞에 앉아 매실을 다듬고 계신다.
매실은 전주 공판장으로 택배 발송한다.
“날도 더운데 뭣 할라고 그리 고상을 하요. 점심은 마을회관에 들어가 먹어요. 냉장고에 시원한 물도 있고 가스렌지도 있응께.”“옛날엔 많이 살았는데 지금은 15가구나 될랑가. 몇 집이나 사는지 세보지도 않았어. 시방도 들어와서 촬영들은 많이 하더구만. 어디서 왔다고 말을 해줘도 알아들어야지. 그냥 하는가보다 합디요.”점심식사를 끝낸 다음 택배 포장을 돕고, 물걸레질을 하고, 가위질로 상처 입은 할머니 손가락에 구급 치료를 해준다.
“고맙구먼 고마워.” 인사를 하시지만 고마운 건 우리 나그네들 아니겠는가. “덕분에 잘 쉬었다 갑니다.
건강하세요.” 마을을 벗어난다.
그러나 길은 구담에서 끊겨 있다.
일정을 이으려면 강 건너 회룡마을로 가야 한다.
다리는 없다.
회룡을 휘돌아 흐르는 강줄기 사이에 징검다리만 있을 뿐. 며칠 전 내린 비 때문인지 강물은 이미 징검다리 몇 개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노둣돌을 놓을 수 없으니 부득이 신발을 벗어야 한다.
아니 덕분에 이렇게 맨발로 강물을 건널 수 있다.
오후 4시 10분 회룡마을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간이건물 삼거리가 나오고 길은 왼쪽으로 이어진다.
이곳에서 20분 거리가 섬진강 상류에서도 가장 경관이 빼어나다는 장구목(장군목)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순창군 동계면 어치리. 장구목가든 앞에는 요강바위가 있는데 내룡마을 사람들이 수호신처럼 받들고 있는 바위다.
요강처럼 가운데가 움푹 파인 이 바위는 깊이가 2m 폭이 대략 3m 무게는 무려 15톤. 한국전쟁 때는 이 바위 속에 몸을 숨겨 화를 면한 주민들도 있었다고 한다.
한때 도난을 당하고 되찾는 등 적지 않은 수난을 당했다.
장구목 주변은 온통 밤꽃 천지다.
야릇한 밤꽃 향기와 비릿한 물 냄새가 뒤섞여 정신이 혼미하다.
5시 30분 장구목가든을 출발해 1시간쯤 걸어 내려오면 오른쪽으로 갈림길이 보인다.
첫 번째 갈림길을 버리고 두 번째 갈림길에서 방향을 틀면 구미리다.
마을엔 머리가 잘린 거북형상의 돌 하나가 장승처럼 서있다.
이 거북의 꼬리는 마을을 향하고 있는데, 구미리의 부족한 풍수를 보완하여 마을의 재물이 유실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
구미리는 순창군 내에서도 최고의 명당으로 꼽히는데 남원 양씨가 무려 600여 년이나 터전으로 삼았던 땅이다.
5시 45분 구미교를 건너면서 21번국도(비포장)와 만난다.
낮은 하늘 사이로 몸을 숨긴 태양은 여느 때보다 일찍 어둠을 몰아오고 있었다.
저녁 7시 6분 입석·도왕마을 입구를 지나 7시 24분 순창읍과 남원으로 연결된 아스팔트에 닿는다.
1구간 일정은 21번국도 삼거리에서 끝낸다.
강은 산자락 왼편으로 크게 굴곡을 이루며 숨어 있고, 차량 없는 한적한 도로에는 낯익은 산새소리만 가득하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겐 그리움의 대상이 있다.
그것이 하물며 들에 핀 잡초일지라도 살아있는 생명은 끊임없이 무언가 혹은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매일매일 추억 하나씩을 만들고 산다.
오늘의 삶은 언젠가 떠올리게 될 또 하나의 그리움이다.
강은 여전히 그리움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INTERVIEW
김용택 시인·덕치초등학교 교사
“섬진강은 작고 예쁘고 서러운 강입니다”
전북 임실 섬진강 자락에서 나고 자란 ‘섬진강 시인’ 김용택(55세)씨는 일요일마다 산행에 나서는 열혈 산꾼이다.
거창한 장비나 뛰어난 보행 실력은 없지만, 그에게 산은 높이나 유명세와는 상관없이 ‘전라도 실핏줄 같은’ 삶의 터전이다.
가장 좋아하는 산은 강천산(584m). 4~5시간이면 산행이 충분하지만 등산로가 다양하고 포근하다.
물론 섬진강 줄기가 거치는 순창에 뿌리를 둔 산이기도 하다.
그의 책 제목대로 그리운 것은 산 뒤에 있다.
“섬진강은 작고 예쁘고 서러운 강입니다.
보는 강이 아니라 물에 담가보고 느끼는 강이지요. 오염은 됐지만 자정능력도 뛰어나고요. 계곡이 물을 걸러주거든요.”시인은 섬진강을 “소박하다”고 표현한다.
530여 리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길은 역시 고향길이다.
진메에서 천담까지 이어진 십리 길은 일명 ‘시인의 길’. 그의 본가가 있는 곳이어서 자연스럽게 붙은 이름이다.
“교사는 천직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이 평화로우니 복 받은 사람이지요. 장엄한 자연 속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고, 삶이 느린 농부들이 있으며, 문학과 예술도 누릴 수 있으니까요.”덕치초등학교 2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그이에겐 아이 같은 순진한 미소가 따라 다닌다.
전교생 32명, 2학년은 고작 4명 뿐. 성현이 채훈이 선영이 유빈이까지 선생님과 마주 앉아 또박또박 국어책을 읽어 내려가는 아이들 모습에서, 진솔한 삶 그러나 감히 공유할 수 없는 엄숙함이 느껴진다.
이 아이들의 부모까지 가르쳤다는 김용택 시인은 오늘도 섬진강의 소중한 미래를 위해 꿈을 키운다.
INFORMATION
섬진강 도보 여행
진안 데미샘에서 광양 망덕포구까지 이어진 섬진강 530여 리. 일정이 넉넉지 않거나 체력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100% 도보는 어렵다.
무엇보다 순수하게 물줄기만 따라가는 백패킹도 가능하지 않다.
