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따라 걷기 1.
강은 그리움을 따라 흐른다
데미샘~마령~사선대~신월~운암대교~강진~(순창)~덕치~구담~장구목~21번국도
월간 <마운틴> 05년 7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진안 데미샘에서 광양 망덕포구까지 이어진 섬진강 550여 리, 일정이 넉넉치 않거나 체력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100% 도보는 어렵다. 무엇보다 순수하게 물줄기만 따라가는 백패킹도 가능하지 않다. 물 주변에 습지와 풀이 우거져 걷기가 쉽지 않고 뱀이나 벌집도 많다. 섬진강 도보 여행은 물줄기 방향으로 이어진 지방도로와 국도를 걷는 여정이 주를 이룬다. 특히 상류쪽은 수량이 적어 셋째날 덕치에서 장구목 구간에 들어와서야 제대로 된 섬진강, 제대로 된 비포장길을 걷게 된다.
일정 중 상당수가 아스팔트를 걷는 길이어서 무엇보다 발 관리에 신경 써야 한다. 여관이나 수련원 등에서 자고 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하지 않는 한 배낭 안에 침낭과 취사도구와 약간의 부식거리를 넣어야 하고, 당연히 배낭 무게가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조그만 시골이어서 면소재지로 나가지 않고선 식당을 만나는 일도 드물다. 무더위에 묵직한 배낭을 메고 아스팔트를 걷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빠르면 일정 첫날부터 물집이 생긴다.
물집 예방에는 몇 가지 속설이 있는데, 정말 효험이 있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 양말 속에 여성용 판타롱스타킹을 신거나 생리대를 깔 것, 발가락 사이에 베이비파우더를 뿌리거나 비누가루를 뿌릴 것, 발가락 양말을 신을 것 등등. 충격 흡수가 어려운 아스팔트이므로 워킹용 경등산화에 두 겹의 양말을 겹쳐 신는 것이 좋다. 쉴 때마다 양말을 벗고 발을 마사지해주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만약 물집이 잡혔다면 바늘에 실을 꿰어 물집을 통과시키고 바늘만 빼낸다. 그럼 실을 타고 물집 속의 물이 빠져나와 아침에 아문다.
숙식을 자체 해결해야 한다면 최소 50리터 이상 배낭에 매트리스·침낭·침낭커버 등의 침구류와 코펠·스토브·부식거리 등의 취사도구, 갈아 입을 여벌옷과 속옷과 양말을 충분히 챙기는 것이 좋다. 이동 중 목욕탕을 만난다면 씻기도 하고 컨디션이 좋지 않을 경우 여관에서 푹 자두는 것도 괜찮다. 마을 입구에 정자가 있는 곳도 많아서 동네 이장님의 동의를 얻어 정자에서 자면 된다. 강물을 식수로 사용하긴 곤란하므로 취사도 동네에서 하는 게 좋다. 시골마을엔 대부분 연로한 어르신들만 계시므로 마을을 통과할 땐 선글라스 등을 벗고 먼저 인사를 하는 것이 좋다. 비박할 경우 모기향과 물파스도 챙겨간다. 그외 지형도와 나침반도 기본이다. 아무리 강줄기 옆 도로를 따라 걷는 것이라 해도 자칫 길을 잃거나 방향 감각을 놓치는 경우가 있다. 떠나기 전에 거쳐야 할 지명들에 미리 표시를 해두면 길을 잃을 염려가 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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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별 주요 포인트 체크
첫째 날 아침 8시 데미샘에 도착해 유동·대전·반송 등을 지나 동창마을에 닿는다. 여기까지 약 10km
둘째 날 아침 7시 30분 사선대 출발. 길은 사선교를 건너지 않고 관촌역쪽으로 이어진다. 취재진은 다리를 건너 관촌교차로로 간 덕분에 약 1시간 정도 손해를 봤다. 관촌역에서 신평면소재지까지는 약 1시간 20분. 옥정호를 건너는 배가 없어지면서 부득이 버스를 탄다. 도보로 옥정호를 모두 걸으려면 하루 이상 잡아야 할 터. 신평에서 11시 20분 버스로 운암면 쌍암리 이동, 파출소 마당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1시 27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운암대교 이동. 시골 버스는 정시 출발이 아니므로 버스 시간을 물어보고 미리 대기하고 있는 게 좋다. 그후 운암대교에서 27번국도 밤재를 넘어 저녁 7시 16분 강진 도착. 버스를 타고 순창으로 이동, 순창의 여관에서 2박했다. 순창에서는 (주민들에 의하면) 맥반석목욕탕 시설이 제일 좋고, 목욕탕 건물 1층 <덕수궁>이란 음식점이 요리가 깔끔하고 맛있다. 상추백반과 육회비빔밥과 김치찌개가 5천원씩. 여관은 그 근처 영빈모텔이 가장 눈에 띈다. 모두 터미널과 가깝다. 만약 데미샘이 아닌 운암대교부터 도보여행을 시작하려면 전주에서 시내버스를 타면 된다. 둘째날은 버스 이동 포함 약 41km다.
