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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서울성곽 500년 역사 거두며 보석같은 길을 내주다

코리아트레일 2008. 12. 31. 09:42

500년 역사 거두며 보석같은 길을 내주다

[머니위크]한국의 걷고 싶은 길/ 서울성곽 북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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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성곽은 서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조선시대의 도성(都城)이다. 총 18.2km 중 현재는 산지 성곽 일부만 남아 있는데, 이중에서 서울의 중심부인 경복궁과 광화문 일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북악산 구간을 소개한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한양으로 수도를 옮기기 위하여 궁궐과 종묘를 먼저 지은 후, 1395년(태조 4) 한양을 방어하기 위한 성곽을 쌓았다. 규모는 북악산(342m), 낙산(125m), 남산(262m), 인왕산(338m)을 잇는 총 길이 5만9500척(약 18.2km)이었다.

당시 평지는 흙으로 쌓은 토성, 산지는 돌로 쌓은 석성이었다. 토성은 세종 때 석성으로 고쳐 쌓았다. 이후 서울성곽은 부분적으로만 보수했을 뿐 크게 붕괴된 곳은 없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성곽은 정작 필요할 때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우리 민족이 누란의 위기에 처했던 임진왜란 때도 그랬고, 병자호란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적은 조선군의 별다른 저항도 없이 성문을 지나 궁궐로 들어섰던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일인들에 의해 허물어지기 시작

나라를 빼앗기게 되는 20세기를 전후해서는 일제에 의해 서울성곽은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일인들은 1899년 서대문과 청량리 사이에 전찻길을 만들면서 동대문과 서대문 부근의 성벽 일부를 헐어 버렸고, 이듬해엔 용산과 종로 사이에도 전찻길을 낸다며 남대문 주변의 성곽을 철거하였다. 일제강점기엔 더욱 노골적으로 도성을 없애기 시작했다. 결국 서대문과 혜화문(동소문)도 헐리면서 사실상 서울의 평지 성곽은 모두 철거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오늘날엔 총 길이 18.2km 가운데 산지 성곽 10.5km와 삼청동 장충동 일대의 성벽 일부만 남게 되었다. 산지 성곽이 지나는 북악산과 인왕산은 그동안 가깝고도 먼 산이었다. 1968년 북한특수부대가 청와대를 기습했던 1ㆍ21사태 이후 민간인의 출입을 제한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1993년엔 인왕산, 2007년엔 북악산이 전면 개방되면서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북악산 성곽길 들머리를 살펴보면, 동쪽에서부터 혜화동과 성북동 사이의 서울과학고, 명륜동 와룡공원, 삼청각, 그리고 서쪽 끝엔 자하문이 있다. 이렇듯 서울과학고~북악산 정상~창의문(자하문)까지 이어지는 능선 일주 코스는 성곽이 계속 이어져 위험하지 않고 주변 조망도 아주 빼어나다. 이 코스는 약 5km로 3시간 안팎이면 산책이 가능하다.

말바위쉼터에서 탐방신청서에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등을 적어 제출하고, 주민등록증으로 신분을 확인받으면 북악산 탐방허가 패찰이 발급된다. 이 패찰을 목에 걸고 산책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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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바위쉼터에서 성곽을 따라 완만한 오르막을 15분 정도 걸으면 한양 사대문 중 북대문인 숙정문(肅靖門)이다. 이 문은 방위에 맞춰 세우기는 했지만 대문 역할을 하지는 않았다. 북문 쪽은 지형이 험한 편이라 어차피 사람의 왕래가 적기도 했지만, 이 북문을 열어 놓으면 음기(淫氣)가 침범하여 한양의 부녀자들의 풍기가 문란해진다 하여 평소엔 문을 닫아두었던 것이다. 대신 숙정문 서북쪽으로 세검정이 있는 홍제천 위쪽에 홍지문(弘智門)을 내고 그쪽을 통해 다니게 했다.

숙정문을 지나 성곽길을 30분 정도 따르면 곡장이다. 곡장은 성벽을 기어오르는 적을 방어하기 위한 방어시설로서 성곽의 일부를 외곽으로 돌출시킨 것이다. 이곳엔 군인이 보초를 서고 있다.

곡장에서 성곽을 40여 분 따르면 드디어 북악산 정상. 이곳에 서면 서울 시내 중심부인 경복궁과 광화문 일대가 한눈에 펼쳐진다. 경복궁 정면으로는 우뚝 솟은 관악산이 보인다.