물 주변에 습지와 풀이 우거져 걷기가 쉽지 않고 뱀이나 벌집도 많다.
섬진강 도보 여행은 물줄기 방향으로 이어진 지방도로와 국도를 걷는 여정이 주를 이룬다.
특히 상류쪽은 수량이 적어 셋째 날 덕치에서 장구목 구간에 들어와서야 제대로 된 섬진강, 제대로 된 비포장 길을 걷게 된다.
일정 중 상당수가 아스팔트를 걷는 길이어서 무엇보다 발 관리에 신경 써야 한다.
여관이나 수련원 등에서 자고 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하지 않는 한 배낭 무게가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조그만 시골이어서 면소재지로 나가지 않고선 식당을 만나는 일도 드물다.
무더위에 묵직한 배낭을 매고 아스팔트를 걷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빠르면 일정 첫날부터 물집이 생긴다.
물집 예방에는 몇 가지 속설이 있는데, 정말 효험이 있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
양말 속에 여성용 짧은 스타킹을 신거나 생리대를 깔 것, 발가락 사이에 베이비파우더를 뿌리거나 비누가루를 뿌릴 것, 발가락 양말을 신을 것 등등. 충격 흡수가 어려운 아스팔트이므로 워킹용 경등산화에 두 겹의 양말을 겹쳐 신는 것이 좋다.
쉴 때마다 양말을 벗고 발을 마사지해주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만약 물집이 잡혔다면 바늘에 실을 꿰어 물집을 통과시키고 바늘만 빼낸다.
그럼 실을 타고 물집 속의 물이 빠져나와 아침에 아문다.
숙식을 자체 해결해야 한다면 최소 50ℓ 이상 배낭에 매트리스·침낭·침낭커버 등의 침구류와 코펠·스토브·부식거리 등의 취사도구, 갈아입을 여벌옷, 속옷과 양말을 충분히 챙기는 것이 좋다.
이동 중 목욕탕을 만난다면 씻기도 하고 컨디션이 좋지 않을 경우 여관에서 푹 자두는 것도 괜찮다.
마을 입구에 정자가 있는 곳도 많아서 동네 이장님의 동의를 얻어 정자에서 자면 된다.
강물을 식수로 사용하긴 곤란하므로 취사도 동네에서 하는 게 좋다.
시골마을엔 대부분 연로한 어르신들만 계시므로 마을을 통과할 땐 선글라스 등을 벗고 먼저 인사를 하는 것이 좋다.
비박할 경우 모기향과 물파스도 챙겨간다.
그 외 지형도와 나침반도 기본이다.
아무리 강줄기 옆 도로를 따라 걷는 것이라 해도 자칫 길을 잃거나 방향 감각을 놓치는 경우가 있다.
떠나기 전 지도 위에 거쳐야 할 지명들을 미리 표시해두면 길을 잃을 염려가 덜하다.
지형도 5만분의 1 임실·갈담·순창
첫째 날
아침 8시 데미샘에 도착해 유동·대전·반송 등을 지나 동창마을에 닿는다.
여기까지 약 10km로 3시간 정도 걸린다.
동창에서 백운교를 건너 오른쪽 동산·윤기마을 쪽으로 이동한다.
그 후 원산·방화·계남 등을 지나 마령에 닿는데 면소재지이므로 이곳에만 식당이 있다.
점심을 먹고 출발한 시간이 낮 2시 26분. 그 후 강정교차로에서 남원·관촌 방향의 아스팔트를 따라 걷는데, 30분정도는 마을 구경하기 힘들다.
이정표를 따라 냉혈풍천에서 시원한 물을 마시고 양산교차로에서 성수 방면으로 이동한다.
그 후 포동과 방수리를 지나 사선대에는 저녁 8시에 도착했다.
휴식시간과 식사시간 포함 12시간 걸었으며 대략의 이동거리는 36km다.
진안에는 24시간 영업하는 김밥집이 있다.
만약 오후부터 일정을 시작했다면 백운면의 대광수련원(011-682-4370)이나 반송마을 정자 등에서 자면 된다.
사선대의 경우 관리사무소 옆에 식수대가 있고 화장실도 깨끗하다.
둘째 날
아침 7시 30분 사선대 출발. 길은 사선교를 건너지 않고 관촌역 쪽으로 이어진다.
취재진은 다리를 건너 관촌교차로로 간 덕분에 약 1시간 정도 손해를 봤다.
관촌역에서 신평면 면소재지까지는 약 1시간 20분. 옥정호를 건너는 배가 없어지면서 부득이 버스를 탄다.
도보로 옥정호를 모두 걸으려면 하루 이상 잡아야 할 터. 신평에서 11시 20분 버스로 운암면 쌍암리 이동, 파출소 마당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1시 25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운암대교 이동. 시골 버스는 정시 출발이 아니므로 버스 시간을 물어보고 미리 대기하고 있는 게 좋다.
그 후 운암대교에서 27번국도 밤재를 넘어 저녁 7시 16분 강진 도착. 버스를 타고 순창으로 이동, 순창의 여관에서 2박했다.
순창에서는(주민들에 의하면) 맥반석목욕탕 시설이 제일 좋고, 목욕탕 건물 1층 ‘덕수궁’이란 음식점이 요리가 깔끔하고 맛있다.
상추백반과 육회비빔밥과 김치찌개가 5000원씩. 여관은 그 근처 영빈모텔이 가장 눈에 띈다.
모두 터미널과 가깝다.
만약 데미샘이 아닌 운암대교부터 도보여행을 시작하려면 전주에서 시내버스를 타면 된다.
둘째 날은 버스 이동 포함 약 41km다.
셋째 날
순창에서 아침 7시 30분 차를 타고 다시 강진 이동, 전날 끝냈던 강진에서 일정을 시작한다.
셋째 날은 섬진강 여행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구간이다.
따라서 사진 찍는 일이 많아지고 그만큼 속도 내기가 어려웠다.
아침 7시 50분 강진터미널을 출발해 덕치·물우를 거쳐 김용택 시인이 근무하는 덕치초등학교에 들렸다가 신촌마을과 장신리를 지난다.
장신리부터는 비포장 길이어서 걷는 재미가 있다.