셋째 날 순창에서 아침 7시 30분 차를 타고 다시 강진 이동. 전날 끝냈던 강진에서 다시 일정을 시작한다. 셋째날은 섬진강 여행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구간이다. 따라서 사진 찍는 일이 많아지고 그만큼 속도 내기가 어려웠다. 아침 7시 50분 강진터미널을 출발해 덕치·물우를 거쳐 김용택 시인이 근무하는 덕치초등학교에 들렸다가 신촌마을과 장신리를 지난다. 장신리부터는 비포장길이어서 걷는 재미가 있다. 낮 2시 4분 구담마을에 도착 마을회관에서 점심을 해먹고, 회룡(내룡)마을로 이동. 다리가 없어 등산화를 벗고 강물을 건너야 한다. 징검다리가 놓여 있다. 그후 장구목(요강바위)을 거쳐 구미교에 도착한 게 오후 5시 45분. 저녁 7시 24분 21번국도 도착. 10여분 후 도착한 버스를 타고 다시 순창으로 들어간다. 다음 일정은 순창에서 이곳 21번 국도로 이동, 계속 이어질 것이다. 셋째날 이동거리는 약 23km다.
지형도 5만분의 1 임실·갈담·순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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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편
원점회귀가 어려우므로 지원조가 없는 이상 자가용 이동은 힘들다. 다만 구간별로 나눠서 할 경우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자가용을 이용할 수는 있다. |
섬진강 따라 걷기 1.
강은 그리움을 따라 흐른다
데미샘~마령~사선대~신월~운암대교~강진~(순창)~덕치~구담~장구목~21번국도
2005년 6월 8일 (수) - 지형도 1:5만 임실.
아침 06시 20분 진안에서 백운으로 출발. 1250원.
06시 40분 백운면 도착
--- 택시로 원신암 마을 이동 (12분 소요 / 1만원)
07시 18분 출 발
07시 35분 이정표 (데미샘 1.19km / 원신암마을 1.9km)
07시 45분 이정표 (데미샘 0.69km / 원신암마을 1.9km / 천상데미 1.36km)
08시 00분 데미샘 (천상데미 0.67km / 원신암마을 2.59km)
08시 08분 출 발
08시 45분 원신암마을
08시 57분 신암1교 (데미샘 초입 안내판)
09시 05분 갈림길 (왼쪽 신암 / 오른쪽 진안 임실)
09시 26분 유동마을 입구
09시 39분 대전마을 입구
09시 49분 휴 식 (도로변에서 - 김밥 먹음)
10시 03분 출 발
10시 28분 반송마을 입구 (최양유허비 / 정자)
10시 34분 대광수련원 (011-682-4370 / 063-433-4370)
10시 42분 석전마을 입구
10시 50분 갈림길 (관촌과 진안)
--- 동창수퍼에서 병맥주 사마심. 넘 맛있었음.
11시 07분 출 발 (동창-신암 9.6km / 내동산 보임)
11시 18분 백운교 (갈림길 우측 / 마이산 보임)
11시 34분 동산마을 입구
11시 38분 윤기마을 입구
11시 47분 내동마을 입구 (버스 승차장에서 휴식 / 이 구간 가로수 없음)
오후 12시 02분 출 발
12시 06분 봉서마을 입구 (정자 / 오른쪽으로)
12시 10분 덕운교 (다리 아래 물레방아 다녀옴. 쉴 평상 있음)
12시 22분 출 발
12시 24분 하원산마을 (평상)
12시 40분 백마교 (휴식 - 나무그늘에서)
12시 53분 출 발
13시 05분 방화마을 입구 (정자)
13시 13분 계남마을 입구 (정자 두 개)
13시 23분 갈림길 (왼쪽 진안 방향 / 정자)
--- 마령면소재지에 접어들자 마이산이 다시 보임
13시 40분 마령면소재지 (마령중고교를 옆에 끼고 진행)
--- 점심은 육일식당에서 냉면. 맛있진 않았음
14시 26분 출 발
14시 32분 사거리 (직진 강정 / 왼쪽 관촌과 성수 - 직진할 것)
14시 36분 원강정마을 입구 (정자)
14시 59분 강정교차로 (남원 관촌 방향 - 마을 없이 아스팔트 도로만 이어짐)
15시 10분 월운교 (수량 풍부 / 다리 아래 간이화장실 있음)
15시 31분 출 발
15시 53분 내좌마을 입구 (버스 승차장에서 휴식)
16시 17분 출 발
16시 26분 갈림길 (원좌포와 양화. 관천 방향 직진)
16시 38분 양화교 (건너 좌측)
16시 47분 풍혈냉천
17시 03분 출 발
17시 08분 양산교차로 (왼쪽 성수 반룡 / 직진 좌포터널 / 성수 방향으로 진행)
17시 29분 휴 식 (도로변에서)
17시 34분 출 발
17시 45분 반룡교 입구 (성수 관촌 갈림길 / 직진)
--- 휴식 (명산휴게실)
18시 01분 출 발
18시 23분 휴 식 (정자에서)
18시 34분 출 발
18시 41분 포동교차로 사거리 (왼쪽 임실 방향)
19시 10분 방수리마을 입구
19시 36분 좌산교차로 (직진 / 좌산교차로-임마누엘수양관 11km)
20시 02분 사선대 도착 (1박 / 정자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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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9일 (목) - 지형도 1:5만 임실. 갈담. 아침 07시 30분 출 발 (사선교) 07시 42분 관촌교차로 (직진 - 군부대 방향) 07시 47분 굴다리 --- 길 잘못 들었음. 