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도시’ 선정하는 유럽 한 국가나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을 이미지화하는 문제는 오늘날 문화 역량을 증진시키는 데 있어 역점 사안이며 과제이다. 그 파급효과가 문화 전반에 미치고 경제적인 부가가치의 창출과 정비례하기 때문이다. 특히 역사유적지 고도(古都)를 통해 이를 구현하는 데는 새로운 관점이 요청된다. 기존의 유산 개념은 단지 대상물에 그치거나 확대 개념을 적용하더라도 주변물의 정비와 경관의 편입 등 가시적인 것에 한정됐다. 이제는 문화유산이란 계속 살아 움직여야 한다는 데, 또한 문화유산 그 자체에 재생산력이 있어야 한다는 데 이 분야 여러 전문가들은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 문화유산의 발현은 자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부문이 복합적으로, 유기적으로 작용해 이룩된다. 인근 지역과 국가의 관광산업도 더불어 진일보한다. 이와 관련해서 ‘문화도시’를 지정하거나 다양한 ‘문화의 길’을 창안하는 등의 생동감 있는 문화유산의 재해석 작업을 펼치고 있는 유럽의 사례는 매우 흥미롭다. 1985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바 있으며, 세기의 전환점인 2000년도의 ‘유럽 문화도시’로 선정된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의 경우를 거론해 이 같은 사례를 살펴보자. ‘유럽 문화도시’라는 명칭은 1985년부터 유럽연합 회원국 문화장관들이 부여했으며, 개별 국가 연합과 지역 네트워크로 구성된 유럽평의회의 ‘유럽 역사도시 연합’이 관장한다. ‘유럽 문화도시’ 선정사업은 도시 문화유산을 재해석하고 전 유럽인에게 ‘유럽 정신’을 고취하려는 취지로 유럽연합 및 유네스코와 연계해 진행된다. 또한 유럽의 관광, 문화유산 발현 프로그램의 일환이기도 하다. 유럽 북부에서는 베르겐 헬싱키 레이캬빅, 중부에서는 브뤼셀 크라코우 프라하, 남부에서는 아비뇽, 볼로냐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와 함께 선정됐다. 이베리아 반도 서북단 갈리시아 주(州)에 위치한 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와 유럽 전역에 걸쳐 형성됐던 이 순례 행로는 유럽 통합의 이미지에 적절히 부응하는 고도(古都)로서, 유럽이 하나의 공동체로 정의됐던 과거 시대의 유럽정신을 오늘에 되살리는 ‘통합 유럽의 상징’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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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장(왼쪽), 산티아고 광장. 광장은 유럽 문화의 상징이다. |
● ‘별의 들판’ 캄푸스 스텔라 이 도시의 문화유산 요소는 매우 풍부하다. 해마다 6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이 소도시는 9세기부터 속죄를 위해 유럽 각지에서 몰려든 순례자들의 최종 목적지로서 로마, 예루살렘과 함께 세계 3대 기독교 성지 중 하나였다. 오늘날에도 프랑스의 루르드, 포르투갈의 파티마와 더불어 세계 3대 가톨릭 순례지로 널리 알려진 곳으로서 그 옛날처럼 걸어서 순례 행로를 일주하며 기도 드리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로마제국의 속주인 히스파니아에서 포교하다가 별 소득 없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순교한 사도 성 야곱의 무덤을 9세기초 수도승 페라요가 이곳에서 발견했다는 소식이 전 유럽에 퍼지자 수 세기 동안 수 백만명의 순례자가 순례 행로를 따라 이 소도시를 물밀듯이 오갔다. 별 하나가 사도 요한의 형제이자 에스파니아의 수호성인인 야곱이 묻힌 장소를 계시했다는 속설에서 ‘별의 들판’, 즉 캄푸스 스텔라라는 지명이 유래했다고 한다. 당시 갈리시아 지방은 이슬람 세계와 접하고 있었으며 아랍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한 국토 회복운동인 ‘레 콩키스타’의 열기가 충만했던 고장이었다. 무덤 발견 이후 성 야곱을 봉헌하기 위한 성당이 지어졌으며, 대성당은 1078년 착공돼 1128년경에 완성됐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가장 유서 깊고 아름다운 대성당에는 장인 마테오의 작품으로 로마네스크 양식의 최고 걸작품으로 통하는 ‘영광의 문’이 있다. 이 건물의 주요부는 11∼12세기의 로마네스크 양식이나, 여러 시대에 걸쳐 증축과 개축이 계속돼 현재는 대체로 바로크 양식이 지배적이다. 성당을 중심으로 그 주위에는 저택과 궁전, 순례자를 위한 여인숙, 환전상 등이 점차 들어서게 됐다. 중세 학생 기숙사인 오브라도이로 광장의 산 헤로니모 수도원은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의 파사드를 함께 갖춘 건축물이며 바로크 양식의 왕립병원은 현재 국영호텔로 쓰이고 있다. 이밖에도 대학, 주교관을 주요 건축기념물로 들 수 있으며 순례와 관련한 수공업도 발전했던 도시였다.
성 야곱을 참배하기 위한 전 유럽의 순례로.