낮 2시 4분 구담마을에 도착 마을회관에서 점심을 해먹고, 회룡(내룡)마을로 이동. 다리가 없어 등산화를 벗고 강물을 건너야 한다.
징검다리가 놓여 있다.
그 후 장구목(요강바위)를 거쳐 구미교에 도착한 게 오후 5시 45분. 저녁 7시 24분 21번국도 도착. 10여분 후 도착한 버스를 타고 다시 순창으로 들어간다.
다음 일정은 순창에서 이곳 21번 국도로 이동, 계속 이어질 것이다.
셋째 날 이동거리는 약 23km다.
교통
섬진강 발원지 데미샘으로 가려면 먼저 전북 진안으로 가는 것이 좋다.
서울 센트럴시티터미널(www.easyticket.co.kr)에서 하루 두 번 버스가 다닌다.
전주에서는 진안행 버스가 수시로 운행되므로 어디서든 일단 전주까지 가는 것이 편하다.
취재진의 경우 아침부터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저녁 때 진안 이동. 진안에서 1박 후 아침 차로 백운으로 이동했다.
진안에서 백운행 첫차는 아침 6시 20분이지만 6시에도 출발하는 버스가 있긴 하다.
종종 터미널을 거치지 않으므로 무진장여객(063-433-5282)에 문의하는 것이 좋다.
진안에서 백운은 약 25분 걸리고 요금은 1250원이다.
그 외 진안에서 신암리까지 직접 가는 버스도 있지만 배차 간격이 상당히 뜸하다.
백운에서 택시(011-689-5209)를 타면 원신암마을까지 약 12분 정도 걸리며 요금은 1만원이다.
웃돈을 주더라도 데미샘 초입까지 가는 것이 편하다.
원점회귀가 어려우므로 지원조가 없는 이상 자가용 이동은 힘들다.
다만 구간별로 나눠서 할 경우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자가용을 이용할 수는 있다.
![]() |
◇ 전북 진안군 데미샘에서 발원한 섬진강은 전라도와 경상도를 거쳐 바다에 이르기까지 약 212.3km에 이른다. 우리나라에선 네 번째로 긴 강으로 비교적 오염이 덜 된 대표적 강으로 꼽히기도 한다. |
전북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원신암마을 상추막이골에서 발원해 광양만에 이르기까지 3개도 10개 시·군에 걸쳐 약 212.3km를 흐르는 섬진강은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긴 강이다.
동으로는 백두대간과 낙남정맥, 서로는 호남정맥, 북으로는 금남호남정맥을 둔 산들의 강. 백두대간과 호남정맥의 마지막 정점인 지리산과 백운산 사이를 흐르며 530여 리의 여정을 한껏 풀어내는 남도의 강 섬진강. 대략 7박 8일, 길게는 열흘 이상 걸리는 이 여정은 섬진강을 유영하는 한 마리 물고기처럼 지친 영혼을 평온케 할 것이다.
첫째 날
데미샘~마령~포동~사선대 한 줄기 샘에서 태어난 강
아침 6시 20분에 출발하는 백운행 버스를 타고 진안을 벗어난다.
승객은 고작 취재진 뿐. 차창 밖은 온통 희뿌연 안개여서 덜컹대는 ‘무진장’ 버스의 낡은 소음만 안개 속을 헤집고 있었다.
날이 덥기는 더울 모양이다.
토해내듯 승객들을 버린 버스는 횅하니 사라지고, 그 동네 딱 한 대 뿐인 택시에 몸을 싣고 원신암마을로 이동한다.
해가 높아지면서 안개도 서서히 물러서고 있었다.
원신암 비포장도로 끝에서 천상데미 데미샘까지는 산길로 약 1.19km. 생태공원으로 지정된 초입을 들어서자 햇빛 들어올 틈도 없이 빼곡한 숲길이다.
25분쯤 올라서자 그늘에 가려진 데미샘이 보인다.
“데미라는 말은 더미(봉우리)의 전라도 사투리로 섬진강에서 천상으로 올라가는 봉우리란 뜻이어서 천상데미로 불리며, 이 샘이 천상데미에 있어 데미샘으로 불린다”라는 안내판이 서있다.
530여리를 흘러 남해까지 가는 동안 전라남도 47%, 전라북도 44%, 경상남도 9%를 적실 강줄기의 근원이 되는 곳. 데미샘에서부터 본격적인 섬진강 줄기 여행이 시작된다.
왔던 길을 되짚어 원신암마을로 내려간다.
섬진강 도보여행, 물줄기는 아직 ‘강’으로 승급하지 못한 실개천에 불과하다.
길은 강을 따르지만 그렇다고 온전히 물이 휘는 방향으로 걸을 수는 없었다.
5만분의 1 지형도(도엽명 임실)를 꺼내 들고 아스팔트길에 발을 내딛는다.
742번 지방도로다.
유동과 대전마을 진입로를 지나 도로변에 배낭을 내린다.
데미샘을 출발한 지 1시간 50분만이다.
미처 2시간을 걷지 못했는데 벌써부터 힘에 부친다.
새벽에 사온 김밥으로 급한 허기를 달래고 다시 출발이다.
오전 10시 28분 최양유허비와 정자 두 채가 지어진 반송마을을 지난다.
이렇게 멋진 정자가 있는 줄 알았다면 차량이 오가는 아스팔트 한 편에 배낭을 내리는 일은 없었을 텐데. 반송에서 20분쯤 걷자 관촌과 진안으로 갈리는 삼거리다.
삼거리 슈퍼 평상에 배낭을 내리고 시원한 병맥주를 마신다.
안주는 필요 없었다.
벌써부터 발바닥이 화끈대기 시작한다.
데미샘에서부터 치자면 약 10km 거리다.
슈퍼가 있는 동창마을에서 백운교를 건너 오른쪽 동산·윤기마을 방향으로 걸음을 옮긴다.
가로수가 전혀 없어 한낮의 태양이 고스란히 얼굴과 어깨 위로 내려앉는다.
우측으로 두 귀를 쫑긋 세운 마이산이 보인다.
12시 10분, 덕운교 아래로 붉은 물레방아 건물이 위태롭게 섰다.
전라북도 민속자료 제36호 건물이다.
1850년 이전부터 있었다던 이 붉은 집에서도 무수한 사랑들이 피고 졌으려나. 헛헛한 걸음으로 계남마을을 지난다.