사선대에서 다리 건너지 말고 바로 진행할 것 08시 11분 관촌교차로 (오른쪽으로) 08시 32분 관촌역 (휴식 - 대합실에서) 08시 40분 출 발 08시 57분 대기마을 입구 (정자 / 오는 길에 베지밀과 초코파이 사먹음) 09시 10분 제6탄약창 입구 09시 20분 두류마을 입구 09시 24분 휴 식 (도로변 나무그늘 아래에서) 09시 39분 농원 입구 (호암교) 09시 51분 상천마을 입구 10시 00분 신평 삼거리 (정자 휴식) --- <40년 수몰민의 한 섬진강댐 정상화 - 임실군> 현수막 보임 --- 운암대교까지 버스 이동 결정 11시 20분 운암행 버스 승차 11시 31분 운암면 쌍암리 도착 (점심식사 - 파출소 뒷마당에서) 오후 13시 27분 출 발 (막은댐 방향. 1인당 1500원) 13시 45분 도 착 --- <섬진강댐 정상화에 따른 생계 대책 간구하라> 현수막 보임 --- 다리방휴게소에 배낭 맡기고 마암분교 다녀옴 14시 00분 출 발 (버스 잘못 내려서 다리 왕복했음) 14시 22분 마암분교 14시 40분 출 발 --- 옥정호 관리사무소 063-643-2256 14시 57분 운암대교 돌아옴 / 27번국도로 진로 결정 15시 20분 출 발 15시 54분 신기마을 (휴식 - 대나무상회에서 세수함) 16시 11분 출 발 16시 29분 모시울 입구 (길은 밤재를 넘어가므로 오르막 아스팔트) 16시 47분 휴 식 (도로변 / 전주 28km 안내판 보임) 16시 57분 출 발 17시 03분 상율치마을 입구 (정자) 17시 43분 찜질방 (영업 안함) 17시 52분 출 발 18시 28분 휴 식 (도로변 나무그늘에서) 18시 47분 출 발 18시 57분 필봉농악전수관 입구 19시 16분 강진 도착 19시 36분 순창으로 출발 --- 순창 영빈모텔에서 2박.
6월 10일(금) 우천으로 일정 연기. 13일(월) 다시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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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3일 (월) - 지형도 1:5만 갈담. 순창. 아침 07시 30분 출 발 (순창에서 강진으로. 1600원) 07시 50분 강진터미널 도착 --- 회진교에서 강진교까지 제방길 08시 08분 강진교 08시 24분 제방길 (여기서 사진 몇 컷 찍느라 지체) 08시 48분 공사중 다리 (양계장 있음) 08시 57분 회문리 입구 09시 12분 물우마을 입구 09시 22분 출 발 09시 30분 두무마을 (돌담길 예쁨) 09시 35분 덕치초등학교 (김용택 시인 뵙고) 10시 06분 출 발 10시 25분 물우교 (사진 촬영) 10시 38분 출 발 --- 도로에서 물우교 가기 전 오른쪽 제방길. 그러나 중간에 길이 끊기므로 신촌마을로 진입할 것 11시 18분 장신마을 (휴식 - 나무그늘 아래서. 정자도 있음) --- 마을 앞 개울에 징검다리 있음 11시 58분 출 발 오후 12시 23분 휴 식 (길가에 샘 있음. 산에서 흐르는 물) --- 이 구간은 오솔길(섬진강과 절개면). 산쪽으로 붙어가면 시원함 핸드폰 통화 안 됨 12시 45분 출 발 13시 07분 섬진강수련원 (구)천담분교 063-644-6775 13시 14분 천담교 (다리 앞 구멍가게에서 아이스바 사먹음) 13시 24분 출 발 (아스팔트 오르막) 14시 04분 구담마을 도착 (마을회관에서 점심식사) 15시 35분 출 발 (당산나무 왼쪽 내리막) 15시 57분 징검다리 (신발 벗어야 함. 초입 찾느라 약간 헤멤) 16시 10분 회룡마을 16시 25분 간이마을 삼거리 (왼쪽) 16시 43분 요강바위 17시 30분 출 발 (장구목가든에서 맥주 마심) 18시 23분 갈림길 (두 번째 우측 길) 18시 45분 구미교 18시 50분 출 발 19시 06분 입석 도왕마을 입구 19시 24분 21번국도 삼거리 - 일정 끝 19시 37분 버스 (다시 순창으로. 850원) 19시 49분 순창 도착 (귀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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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따라 걷기 1.
강은 그리움을 따라 흐른다
데미샘~마령~사선대~신월~운암대교~강진~(순창)~덕치~구담~장구목~21번국도
월간 <마운틴> 05년 7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전북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원신암마을 상추막이골에서 발원해 광양만에 이르기까지 3개도 10개 시·
군에 걸쳐 약 212.3km를 흐르는 섬진강은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긴 강이다. 동으로는 백두대간과 낙남정맥, 서로는 호남정맥, 북으로는 금남호남정맥을 둔 산들의 강. 백두대간과 호남정맥의 마지막 정점인 지리산과 백운산 사이를 흐르며 530여 리의 여정을 한껏 풀어내는 남도의 강 섬진강. 대략 7박 8일, 길게는 열흘 이상 걸리는 이 여정은 섬진강을 유영하는 한 마리 물고기처럼 지친 영혼을 평온케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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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날 데미샘~마령~포동~사선대 한줄기 샘에서 태어난 강
아침 6시 20분에 출발하는 백운행 버스를 타고 진안을 벗어난다. 승객은 고작 취재진 뿐. 차창 밖은 온통 희뿌연 안개여서 덜컹대는 '무진장' 버스의 낡은 소음만 안개 속을 헤집고 있었다. 날이 덥기는 더울 모양이다. 토해내듯 승객들을 버린 버스는 휭하니 사라지고, 그 동네 딱 한 대 뿐인 택시에 몸을 싣고 원신암마을로 이동한다. 해가 높아지면서 안개도 서서히 물러서고 있었다.