북악산 정상에서 창의문 쪽으로 가는 하산하는 길은 성곽을 따르는 계단길이다. 길은 제법 가파르지만 계단이 잘 놓여 있고 한겨울에 눈이 내려도 군인들이 제설 작업을 해놓기 때문에 크게 위험하지 않다. 도중에 성벽 너머로 펼쳐지는 북한산의 굳센 암봉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 북악산 정상에서 창의문까지는 30분 정도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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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소문인 창의문(彰義門)은 조선시대에 이 일대의 계곡을 자하동이라고 하였으므로 자하문(紫霞門)이라고도 한다. 사소문 가운데 유일하게 원형의 형태를 간직하고 있는 이 문은 북대문 역할을 대신했다. 숙정문이 항상 닫혀있었기 때문이다.

창의문은 1623년 인조반정 때는 홍제원(弘濟院)에 집결했던 이괄 이귀 김류 등이 세검정에서 칼을 씻고 창의문을 통해 궁으로 들어가 반정에 성공한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지금 창의문엔 인조반정 당시 공신들의 이름을 새겨놓은 현판이 걸려 있다.

북악산 성곽길은 공휴일 일요일 다음날은 출입이 통제된다. 개방시간은 11~3월은 10:00~15:00, 4~10월은 09:00~15:00. 말바위쉼터와 창의문에서 신청서 작성 및 신분증 확인을 하면 출입허가 패찰을 발급해준다. 서울성곽 북악산 코스 약 5km, 3시간 소요.

◆성북동 여러 명소와 연계해 걸으면 더욱 좋아

한편 서울성곽 북악산길 동쪽 들머리인 성북동은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돈암장 선잠단 간송미술관 이태준 고택 성락원 심우장 등 서울의 어느 곳보다도 옛 사람의 흔적과 문화의 향기가 가득해 고샅길을 누비다 보면 옛 정취에 흠뻑 빠져들게 된다. 서울성곽과 연계하면 서울 으뜸 산책길이 된다.

‘시민문화유산 제1호’라는 별칭을 얻은 최순우 선생 옛집에선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의 정갈한 문체를 그려본 뒤, 일제 강점기 때 10만석에 달하는 사재를 털어 훈민정음 혜원화첩 등 우리 문화재를 지키고 찾아낸 전형필 선생의 소장품을 전시한 간송미술관에선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문화 독립운동가의 고고한 체취를 맡아본다. 비록 매년 봄ㆍ가을에만 정기전을 열어 요즘 같은 겨울엔 감상할 수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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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상허 이태준 고택도 예쁘다. 후손이 운영하는 찻집으로 바뀐 수연산방(壽硯山房)에서 상허가 글을 썼다는 사랑방에 앉아 한 잔 들며 그의 수필집 <무서록>을 뒤적여보자. 집이 크지 않아 탁자가 많지 않은데, 그중 가장 인기 있는 자리는 사랑방의 바깥쪽 자리. 이 자리에 앉으면 담장 너머로 북악산 성곽이 보인다.

심우장은 독립운동가요, 승려 시인인 만해 한용운이 1933년에 짓고 만년을 보낸 곳이다. ‘님의 침묵’을 읊조리기 좋은 백담사 계곡은 아니더라도, 만해의 성정처럼 늘 푸른 아름드리 소나무 아래에선 만해가 굳이 북향으로 집을 지은 까닭을 되짚어보게 된다. 시인은 총독부와 마주보기 싫다 하여 일부러 북향으로 집을 지었다.


●교통 △와룡공원=지하철 4호선 혜화역 1번 출구 앞에서 마을버스 종로08번 타고 종점에서 하차. 요금 700원, 15분 소요. △창의문(자하문)=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로 나와 지선버스 정류장에서 0212, 1020, 7022번 버스 타고 자하문고개 하차. 요금 1000원, 20분 소요. △과학고=지하철 4호선 혜화역 1번 출구로 나와 마을버스 8번 이용해 올림픽국민생활관 앞 하차.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로 나와 2112번ㆍ111번ㆍ성북03번 버스 이용해 성북초교 앞에서 하차.

●별미 북악산 동쪽의 성북동 돼지갈비집(02-764-2420)은 연탄불에 구워져 나오는 돼지갈비에 싸먹는 쌈이 별미. 돼지갈비백반 5500원, 돼지불백 5500원, 주물럭살 백반 5500원. 수연산방(02-764-1736)은 <문장강화>를 쓴 상허 이태준 선생의 고택. 후손이 찻집으로 꾸며 운영하고 있다. 대나무통발효차 7500원, 쑥말차 8500원, 오미자차 7000원, 미숫가루 7000원.
출처 : 아름다운 도보여행
글쓴이 : 손성일[손성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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