시간은 이미 낮 1시를 넘어섰다.
배가 고프다.
면소재지에 나가기까지는 식당도 전혀 없다.
마령면으로 접어들자 모내기를 끝낸 논 너머로 마이산이 다시 고개를 내민다.
양 손은 퉁퉁 부어 바늘을 꽂기만 하면 풍선처럼 터져버릴 것 같다.
펄럭이는 ‘냉면’ 깃발을 보고 육일식당으로 들어선다.
토왕폭의 시원한 물줄기 사진이 허름한 식당 한쪽에서 연신 청량감을 쏟아 붓고 있었다.
“졸리면 좀 자고 가요.” 커다란 배낭에 주인아주머니가 어쩔 줄을 몰라 하며 면 사리를 한가득 챙겨준다.
하물며 ‘태워주겠다’는 운전자들의 유혹은 오죽하겠는가. 그저 걸어서 가야 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정중히 거절할 수밖에.2시 26분 마령을 출발해 5분쯤 걸었을 때 사거리가 나온다.
물론 직진, 강정마을 방향이다.
원강정을 지나면 강정교차로가 나오는데 한눈에 봐도 최근에 건설한 도로다.
수선루 쪽은 아직도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교차로에서 남원·관촌 방향으로 진입한다.
이제부터는 마을도 없다.
2003년 수정된 지형도에는 비포장도로로 표기된 구간. 처음 만나는 월운교 안내 동판에는 2004년 6월이라고 되어 있다.
정말 ‘따끈따끈한’ 도로다.
덕분에 바람도 그늘도 잠든 길, 매서운 속도로 쌩쌩 달리는 도로에서 두 발과 어깨만 고생하게 생겼다.
30분쯤 지나서야 겨우 내좌마을 입구가 보인다.
버스정류장에 앉아 양말을 벗고 열심히 주물럭댄다.
발바닥이 얼마나 화끈대는지 종이 한 장 갖다 대면 금방 점화가 될 것 같은 기분이다.
정류장에서 10분을 더 걸으면 원좌포와 양화 갈림길인데 관촌으로 가려면 직진이다.
오후 4시 47분 풍혈냉천에 닿는다.
석간수인 냉천은 사시사철 섭씨 3도를 유지하는 찬물로 피부병과 위장병에 특효가 있다고 알려진 곳. 발은 한 발자국도 움직이기 힘들만큼 지쳐 있었다.
산길을 걷는 것과 아스팔트를 걷는 것은 확연히 다르다.
허벅지와 엉덩이를 잇는 고관절에 무리가 온 모양이다.
절뚝대는 모습에 기념품 가게 아주머니가 며칠을 걸었냐고 묻는다.
오늘 아침 출발했다고 얘길 했더니 “겨우 하루 걷고 그러면 어쩌나. 작년에 온 여자는 배낭에 텐트까지 넣어 갖고 왔더라고. 그때가 벌써 20일 이상 걸었을 때라지. 저 다리 밑에서 텐트를 치고 잤다니까.”라며 위로인 듯 격려인 듯 질책인 듯한 말을 내뱉는다.
여자 혼자, 세상엔 대단한 여자들이 많다.
땀에 쓸린 허벅지를 냉천수로 닦아내고 다시 길을 나선다.
오후 5시 8분 양산교차로 앞. 왼쪽은 성수와 반룡 방향이고 직진은 좌포터널이다.
터널을 통과하면 관촌까지 빠르게 갈 수 있지만 강줄기를 거스를 수는 없다.
반룡으로 방향을 틀고 걷다 도로변에서 휴식을 취한다.
발바닥에 전해지는 통증과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의 무게가 걸음을 한참이나 더디게 한다.
휴식을 마치고 10분쯤 걷자 ‘명산휴게실’이 보인다.
식당을 겸한 그 집 평상에 배낭을 내리자 후덕한 인상의 주인아주머니가 냉장고에 넣어둔 찬물을 꺼내 오신다.
작년 이맘때쯤 광주에서 왔다는 중년 여자도 혼자 섬진강 여행을 한다며 이곳을 지나쳤단다.
대단한, 아니 여자는 정말 무섭고 독한 존재다.
오후 6시가 되어서야 걸음을 옮긴다.
해가 긴 계절이어서 이른 아침과 늦은 오후 이동이 한결 수월하다.
포동교차로에서 왼쪽 임실 방면으로 방향을 튼 후 다시 좌산교차로에서 직진한다.
저녁 8시 2분 마지막 기착지 사선대 국민관광지에 닿는다.
이미 사위는 어둑하고 두 다리는 중심을 잃은 채 흔들리고 있었다.
겨우 하루 걷고 이 모양이라니…. 사선대 주차장 정자 위에 침낭을 펴고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잠이 든다.
멀리 전라선 기차 소리가 귓전을 맴돌고 있었다.
![]() |
◇ 마암분교를 돌아 나서면서 잠시 옥정호에 내려선 취재진. |
둘째 날
관촌~옥정호~밤재~강진 옥정호 통과가 관건이다
새벽 5시쯤 눈을 뜬다.
말썽을 부리던 다리도 어느 정도 회복이 된 모양인지 제법 걸을만하다.
급하게 아침을 지어먹고 짐을 챙긴다.
운동을 하러 나온 주민들이 정자 위에 짐을 부린 취재진을 낯선 시선으로 바라본다.
네 명의 신선이 아름다운 풍광에 취해 놀았다는 사선대를 떠난 시간은 아침 7시 30분. 사선교를 건너 관촌교차로에서 직진하니 군부대가 나오면서 길이 막힌다.
예감이 안 좋다.
지도정치를 해보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동네 주민을 불러 세워 이곳이 어디쯤인지 확인한다.
“서산리란 마을인데 아마 지도에는 안 나올 겁니다.
대리로 가려면 관촌역에서 우회전해야 하고요.”다시 지도에 신경을 쏟는다.
가만, 처음부터 길을 잘못 짚었다.
길은 사선대에서 바로 이어진다.
전날 다리를 건너 사선대로 진입한 까닭에 이튿날 그 다리를 다시 건너 나온 것뿐인데, 낭패다.