원신암 비포장도로 끝에서 천상데미 데미샘까지는 산길로 약 1.19km. 생태공원으로 지정된 초입을 들
"사철 물이 마르지 않고, 수정 같이 맑고, 이가 시리도록 차가우며, 어떤 샘에서도 맛볼 수 없는 미묘한 맛"이라는 칭찬이 자자하지만 정작 샘은 옹색할 만큼 수량이 적고, 물 위엔 이유를 알 수 없는 부유물들이 가득하다. 차마 그 물을 마실 수가 없어 이 샘이 주는 상징적 의미만 가슴 속에 시원하게 넘겨본다. 데미샘에서부터 본격적인 섬진강 줄기 여행이 시작된다. 왔던 길을 되짚어 원신암마을로 내려간다. 택시에서 내릴 때부터 유심히 살펴보던 동네 어르신이 "아따, 벌써 다녀왔능가? 동작 빠르네." 관심을 보이신다. 가볍게 인사를 드리고 원신암을 떠난다. (05년 6월 24일... 2주만에 다시 데미샘을 찾았는데. 그땐 물이 깨끗하고 정말 시원했음!!!)
섬진강 도보 여행, 물줄기는 아직 '강'으로 승급하지 못한 실개천에 불과하다. 길은 강을 따르지만 그렇다고 온전히 물이 휘는 방향으로 걸을 수는 없었다. 5만분의 1 지형도(도엽명 임실)을 꺼내들고 물을 따라 아스팔트 길에 발을 내딛는다. 742번 지방도로다. 유동과 대전마을 진입로를 지나 도로변에 배낭을 내린다. 데미샘을 출발한지 1시간 50분만이다. 미처 2시간을 걷지 못했는데 벌써부터 힘에 부친다. 새벽에 사온 김밥으로 급한 허기를 달래고 다시 이동이다.
오전 10시 28분 최양유허비와 정자 두 채가 지어진 반송마을을 지난다. 이렇게 멋진 정자가 있는 줄 알았담 차량이 오가는 아스팔트 한 켠에 배낭을 내리는 일은 없었을 텐데. 미리 말하자면 웬만한 마을 입구에는 쉬어 가기 좋은 정자가 있다. 반송에서 20분쯤 걷자 관촌과 진안으로 갈리는 삼거리다. 삼거리 수퍼 평상에 배낭을 내리고 시원한 병맥주를 산다. 안주는 필요 없었다. 벌써부터 발바닥이 화끈대기 시작한다. 데미샘에서부터 치자면 약 10km 구간이다. 수퍼가 있는 동창마을에서 백운교를 건너 오른쪽 동산·윤기마을 방향으로 걸음을 옮긴다. 가로수가 전혀 없어 한낮의 태양이 고스란히 얼굴과 어깨 위로 내려앉는다. 우측으로 두 귀를 쫑긋 세운 마이산이 보인다. 지금 저 산은 따그락따그락 젊은이들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있을까.
'냉면' 펄럭이는 깃발을 보고 육일식당으로 들어선다. 토왕폭의 시원한 물줄기 사진이 허름한 식당 한쪽에서 연신 청량감을 쏟아붓고 있었다. "졸리면 좀 자고 가쇼." 커다란 배낭에 주인 아주머니가 어쩔 줄을 몰라하며 면사리를 한가득 챙겨준다. 하물며 '태워주겠다'는 운전자들의 유혹은 오죽하겠는가. 그저 걸어서 가야 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정중히 거절할 수밖에.
2시 26분 마령을 출발해 5분쯤 걸었을 때 사거리가 나온다. 물론 직진 강정마을 방향이다. 원강정을 지나면 강정교차로가 나오는데, 한눈에 봐도 최근에 건설한 도로다. 수선루 쪽은 아직도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교차로에서 남원·관촌 방향으로 진입한다. 이제부터는 마을도 없다. 2003년 수정된 지형도에는 비포장도로로 표기된 구간. 처음 만나는 월운교 안내동판에는 2004년 6월이라고 되어 있다. 정말 따끈따끈한 도로다. 덕분에 바람도 그늘도 없는 길, 매서운 속도로 쌩쌩 달리는 도로에서 두 발과 어깨만 고생하게 생겼다. 30분쯤 지나서야 겨우 내좌마을 입구가 보인다. 버스 정류장에서 앉아 양말을 벗고 열심히 주물럭댄다. 얼마나 화끈대는지 종이 한장 갖다대면 금방 점화가 될 것 같은 느낌이다. 정류장에서 10분을 더 걸으면 원좌포와 양화 갈림길인데 관촌으로 가려면 직진이다.
오후 4시 47분 풍혈냉천에 닿는다. 진안군 자료에 따르면 풍혈에는 한여름에도 섭씨4도의 찬 바람이 나와 일제 강점기 땐 한천공장과 잠종보관소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마을 주민들의 여름철 김치저장에 이용된다는데, 차마 풍혈까지 갈 힘은 없고 냉천으로 내려선다. 석간수인 냉천은 사시사철 변함없이 섭씨3도의 찬물을 내뿜고 있으며, 피부병과 위장병에 특효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의 명수'로 꼽힐 만큼 물맛이 좋고, 명의 허준이 약 짓던 물로 쓰기도 했단다.