● 성 야곱 무덤 찾는 ‘순례의 길’ 중세에 순례자들은 떠나기 전에 고향에서 성대한 환송잔치를 치렀다. 그만큼 귀향을 기약하기 어려운 힘든 여정이었기 때문이다. 순례자에 걸맞는 행색도 갖추었는데 거친 모직물로 된 망토와 차양이 넓은 모자, 양식 주머니와 순례자라는 신분표지로서 조개껍질 가리비를 몸에 달았다. 순례를 완수한 후에는 ‘콤포스텔라’라는 증서를 받았으며 이것은 새로운 탄생을 의미했다. 유럽 전 지역에서 프랑스를 거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길은 네 갈래가 있었다. 이 길들은 나바르 지방의 팜플로와 푸엔테 라 레나에서 합류했다. 유럽에서 당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다니던 이 순례 행로 주변에 순례자들은 손수 석재를 날라 성당을 지었으며 이 때에 여러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와 고딕식 수도원이 세워졌다. 또한 지방 제후들은 무료 병원과 숙박시설을 설치하기도 했다. 이렇게 문화와 종교 중심지가 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갈리시아 북부지방에 번영과 부를 가져다 주었다. 순례 행로는 신교 개혁으로 순례의 열기가 시들기까지 이후 8세기 동안 전 세계 기독교 공동체의 일체감 조성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순례 행로에 남겨진 순례자들의 족적은 무수하다. 이 길은 문화 교류의 길, 로마네스크 예술과 순례의 길이었고 노상에서 무훈시와 전설이 만들어진 문학의 길이기도 했으며, 군사와 교역의 길이 되기도 했다. 오늘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도시 전체는 하나의 살아 있는 박물관이다. 순례자가 북적였던 거리는 다양한 양식의 미려한 옛 건축물들이 현대적인 건물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유명 가수들의 콘서트도 열린다. 유서 깊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학은 옥스퍼드, 볼로냐, 루벵, 몽펠리에 3대학을 위시한 중세에 개교한 유럽 대학들과 네트워크를 구성해 풍부한 대학 유산을 발현하는 작업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과거 역사 유적지라는 한정된 기능뿐만이 아니라 새로운 문화 이미지가 더해진 이 도시에는 호텔의 신축과 증하개축, 주변 자연환경을 활용한 여가 시설의 설치, 육로와 해로를 통한 교통수단을 개발하는 등의 도시 하부구조의 확충을 통한 발전이 이룩됐다. 어디 이뿐인가. 호텔 경영기술 정보와 전문지식, 지역의 고유한 특미(特味) 개발, 여행안내와 관련된 지식, 지역 전통 습속의 연구 등 정보와 서비스 차원에서 열거하기 어려운 발전의 총화를 기대할 수 있다. 더욱이 유럽 차원의 재정지원이 보장돼 있는 만큼 이 도시의 발전은 보다 가속화돼 지역발전과 경제의 쇄신, 고용의 창출에 걸쳐 직·간접적인 파급효과가 상당할 것이다. 실상 지난 10년 동안 갈리시아 지방의 회의산업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미국 건축가 피터 아이젠맨이 감독하는 ‘갈리시아 문화도시’(Galicia city of culture)라는 ‘다목적 복합문화단지’ 건설이 2001년부터 시작됐다. 4년 후 완공되는 이 단지는 70만㎡의 부지에 조성된다. 이 지방의 여행자 수는 1998년 약 282만명에서 2000년 약 457만명으로 증가했으며 이 부문에서 7%의 고용이 증대됐다.
유럽 전통 도시의 전형을 보이는 시내 주택가.
● 새로운 의미 부여가 도시 이미지 재창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예는 문화유산의 지속적인 발전이란 요청에 부응하면서 관광 부문을 정비하는 프로젝트라고도 볼 수 있다. 문화유산은 시간의 흐름을 따라 계속적으로 의미를 부여하는 문제가 관건이 된다는 점을 이 사례에서 알 수 있다. 이 사업의 의도는 전 유럽인 상호간의 이해와 관용정신을 고취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었다. 여행을 통해 유럽 문화를 자각하고 유럽 문화의 교차로, 중심지로서의 관광 가치를 부각한다는 목표에 따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와 그 순례 행로에 먼저 시의 적절하고 선명한 이미지가 부여됐다. 그것은 ‘하나의 유럽’이란 이미지다. 이에 따라 ‘산티아고 순례의 길’ 전체 여정에는 가리비 문양을 이미지화한 같은 모양의 기장이 상세한 안내표지와 함께 내걸린다. 정책 수립 네트워크를 구성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길과 지역 발전’이란 주제를 설정, 전개하고 프로젝트화해 유럽 전역의 순례의 길을 확인했다. 이어 순례 행로와 주변 환경 보존, 관련 유산 복원과 관련해 전문 연구자에 의한 학술적인 충분한 조사와 연구작업이 병행됐다. 앞서의 정책입안 네트워크는 문화 관광과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장기 협력, 중계, 홍보, 교류 기능을 계속적으로 수행한다. 이와 함께 이 순례 행로의 위엄에 걸맞는 문화 이벤트 조직 등 미래 세대의 교육과 교류의 장을 조성하는 문제도 놓치지 않았으며 수공예 장인들의 교류, 실업자들의 수공업 훈련 등 사회적으로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지도 제작 등 홍보 활동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