관촌교차로로 돌아 나와 관촌역에 닿으니 8시 11분. 시원한 대합실에 앉아 허물어진 마음을 달래고 다시 이동이다.
덕분에 1시간을 까먹었다.
관촌역에서 공사 중인 오원교를 건너 대리마을에 진입한다.
구멍가게에서 두유와 ‘초코파이’ 하나씩을 사먹고 걸음을 서두른다.
9시 10분 제6탄약창을 지나고 두류마을 입구를 지나 도로변 그늘에 배낭을 내린다.
쉬는 횟수가 점점 늘어난다.
쉴 때마다 발을 주물러대며 제발 아프지 말아 줄 것을 당부해본다.
지형도는 ‘임실’에서 ‘갈담‘으로 바뀐다.
오전 10시 신평삼거리 정자. 아직도 해는 동쪽에 걸쳐져 있는데 반바지 밖으로 드러난 종아리는 붉은 소시지 두 개를 매달아 놓은 것 같다.
화끈대고 따갑고 간지럽기까지 하다.
비교적 태양과는 친숙한 편이라 생각했는데 어쩌면 태양을 향한 혼자만의 짝사랑인지도 모르겠다.
정자에 벌떡 누워 강바람을 쐬다 근처 파출소로 들어선다.
옥정호가 눈앞인데 도저히 저 댐을 제대로 건널 재간이 없다.
파출소를 홀로 지키던 K경사는 신평으로 온지 겨우 며칠 되었을 뿐이라며 여기저기 전화를 해서 옥정호 건너는 배편을 알아봐준다.
그러나 배는 없었다.
운암대교가 개통되면서 그나마 나루터를 오가던 배도 끊겨버렸단다.
지형도의 정 가운데를 대각선으로 긋고 있는 커다란 댐, 더구나 이리저리 굴곡진 이 길을 모두 돌아간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아니, 여유 있는 일정과 체력만 된다면 몇 십 km든 충분히 돌아갈 수 있겠는데, 아직은 그럴 여력이 없다.
옥정호는 1926년 동진 농지개량 조합에 의해 처음 준공됐고,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사업으로 1965년 준공됐다.
유역면적이 763㎢ 저수면적 26.5㎢ 총저수량 4억3천만 톤에 달하며, 섬진강 상류 물을 옥정리에서 막아 반대쪽인 서쪽 정읍군 칠보로 넘겨 계화도와 호남평야를 적신다.
물을 배수하면서 그 낙차를 이용해 발전하는 다목적 댐이기도 하다.
이곳에 다리가 건설된 건 1989년 8월 31일.일행들의 체력 상태를 고려해 운암대교까지 차량 이동을 결정한다.
아침부터 길을 잘못 드는 등 수선을 떨더니 결국 옥정호를 앞에 두고 도보여행에 오점을 남기게 된 것이다.
서로 아무 말이 없다가 11시 20분쯤 도착한 버스를 타고 신평을 벗어난다.
버스는 곧 운암면 쌍암리에 일행들을 내려놓는다.
동네 어귀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다시 1시 25분 버스를 타고 운암대교로 간다.
거리마다 ‘섬진강댐 정상화에 따른 생계대책 간구하라’, ‘수몰민의 한 섬진강댐 정상화’라는 현수막이 펄럭인다.
이 댐을 두고 임실군민들은 무슨 시름에 잠겨 있는 걸까.
운암대교 ‘다리방휴게소’에 배낭을 맡겨두고 시인 김용택 씨가 근무했던 마암분교에 다녀오니 벌써 오후 3시 20분. 10시 신평마을에 닿은 이후 5시간 만에 온전히 두 다리를 이용해 일정을 이어가는 셈이다.
운암대교 동쪽 운종리에서 27번 국도를 타고 밤재를 넘어가기로 한다.
댐은 산에 가려 보이지 않고 전주를 오가는 차량들만이 시원하게 길을 달린다.
무인카메라 앞에서 손을 흔들어 보이고 금계화랑 사진을 찍기도 하며 한껏 여유를 부리지만 힘에 부치는 건 어쩔 수 없다.
물집이 잡힌 새끼발가락과 발바닥이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도로에 배낭을 내린다.
지나던 차량이 4km 전방에 찜질방이 있다고 일러준다.
오늘은 비박이고 뭐고,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편하게 자고 싶다.
눈앞엔 온통 찜질방 생각뿐이다.
지친 몸을 뜨거운 물에 푹 넣고 충분히 쉬어주리. 어기적어기적 마지막 남은 힘을 완전히 짜내가며 걷는 취재진 앞에 대형 간판이 들어온다.
찜질방이다.
옷가지와 배낭에선 땀에 전 악취가 진동하고 있었다.
속옷도 빨아 널어두고 땀에 찌든 몸도…. 어, 이상하다.
폐교를 수리한 듯한 찜질방 마당에 잡초가 무성하다.
주차된 차량이 한 대도 없다.
매섭게 짖어대는 이웃의 개소리 뿐, 24시간 영업한다던 찜질방은 침묵으로 일관한다.
혹시나 하여 문을 밀어보니 단단히 잠겨있다.
철퍼덕, 다리가 휘청인다.
면소재지 강진까지는 약 4km. 1시간이면 된다.
나머지는 그때 가서 생각하자. 6시 57분 필봉농악전수관을 지나 7시 16분 강진 도착. 편의점에 들려 근처에 목욕탕이나 여관이 있는지 물어보지만 역시 아무 것도 없다.
피로한 몸을 이끌고 일정을 소화할 순 없었다.
제일 가까운 순창읍까지는 버스로 20여 분. ‘순창에서 가장 좋다’는 주민들의 추천에 따라 영업 종료시간이 코앞에 닥친 맥반석목욕탕에 들어가 이틀간의 피곤을 녹여본다.
살 것 같다.
이제야 살 것 같다.
![]() |
◇ 밤재를 넘어가는 27번국도에서 다리쉼을 하고 있는 취재진. 아스팔트를 걷는 일은 산길보다 훨씬 힘에 부친다. |
셋째 날
덕치~구담~장구목~21번 국도 시간에 얽매이지 말고 즐기라
길은 끊어진 곳에서 이어진다.
순창 영빈모텔을 나와 아침 7시 30분에 출발하는 강진행 버스에 몸을 싣는다.