발은 한 발자국도 움직이기 힘들 만큼 지쳐 있었다. 산길을 걷는 것과 아스팔트를 걷는 것은 확연히 다르다. 허벅지와 엉덩이를 잇는 고관절에 무리가 온 모양이다. 절뚝대는 모습에 냉천 가게방 아주머니가 며칠을 걸었냐고 묻는다. 오늘 아침 출발했다고 얘길했더니 "겨우 하루 걷고 그러면 어쩌나. 작년에 온 여자는 스물여덟이라는데 배낭에 텐트까지 넣어 갖고 왔더라고. 그때가 벌써 20일 이상 걸었을 때라지. 저 다리 밑에서 텐트를 치고 잤다니까."라며 위로인 듯 격려인 듯 질책인 듯도 한 말을 내뱉는다. 여자 혼자, 세상엔 대단한 여자들이 많다. 땀에 쓸린 허벅지를 냉천수로 닦아내고 다시 길을 나선다.
오후 5시 8분 양산교차로 앞. 왼쪽은 성수와 반룡 방향이고 직진은 좌포터널이다. 터널을 통과하면 관촌까지 빠르게 갈 수 있지만 강줄기를 거스를 수는 없다. 반룡으로 방향을 틀고 걷다 도로변에서 휴식을 취한다. 발바닥에 전해지는 통증과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의 무게가 걸음을 한참이나 더디게 한다. 휴식을 마치고 10분쯤 걷자 반룡교가 보이고 그 옆으로 '명산휴게실'이 나타난다. 식당을 겸한 그 집 평상에 배낭을 내리자 후덕한 인상의 주인 아주머니가 냉장고에 넣어둔 찬물을 꺼내오신다. 작년 이맘 때쯤 광주에서 왔다는 중년 여자도 혼자 섬진강 여행을 한다며 이곳을 지나쳤단다. 대단한, 아니 여자는 정말 무섭고 독한 존재다.
오후 6시가 되어서야 걸음을 옮긴다. 해가 긴 계절이어서 이른 아침과 늦은 오후 이동이 한결 수월하다. 포동교차로에서 왼쪽 임실 방면으로 방향을 튼 후 다시 좌산교차로에서 직진한다. 저녁 8시 2분 마지막 기착지 사선대 국민관광지에 닿는다. 이미 사위는 어둑하고 두 다리는 중심을 잃은 채 흔들리고 있었다. 겨우 하루 걷고 이 모양이라니…. 사선대 주차장 정자 위에 침낭을 펴고 저녁을 먹는둥 마는둥 잠이 든다. 멀리 전라선 기차 소리가 귓전을 맴돌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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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관촌~신평~운암대교~밤재~강진 옥정호 통과가 관건이다
새벽 5시쯤 눈을 뜬다. 말썽을 부리던 다리도 어느 정도 회복이 된 모양인지 제법 걸을만하다. 급하게 아침을 지어 먹고 짐을 챙긴다. 운동을 하러 나온 주민들이 정자 위에 짐을 부린 취재진을 낯선 시선으로 바라본다. '네 명의 신선이 아름다운 풍광에 취해 놀았다'는 사선대를 떠난 시간은 아침 7시 30분. 사선교를 건너 관촌교차로에서 직진하니 군부대가 나오면서 길이 막힌다. 느낌이 이상하다. 길바닥에 지도와 나침반을 내려놓고 지도정치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하는 수 없이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동네 주민을 불러 세워 이곳이 어디쯤인지 확인한다.
"서산리란 마을인데 아마 지도에는 안 나올 겁니다. 대리로 가려면 관촌역에서 우회전해야 하고요."
관촌역에서 공사 중인 오원교를 건너 대리마을에 진입한다. 조그만 구멍가게에서 두유와 초코파이 하나씩을 사먹고 걸음을 서두른다. 9시 10분 제6탄약창을 지나고 두류마을 입구를 지나 도로변 그늘에 배낭을 내린다. 쉬는 횟수가 점점 늘어난다. 쉴 때마다 발을 주물러대며 제발 아프지 말아 줄 것을 당부해본다. 길은 지형도 <임실>에서 <갈담>으로 바뀐다.
오전 10시 신평삼거리 정자에 배낭을 내린다. 아직도 해는 동쪽에 걸쳐져 있는데 반바지 밖으로 드러난 종아리가 붉은 소시지 두 개를 매달아 놓은 것처럼 화끈대고 따갑고 간지럽기까지 하다. 비교적 태양엔 친숙한 편이라 생각했는데 어쩌면 태양을 향한 짝사랑인지도 모르겠다. 정자에 벌떡 누워 강바람을 쐬다 근처 파출소로 들어선다. 옥정호가 눈앞인데 도저히 저 호수를 제대로 건널 제간이 없었다. 파출소를 홀로 지키던 K경사는 신평으로 온지 겨우 며칠 되었을 뿐이라며 여기저기 전화를 하며 옥정호 건너는 배편을 알아봐준다. 그러나 배는 없었다. 운암대교가 개통되면서 그나마 월면나루터 등을 오가던 배도 끊겨버렸단다. 지형도의 정가운데를 대각선으로 긋고 있는 커다란 댐, 더구나 이리저리 굴곡진 이 길을 모두 돌아간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아니 여유있는 일정과 지칠 줄 모르는 체력만 된다면 까짓거 몇십km든 충분히 돌아갈 수도 있겠는데, 아직은 그럴 여력이 없다. 그래서 섬진강 도보여행을 이곳 옥정호 운암대교부터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
옥정호는 일본 강점기인 1926년 동진 농지개량 조합에 의해 1차 준공됐고,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사업으로 1965년에 준공된 섬진강 다목적 댐이다. 유역면적이 7백63㎢ 저수면적 26.5㎢ 총저수량 4억3천만 톤에 달하며, 섬진강 상류 물을 옥정리에서 막아 반대쪽인 서쪽 정읍군 칠보로 넘겨 계화도와 호남평야를 적신다. 물을 배수하면서 그 낙차를 이용해 발전하는 다목적 댐이기도 하다. 이곳에 다리가 건설된 건 1989년 8월 31일.