전날 패잔병처럼 떠나온 곳, 길은 강진터미널에서 다시 시작될 것이다.
터미널을 벗어나 회진교부터 회문리까지 제방길을 따른다.
지난 이틀이 지방도로와 국도 중심의 걷기였다면 셋째 날에야 비로소 섬진강 따라 걷는 재미가 있다.
지형도 도엽명은 ‘갈담’에서 ‘순창’으로 바뀐다.
광양까지는 총 8장의 지도, 1차 구간에서 소화해낼 지도는 순창까지 3장이다.
물우리를 지나며 “고추 맛있겠다” 무심코 내뱉었는데, 길 건너편의 할아버지가 “그럼 갖고 가라”며 양손 가득 풋고추를 따주신다.
설령 섬진강 물이 다 마른다 하더라도 순박한 전라도 인심은 쉽게 마르지 않을 듯하다.
감사한 마음으로 배낭 한쪽에 고추를 챙겨 넣는다.
돌담길이 예쁜 두무마을과 ‘섬진강 시인’ 김용택씨의 덕치초등학교를 지나 10시 25분 물우교에 닿는다.
사흘간의 일정동안 이 일대에서 가장 많이 보아온 건 복잡하게 얽힌 전깃줄, 민망할 만큼 납작해진 뱀들의 흔적, 강과 강을 잇는 다리, 신나게 짖어대는 동네 개들, 그리고 여전히 이곳저곳 파헤치는 공사 현장이다.
다행히 시인의 고향 장신리 진메마을부터 오늘 일정을 끝낼 21번국도 삼거리까지는 대부분 비포장 길. 섬진강은 길옆으로 바짝 다가서 있었다.
오전 11시 18분 장신리에 도착, 시인의 어머니는 집을 비우셨고 취재진은 동네 앞 노거수 앞에 배낭을 내리고 모처럼 여유를 부려본다.
길이 주는 편안함과 아름다움에 굳었던 근육들도 긴장을 풀고 있었다.
이 나무에게선 그리움이 묻어난다.
나무는 조잘대던 새소리를 기억할 것이며, 그늘 아래 평상을 펴고 누운 늙은 농사꾼의 하소연과 깊은 밤 사랑을 고백하던 파란 지붕집 사내아이의 수줍음을 기억한다.
잎을 모두 떨어뜨리고 아궁이 속 한줌 재로 사라지는 그날까지 숱한 세월 그에게로 와서 쉬어가고 위로를 얻던 모든 것들을 그리워하며 조용히 늙어갈 것이다.
섬진강과 그 물줄기를 따르던 여행객들의 뜨거운 땀 냄새도 나이테에 각인되길 바래본다.
낮 12시 23분 자갈과 흙이 섞인 오솔길 우측에서 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시멘트 약수터는 말라 있고, 그 옆 산비탈 사이로 차가운 물이 시원스레 몸을 풀고 있었다.
설탕과 섞어온 미숫가루를 타 마신다.
낮 1시 7분 섬진강수련원(063-644-6775)으로 변신한 구 천담분교를 지난다.
점심은 구담마을에서 먹기로 한다.
아침을 순창에서 먹고 왔으니 배가 고파도 한참 고플 시간이다.
천담마을을 벗어나자 너른 아스팔트다.
천담교 앞 구멍가게에서 아이스크림 하나씩을 사먹고 일어선다.
그늘도 바람도 잠이 든 어떤 오후, 아스팔트는 점점 키를 세우고, 길가에 나와 있던 뱀 한 마리만이 화들짝 놀라 풀숲으로 몸을 숨긴다.
천담을 떠난 지 한참이 지나도 도통 나타날 기미가 없던 구담마을엔 낮 2시 4분에야 닿는다.
이광모 감독의 <아름다운 시절> 촬영지 구담마을. 할아버지들은 전혀 뵈질 않고 할머니 서너 분이 회관 앞에 앉아 매실을 다듬고 계신다.
매실은 전주 공판장으로 택배 발송한다.
“날도 더운데 뭣 할라고 그리 고상을 하요. 점심은 마을회관에 들어가 먹어요. 냉장고에 시원한 물도 있고 가스렌지도 있응께.”“옛날엔 많이 살았는데 지금은 15가구나 될랑가. 몇 집이나 사는지 세보지도 않았어. 시방도 들어와서 촬영들은 많이 하더구만. 어디서 왔다고 말을 해줘도 알아들어야지. 그냥 하는가보다 합디요.”점심식사를 끝낸 다음 택배 포장을 돕고, 물걸레질을 하고, 가위질로 상처 입은 할머니 손가락에 구급 치료를 해준다.
“고맙구먼 고마워.” 인사를 하시지만 고마운 건 우리 나그네들 아니겠는가. “덕분에 잘 쉬었다 갑니다.
건강하세요.” 마을을 벗어난다.
그러나 길은 구담에서 끊겨 있다.
일정을 이으려면 강 건너 회룡마을로 가야 한다.
다리는 없다.
회룡을 휘돌아 흐르는 강줄기 사이에 징검다리만 있을 뿐. 며칠 전 내린 비 때문인지 강물은 이미 징검다리 몇 개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노둣돌을 놓을 수 없으니 부득이 신발을 벗어야 한다.
아니 덕분에 이렇게 맨발로 강물을 건널 수 있다.
오후 4시 10분 회룡마을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간이건물 삼거리가 나오고 길은 왼쪽으로 이어진다.
이곳에서 20분 거리가 섬진강 상류에서도 가장 경관이 빼어나다는 장구목(장군목)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순창군 동계면 어치리. 장구목가든 앞에는 요강바위가 있는데 내룡마을 사람들이 수호신처럼 받들고 있는 바위다.
요강처럼 가운데가 움푹 파인 이 바위는 깊이가 2m 폭이 대략 3m 무게는 무려 15톤. 한국전쟁 때는 이 바위 속에 몸을 숨겨 화를 면한 주민들도 있었다고 한다.
한때 도난을 당하고 되찾는 등 적지 않은 수난을 당했다.
장구목 주변은 온통 밤꽃 천지다.
야릇한 밤꽃 향기와 비릿한 물 냄새가 뒤섞여 정신이 혼미하다.
5시 30분 장구목가든을 출발해 1시간쯤 걸어 내려오면 오른쪽으로 갈림길이 보인다.
첫 번째 갈림길을 버리고 두 번째 갈림길에서 방향을 틀면 구미리다.
마을엔 머리가 잘린 거북형상의 돌 하나가 장승처럼 서있다.
이 거북의 꼬리는 마을을 향하고 있는데, 구미리의 부족한 풍수를 보완하여 마을의 재물이 유실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
구미리는 순창군 내에서도 최고의 명당으로 꼽히는데 남원 양씨가 무려 600여 년이나 터전으로 삼았던 땅이다.
5시 45분 구미교를 건너면서 21번국도(비포장)와 만난다.
낮은 하늘 사이로 몸을 숨긴 태양은 여느 때보다 일찍 어둠을 몰아오고 있었다.
저녁 7시 6분 입석·도왕마을 입구를 지나 7시 24분 순창읍과 남원으로 연결된 아스팔트에 닿는다.
1구간 일정은 21번국도 삼거리에서 끝낸다.
강은 산자락 왼편으로 크게 굴곡을 이루며 숨어 있고, 차량 없는 한적한 도로에는 낯익은 산새소리만 가득하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겐 그리움의 대상이 있다.
그것이 하물며 들에 핀 잡초일지라도 살아있는 생명은 끊임없이 무언가 혹은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매일매일 추억 하나씩을 만들고 산다.
오늘의 삶은 언젠가 떠올리게 될 또 하나의 그리움이다.
강은 여전히 그리움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 |
◇ 김용택 시인 |
INTERVIEW
김용택 시인·덕치초등학교 교사
“섬진강은 작고 예쁘고 서러운 강입니다”
전북 임실 섬진강 자락에서 나고 자란 ‘섬진강 시인’ 김용택(55세)씨는 일요일마다 산행에 나서는 열혈 산꾼이다.
거창한 장비나 뛰어난 보행 실력은 없지만, 그에게 산은 높이나 유명세와는 상관없이 ‘전라도 실핏줄 같은’ 삶의 터전이다.
가장 좋아하는 산은 강천산(584m). 4~5시간이면 산행이 충분하지만 등산로가 다양하고 포근하다.
물론 섬진강 줄기가 거치는 순창에 뿌리를 둔 산이기도 하다.
그의 책 제목대로 그리운 것은 산 뒤에 있다.
“섬진강은 작고 예쁘고 서러운 강입니다.
보는 강이 아니라 물에 담가보고 느끼는 강이지요. 오염은 됐지만 자정능력도 뛰어나고요. 계곡이 물을 걸러주거든요.”시인은 섬진강을 “소박하다”고 표현한다.
530여 리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길은 역시 고향길이다.
진메에서 천담까지 이어진 십리 길은 일명 ‘시인의 길’. 그의 본가가 있는 곳이어서 자연스럽게 붙은 이름이다.
“교사는 천직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이 평화로우니 복 받은 사람이지요. 장엄한 자연 속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고, 삶이 느린 농부들이 있으며, 문학과 예술도 누릴 수 있으니까요.”덕치초등학교 2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그이에겐 아이 같은 순진한 미소가 따라 다닌다.
전교생 32명, 2학년은 고작 4명 뿐. 성현이 채훈이 선영이 유빈이까지 선생님과 마주 앉아 또박또박 국어책을 읽어 내려가는 아이들 모습에서, 진솔한 삶 그러나 감히 공유할 수 없는 엄숙함이 느껴진다.
이 아이들의 부모까지 가르쳤다는 김용택 시인은 오늘도 섬진강의 소중한 미래를 위해 꿈을 키운다.
INFORMATION
섬진강 도보 여행
진안 데미샘에서 광양 망덕포구까지 이어진 섬진강 530여 리. 일정이 넉넉지 않거나 체력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100% 도보는 어렵다.
무엇보다 순수하게 물줄기만 따라가는 백패킹도 가능하지 않다.
물 주변에 습지와 풀이 우거져 걷기가 쉽지 않고 뱀이나 벌집도 많다.
섬진강 도보 여행은 물줄기 방향으로 이어진 지방도로와 국도를 걷는 여정이 주를 이룬다.
특히 상류쪽은 수량이 적어 셋째 날 덕치에서 장구목 구간에 들어와서야 제대로 된 섬진강, 제대로 된 비포장 길을 걷게 된다.
일정 중 상당수가 아스팔트를 걷는 길이어서 무엇보다 발 관리에 신경 써야 한다.
여관이나 수련원 등에서 자고 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하지 않는 한 배낭 무게가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조그만 시골이어서 면소재지로 나가지 않고선 식당을 만나는 일도 드물다.
무더위에 묵직한 배낭을 매고 아스팔트를 걷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빠르면 일정 첫날부터 물집이 생긴다.
물집 예방에는 몇 가지 속설이 있는데, 정말 효험이 있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
양말 속에 여성용 짧은 스타킹을 신거나 생리대를 깔 것, 발가락 사이에 베이비파우더를 뿌리거나 비누가루를 뿌릴 것, 발가락 양말을 신을 것 등등. 충격 흡수가 어려운 아스팔트이므로 워킹용 경등산화에 두 겹의 양말을 겹쳐 신는 것이 좋다.
쉴 때마다 양말을 벗고 발을 마사지해주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만약 물집이 잡혔다면 바늘에 실을 꿰어 물집을 통과시키고 바늘만 빼낸다.
그럼 실을 타고 물집 속의 물이 빠져나와 아침에 아문다.
숙식을 자체 해결해야 한다면 최소 50ℓ 이상 배낭에 매트리스·침낭·침낭커버 등의 침구류와 코펠·스토브·부식거리 등의 취사도구, 갈아입을 여벌옷, 속옷과 양말을 충분히 챙기는 것이 좋다.
이동 중 목욕탕을 만난다면 씻기도 하고 컨디션이 좋지 않을 경우 여관에서 푹 자두는 것도 괜찮다.
마을 입구에 정자가 있는 곳도 많아서 동네 이장님의 동의를 얻어 정자에서 자면 된다.
강물을 식수로 사용하긴 곤란하므로 취사도 동네에서 하는 게 좋다.
시골마을엔 대부분 연로한 어르신들만 계시므로 마을을 통과할 땐 선글라스 등을 벗고 먼저 인사를 하는 것이 좋다.