고민과 갈등에 취재진의 체력 상태까지를 고려해 운암대교까지 차량 이동을 결정한다. 아침부터 길을 잘못 드는 등 수선을 떨더니 결국 옥정호를 앞에 두고 도보여행에 오점을 남기게 된 것이다. 서로 아무 말이 없다가 11시 20분쯤 도착한 버스를 타고 신평을 벗어난다. 버스는 곧 운암면 쌍암리에 일행들을 내려놓는다. 동네 어귀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다시 1시 27분 버스를 타고 운암대교로 이동한다. 거리마다 '섬진강댐 정상화에 따른 생계대책 간구하라' '40년 수몰민의 한 섬진강댐 정상화'라는 현수막이 펄럭인다. 이 댐을 두고 임실군민들은 무슨 시름에 잠겨 있는 걸까.
운암대교 '다리방휴게소'에 배낭을 맡겨두고 시인 김용택 씨가 근무했던 마암분교에 다녀오니 벌써 오후 3시 20분. 10시 신평마을에 닿은 이후 5시간만에 온전히 두 다리를 이용해 일정을 이어가는 셈이다. 운암대교 동쪽 운종리에서 27번 국도를 타고 밤재를 넘어가기로 결정한다. 이제 댐은 산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답답한 거리에 전주를 오가는 차량들만이 시원하게 길을 달리고 있다. 무인카메라 앞에서 손을 흔들어보이고 금계화랑 사진을 찍기도 하며 한껏 여유를 부리지만 힘에 부치는 건 어쩔 수 없다. 물집이 잡힌 새끼발가락과 발바닥이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면소재지 강진까지는 약 4km. 차라리 버스를 타고 가는 게 어떻겠냐고 은근히 물어오는 일행에게 걸어갈 것을 주지시킨다. 옥정호 통과야 어쩔 수 없다 해도 이제 더 이상 버스에 의지해선 안된다. 1시간 걸으면 된다. 나머지는 그때 가서 생각하자. 쓰라린 발을 내딛어 강진으로 향한다. 6시 57분 필봉농악전수관을 지나 7시 16분 강진 도착. 편의점에 들려 근처에 목욕탕이나 여관이 있는지 물어보지만 역시 아무 것도 없다. 피로한 몸을 이끌고 일정을 소화할 순 없었다. 제일 가까운 순창읍까지는 버스로 20여 분. '순창에서 가장 좋다'는 주민들의 추천에 따라 영업 종료시간이 코앞에 닥친 맥반석목욕탕에 들어가 이틀간의 피곤을 녹여본다. 살 것 같다. 이제야 살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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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사흘간 쉬다
금요일 아침... 순창에는 비가 내렸다. 일기예보를 보니 아무래도 쉬 그칠 비는 아니다. 굳이 업무상 출장 때문이 아니어도... 이 비에 남은 일정을 진행한다는 건 무리다. 기분이 우울했다. 비를 맞고 가까운 피씨방에서 달그락달그락 자판을 두들기며... "졸라 우울하다"라고... 게시판에 적을 만큼.
뭐가 그리 우울했는진 모르겠다. 어쩌면 나 자신에 대한 실망 때문인지도... 혼자 고생은 다 한 것처럼 아파 죽겠는 나... 배낭도 제일 가벼웠는데... 물론 첫날 무리해서 걸은 탓도 있겠지만... 모든 게 우울하고 신경질났다.
비는 금요일 하루종일 내리더니 토요일 모처럼 파란 하늘... 하루만 더 기다릴 걸 그랬나... 아니. 일행이 셋씩이나 되는데 그분들까지 묶어둘 순 없는 노릇이었잖아. 스스로 화내고 스스로 위로하고... 그리고 일요일 저녁 다시 남원으로 출발. 남원에서 일행들을 만나 순창으로 이동한다. 우리는 똑같은 여관에 여장을 풀고. 내일(월)부터 있을 남은 구간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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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날 덕치~천담~회룡~장구목~21번국도 시간에 얽매이지 말고 즐기라
길은 끊어진 곳에서 이어진다. 순창 영빈모텔을 나와 아침 7시 30분에 출발하는 강진행 버스에 몸을 싣는다. 전날 폐잔병처럼 떠나온 곳, 길은 강진터미널에서 다시 시작될 것이다. 터미널을 벗어나 회진교부터 강진교를 건너 회문리까지 제방길을 따른다. 지난 이틀이 지방도로와 국도 중심의 걷기였다면 셋째날에야 비로소 섬진강 따라 걷는 재미가 있다. 지형도 도엽명은 <갈담>에서 <순창>으로 바뀐다. 광양까지는 총 8장의 지도, 1차 구간에서 소화해낼 지도는 순창까지 석 장이다.