비박할 경우 모기향과 물파스도 챙겨간다.
그 외 지형도와 나침반도 기본이다.
아무리 강줄기 옆 도로를 따라 걷는 것이라 해도 자칫 길을 잃거나 방향 감각을 놓치는 경우가 있다.
떠나기 전 지도 위에 거쳐야 할 지명들을 미리 표시해두면 길을 잃을 염려가 덜하다.
지형도 5만분의 1 임실·갈담·순창
첫째 날
아침 8시 데미샘에 도착해 유동·대전·반송 등을 지나 동창마을에 닿는다.
여기까지 약 10km로 3시간 정도 걸린다.
동창에서 백운교를 건너 오른쪽 동산·윤기마을 쪽으로 이동한다.
그 후 원산·방화·계남 등을 지나 마령에 닿는데 면소재지이므로 이곳에만 식당이 있다.
점심을 먹고 출발한 시간이 낮 2시 26분. 그 후 강정교차로에서 남원·관촌 방향의 아스팔트를 따라 걷는데, 30분정도는 마을 구경하기 힘들다.
이정표를 따라 냉혈풍천에서 시원한 물을 마시고 양산교차로에서 성수 방면으로 이동한다.
그 후 포동과 방수리를 지나 사선대에는 저녁 8시에 도착했다.
휴식시간과 식사시간 포함 12시간 걸었으며 대략의 이동거리는 36km다.
진안에는 24시간 영업하는 김밥집이 있다.
만약 오후부터 일정을 시작했다면 백운면의 대광수련원(011-682-4370)이나 반송마을 정자 등에서 자면 된다.
사선대의 경우 관리사무소 옆에 식수대가 있고 화장실도 깨끗하다.
둘째 날
아침 7시 30분 사선대 출발. 길은 사선교를 건너지 않고 관촌역 쪽으로 이어진다.
취재진은 다리를 건너 관촌교차로로 간 덕분에 약 1시간 정도 손해를 봤다.
관촌역에서 신평면 면소재지까지는 약 1시간 20분. 옥정호를 건너는 배가 없어지면서 부득이 버스를 탄다.
도보로 옥정호를 모두 걸으려면 하루 이상 잡아야 할 터. 신평에서 11시 20분 버스로 운암면 쌍암리 이동, 파출소 마당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1시 25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운암대교 이동. 시골 버스는 정시 출발이 아니므로 버스 시간을 물어보고 미리 대기하고 있는 게 좋다.
그 후 운암대교에서 27번국도 밤재를 넘어 저녁 7시 16분 강진 도착. 버스를 타고 순창으로 이동, 순창의 여관에서 2박했다.
순창에서는(주민들에 의하면) 맥반석목욕탕 시설이 제일 좋고, 목욕탕 건물 1층 ‘덕수궁’이란 음식점이 요리가 깔끔하고 맛있다.
상추백반과 육회비빔밥과 김치찌개가 5000원씩. 여관은 그 근처 영빈모텔이 가장 눈에 띈다.
모두 터미널과 가깝다.
만약 데미샘이 아닌 운암대교부터 도보여행을 시작하려면 전주에서 시내버스를 타면 된다.
둘째 날은 버스 이동 포함 약 41km다.
셋째 날
순창에서 아침 7시 30분 차를 타고 다시 강진 이동, 전날 끝냈던 강진에서 일정을 시작한다.
셋째 날은 섬진강 여행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구간이다.
따라서 사진 찍는 일이 많아지고 그만큼 속도 내기가 어려웠다.
아침 7시 50분 강진터미널을 출발해 덕치·물우를 거쳐 김용택 시인이 근무하는 덕치초등학교에 들렸다가 신촌마을과 장신리를 지난다.
장신리부터는 비포장 길이어서 걷는 재미가 있다.
낮 2시 4분 구담마을에 도착 마을회관에서 점심을 해먹고, 회룡(내룡)마을로 이동. 다리가 없어 등산화를 벗고 강물을 건너야 한다.
징검다리가 놓여 있다.
그 후 장구목(요강바위)를 거쳐 구미교에 도착한 게 오후 5시 45분. 저녁 7시 24분 21번국도 도착. 10여분 후 도착한 버스를 타고 다시 순창으로 들어간다.
다음 일정은 순창에서 이곳 21번 국도로 이동, 계속 이어질 것이다.
셋째 날 이동거리는 약 23km다.
교통
섬진강 발원지 데미샘으로 가려면 먼저 전북 진안으로 가는 것이 좋다.
서울 센트럴시티터미널(www.easyticket.co.kr)에서 하루 두 번 버스가 다닌다.
전주에서는 진안행 버스가 수시로 운행되므로 어디서든 일단 전주까지 가는 것이 편하다.
취재진의 경우 아침부터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저녁 때 진안 이동. 진안에서 1박 후 아침 차로 백운으로 이동했다.
진안에서 백운행 첫차는 아침 6시 20분이지만 6시에도 출발하는 버스가 있긴 하다.
종종 터미널을 거치지 않으므로 무진장여객(063-433-5282)에 문의하는 것이 좋다.
진안에서 백운은 약 25분 걸리고 요금은 1250원이다.
그 외 진안에서 신암리까지 직접 가는 버스도 있지만 배차 간격이 상당히 뜸하다.
백운에서 택시(011-689-5209)를 타면 원신암마을까지 약 12분 정도 걸리며 요금은 1만원이다.
웃돈을 주더라도 데미샘 초입까지 가는 것이 편하다.
원점회귀가 어려우므로 지원조가 없는 이상 자가용 이동은 힘들다.
다만 구간별로 나눠서 할 경우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자가용을 이용할 수는 있다.
'도보 정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커버스토리]도심 속 사색과 여유…봄을 깨우는 ‘그 길’ (0) | 2007.03.24 |
---|---|
새 봄 꽃길에서 만끽하세요” (0) | 2007.03.16 |
섬진강 따라 걷기2/시목~석촌~압록~화개~섬진교~망덕포구 (0) | 2007.03.12 |
3월20일 2차 서울 경계 도보-날짜 변경했습니다. (0) | 2007.03.08 |
3월4일(일) 서울시 경계 릴레이 도보 (0) | 2007.0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