물우리를 지나며 "고추 맛있겠다" 무심코 내뱉었는데, 길 건너편의 할아버지가 "그럼 갖고 가서 먹으라"며 양손 가득 풋고추를 주신다. 설령 섬진강 물이 다 마른다 하더라도 순박한 전라도 인심은 쉽게 마르지 않을 듯하다.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배낭 한쪽에 고추를 챙겨 넣는다.
돌담길이 예쁜 두무마을과 '섬진강 시인' 김용택 님의 덕치초등학교를 지나 10시 25분 물우교에 닿는
오전 11시 18분 장신리에 도착, 시인의 어머니는 집을 비우셨고 취재진은 동네 앞 노거수 앞에 배낭을 내리고 모처럼 여유를 부려본다. 길이 주는 편안함과 아름다움에 굳었던 근육들도 긴장을 풀고 있었다. 이 나무에게선 그리움이 묻어난다. 나무는 조잘대던 새소리를 기억할 것이며, 그늘 아래 평상을 펴고 누운 늙은 농사꾼의 하소연과 깊은 밤 사랑을 고백하던 파란 지붕집 사내아이의 수줍음을 기억한다. 잎을 모두 떨구고 아궁이 속 한줌 재로 사라지는 그날까지 숱한 세월 그에게로 와서 쉬어가고 위로를 얻던 모든 것들을 그리워하며 조용히 늙어갈 것이다. 섬진강과 그 물줄기를 따르던 여행객들의 뜨거운 땀냄새도 나이테에 각인되길 바래본다.
낮 12시 23분 자갈과 흙이 섞인 오솔길 우측에서 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시멘트 약수터는 말라 있고, 그 옆 산비탈 사이로 차가운 물이 시원스레 몸을 풀고 있었다. 설탕과 섞어온 미숫가루를 타마신다. 진안에서 인삼을 키우고 임실에서 담배를 키워온 섬진강은 방울방울 떨어진 우리의 땀방울을 더해 제 살을 불리고 있었다. 낮 1시 7분 섬진강수련원(063-644-6775)으로 변신한 구 천담분교를 지난다. 점심은 구담마을에서 먹기로 한다. 아침을 순창에서 먹고 왔으니 배가 고파도 한참 고플 시간이다. 천담마을을 벗어나니 너른 아스팔트다. 천담교 앞 구멍가게에서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먹고 일어서려니 정자에 앉아 계시던 동네 어르신들이 호기심에 가득찬 눈으로 취재진을 바라보신다. "안녕하세요" 밝게 인사를 드리면 또 반갑게 고개를 끄덕이시던...
아스팔트는 점점 고도를 높인다. 그늘도 바람도 잠이 든 어떤 오후. 길가에 나와있던 뱀 한 마리만이 화들짝 놀라 풀숲으로 몸을 숨긴다. 천담을 떠난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구담마을은 도통 나타날 기미가 없다. 혹여 길을 잘못 든 게 아닐까 지도를 펼쳐보는데 멀리 휴대폰 중계기가 삐죽이 고개를 내민다. 낮 2시 4분 이광모 감독의 <아름다운 시절> 촬영지 구담마을에 닿는다. 할아버지들은 전혀 뵈질 않고 할머니 서너 분이 회관 앞에 앉아 매실을 다듬고 계신다.
"어디서들 오셨소?" "네. 전북 진안에서 왔는데 광양까지 가려고요." "날도 더운데 뭣할라고 그리 고상을 하요. 점심은 마을회관에 들어가서 먹어요. 냉장고에 시원한 물도 있고 가스렌지도 있응께." "이 동네엔 몇 가구나 살아요? 영화 촬영하고 사람들이 많이 오나요?" "옛날엔 많이 살았는데 지금은 15가구나 될랑가. 몇 집이나 사는지 세보지도 않았어. 시방도 들어와서 촬영들은 많이 하더구만. 어디서 왔다고 말을 해줘도 알아 들어야지. 그냥 하는가보다 합디요."
매실은 전주 공판장으로 택배 발송한다. 시원한 회관에서 점심을 먹고 택배 포장을 돕고, 물걸레질을 하고, 가위질로 상처입은 할머니 손가락에 구급약으로 치료를 해준다. "고맙구만 고마워." 인사를 하시지만 고마운 건 우리 나그네들 아니겠는가. "덕분에 잘 쉬었다 갑니다. 건강하세요." 인사를 드리고 마을을 벗어난다.
길은 구담에서 끊긴다. 길을 이으려면 강 건너 회룡마을로 가야 한다. 다리는 없다. 회룡을 휘돌아 흐
회룡마을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간이건물 삼거리가 나오고 길은 왼쪽으로 이어진다. 이곳에서 20분 거리가 섬진강 상류에서도 가장 경관이 빼어나다는 장구목(장군목)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순창군 동계면 어치리. 장구목가든(063-653-3917) 앞으로 요강바위가 있는데 내룡마을 사람들이 수호신처럼 받들고 있는 바위다. 요강처럼 가운데가 움푹 파인 이 바위는 깊이가 2m 폭이 대략 3m 무게는 무려 15톤. 한국전쟁 때는 이 바윗속에 몸을 숨겨 화를 면한 주민들도 있었다고 한다. 아들 낳기를 원하는 여자가 이 바위에 앉으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데, 만약 그 앉기가 구멍에 맞춰 소변 보는 자세라면 앉을 여자는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한때 도난을 당하고 되찾는 과정을 거치는 등 적지 않은 수난을 당하기도 했다.
장구목 주변은 온통 밤꽃 천지다. 야릇한 밤꽃 향기와 비릿한 물 냄새가 뒤섞여 정신이 혼미하다. 그냥 갈 수 없다. 장구목가든에 올라보지만 주인은 어디 갔는지 보이질 않고 주인 없는 집에서 맥주 2병과 음료수 1병을 꺼내 마시고 돈 7000원과 메모 하나를 남겨둔다. "잘 쉬다 갑니다. 계산이 맞는지 모르겠네요."
5시 30분 장구목 가든을 출발해 1시간쯤 걸어내려오면 오른쪽으로 갈림길이 보인다. 첫번째 갈림길을 버리고 두 번째 갈림길에서 방향을 틀면 구미리다. 마을엔 머리가 잘린 거북형상의 돌 하나가 장승처럼 서있다. 이 거북의 꼬리는 마을을 향하고 있는데, 구미리의 부족한 풍수를 보완하여 마을의 재물이 유실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 한때 마을 앞에 있던 취암사 스님이 사찰의 재물이 사라질 것을 우려해 꼬리가 절을 향하도록 했으나 바위 스스로 본래의 위치로 돌아갔다. 화가 난 스님이 거북의 목을 잘라 만수탄에 버렸다고 한다. 이 일이 있은 후 취암사는 점점 사세가 기울어 폐사됐다. 마을 이름 구미리도 '거북의 꼬리'를 뜻할 정도로 마을에서는 풍요와 안녕을 지켜주는 영물로 추앙받고 있다. 구미리는 순창군 내에서도 최고의 명당으로 꼽히는데 남원 양씨가 무려 600여 년간이나 터전으로 삼았던 땅이다.
5시 45분 구미교를 건너면서 21번국도가 된다. 아직 포장은 되어 있지 않지만 이제는 새삼 아스팔트가 그리워진다. 낮은 하늘 사이로 몸을 숨긴 태양은 여느 때보다 일찍 어둠을 쏟아붓고 있었다. 저녁 7시 6분 입석·도왕마을 입구를 지나 7시 24분 순창읍과 남원으로 연결된 21번국도 아스팔트에 닿는다. 1구간 일정은 21번국도 삼거리에서 끝낸다. 강은 산자락 왼편으로 크게 굴곡을 이루며 숨어 있고, 차량 없는 한적한 도로에는 낯익은 산새소리만 가득하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겐 그리움의 대상이 있다. 그것이 하물며 들에 핀 잡초일지라도 살아있는 생명은 끊임없이 무언가 혹은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매일매일 추억 하나씩을 만들고 산다. 오늘의 삶은 언젠가 떠올리게 될 또 하나의 그리움이다. 강은 여전히 그리움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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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_ 섬진강에서 만난 사람 덕치초등학교 교사 김용택
"섬진강은 작고 예쁘고 서러운 강입니다. 보는 강이 아니라 물에 담가보고 느끼는 강이지요. 오염은 됐지만 자정능력도 뛰어나고요. 계곡이 물을 걸러주거든요."
시인은 섬진강을 "소박하다"고 표현한다. 530여 리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길은 역시 고향길이다. 진메에서 천담까지 이어진 십리 길은 일명 '시인의 길'. 그의 본가가 있는 곳이니 자연스럽게 붙은 이름이다.
"교사는 천직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이 평화로우니 복받은 사람이지요. 장엄한 자연 속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고, 삶이 느린 농부들이 있으며, 문학과 예술도 누릴 수 있으니까요."
덕치초등학교 2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그이에겐 아이 같은 순진한 미소가 붙어 다닌다. 전교생 32명, 2학년은 고작 4명 뿐. 성현이 채훈이 선영이 유빈이까지 선생님과 마주 하고 앉아 또박또박 국어책을 읽어 내려가는 모습에서 진솔한 삶, 그러나 감히 공유할 수 없는 엄숙함까지 느껴진다. 이 아이들의 부모까지 가르쳤다는 김용택 시인은 오늘도 섬진강의 소중한 미래를 위해 꿈을 키운다. |
섬진강 따라 걷기 1.
강은 그리움을 따라 흐른다
데미샘~마령~사선대~신월~운암대교~강진~(순창)~덕치~구담~장구목~21번국도
월간 <마운틴> 05년 7월호에 실린 사진입니다.
섬진강 발원지 데미샘. (약 25분간 산행).
물방앗간.
마령에서 올려다본 마이산.
시원한 물로 유명한 풍혈냉천.
옥정호(섬진강다목적댐).
마암분교 계단.
길을 걷다가...
밤재를 넘어가는 27번 국도에서.
물우마을 입구.
덕치초등학교 2학년 교실.
섬진강 시인 김용택 님. 사진 찍을 땐 미처 못 봤는데 머리 옆에 장애물이... 에궁.
진메마을 앞에서.
진메마을 앞에서.
진메마을 앞에서.
진메마을 앞에서.
진메마을의 징검다리.
돌담길이 예쁜 두무마을.
길가 흐르는 물 발견... 정말 시원했음.
영화 <아름다운 시절> 촬영지 구담마을.
영화 <아름다운 시절> 촬영 기념 동판.
구담과 회룡을 잇는 징검다리. 길이 없어 이 다리를 건너야 함.
장구목 요강바위.
장구목에서.
장구목에서의 시원한 물놀이.
밤꽃과 섬진강. 잘 안 보이지만 지금 사람들이 강을 건너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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