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또 걷는다. 길이 막혔으면 돌아가고,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든다. 위험한면 안전한 길을 찾아내고, 길이 완성될 때까지 되돌아서 걷고 또 걷는다. 사단법인 아름다운 도보여행 손성일(43) 대장이 지나간 자리는 그렇게 길이 된다. 국내 최초 ‘로드 플래너’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도보여행 전문가다. 삼남길을 개척하고 있는 그를 수원 서호공원에서 만났다. 편안한 등산복에 배낭을 둘러멘 차림새는 누가 봐도 ‘길잡이’의 모습, 배낭에 달려있는 손바닥만한 ‘짚신’이 인상적이다.
# 국내 첫 로드 플래너, 길 위에서 길을 찾다
“길 위에서 길을 찾았습니다. 걷는 게 좋아 걷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지요.”
2006년, 영업사원으로 잘 다닌던 중견기업을 그만뒀다. 처음부터 사직을 결심했던 것은 아니다. 여름 휴가 때 양평에서 강릉까지 200㎞를 걷고자 했다. 그동안 백두대간과 한남정맥을 종주하면서 400개 이상의 산을 탔던 경험을 살려 도보여행에 나선 것이다. 3~4일 걸어 정동진에서 해돋이를 보는 것이 당초 계획이었다. 도보문화가 우리나라에 알려지기 전이었다. 하지만 처음 나선 도보여행은 만만치 않았다. 시멘트길을 등산화를 신고 걷는 것도 모자라 배낭에 침낭까지 합한 무게가 20㎏이었다. 그는 120km 지점인 홍천에서 결국 포기했다. ‘도보가 쉽지 않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등산으로 단련이 됐기 때문에 체력은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런 자신감이 한여름의 도전을 부추긴 것이지요. 한마디로 도보여행을 얕봤던 겁니다. 하하하.”
그의 도전은 계속됐다. 아예 사표를 내고 본격적으로 준비했다. 그해 9월부터 다음해 1월 임진각에서부터 동해, 남해, 서해 바닷가를 따라 우리나라 국토 순례에 나섰다. 90일, 2천220km 길이었다. 노숙자 신세나 다름없었다. 길을 걷는 동안 매일같이 시멘트 바닥에서 잤다. 자고 일어나면 허리가 아팠다. 다시 걸으면 곧 괜찮아졌다. 하루 8~10시간, 많이 걸을 때는 13시간(56km)도 걸었다. 이번에는 등산화가 아닌 운동화를 신고 걸었다. 떠나기 전 만들어 놓은 블로그에 사진도 올렸다. ‘포기하지 않겠다’는 각오였다. 또 한가지, 1km를 걸을 때마다 100원을 기부한다는 약속을 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아예 통장에 20만원을 입금한 후 국토 순례를 시작했다.
# ‘1km에 100원 기부’… 제1호 시민모금가
국토 순례를 마칠 무렵 블로그 등을 통해 그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일부는 그의 나눔 실천에 동참하기도 했다. 그가 약속한 20만원에 더해 117만원이 보태져 137만원이 모아졌다. 그는 전액을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했다.
“‘1km에 100원 기부’는 포기할까봐 스스로에 한 약속에 불과했습니다. 그럼에도 아름다운재단에 갔더니 ‘축 손성일 선생님, 환영합니다’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고, ‘제1호 시민모금가’라고 저를 소개하는 겁니다. 그때부터 책임감이 생겼어요.”
그의 다음 도전은 산티아고 순례. 프랑스 생장 데 피드포르에서 시작해 스페인 산티아고에 이르는 길(800km)은 도보여행가들에게 꿈의 길로 통한다. 그는 2007년 9월부터 11월 말까지 75일 동안 이 길 위에서의 희노애락을 겪고 느끼고 배웠다. 마을마다 있는 순례자 전용 숙소 ‘알베르게’의 저렴(5천~1만원)한 비용과 ‘조가비’ 모양을 한 산티아고 표지는 그의 ‘영업맨’ 기질을 자극했다.
“남들은 35일 동안 산티아고 1개 코스 800km를 걷지만 전 5개 코스 1천800km를 걸었어요. 걷는 동안 우리나라에도 이런 길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돈을 벌겠다는 게 아니라 이런 길을 열면 사람들이 많이 찾을 것이라는 확신이었죠. 산티아고 순례를 마치고 귀국을 하니 제주올레가 문을 열었더라고요.”
그는 ‘세상에서 가장 걷기 좋은 길’ 산티아고를 떠올리며 길을 찾아 나섰다. 2008년 4월 아름다운 도보여행 카페를 만들고, 그해 11월부터 본격적인 답사에 나섰다. 그를 포함해 카페 회원 7명이 전남에서 살다시피 했다. 2009년 6월 해남 땅끝 마을에서 강진까지 1구간 개통을 시작으로 지난해 4월 전남 삼남길 14개 코스 230km가 완성됐다.
“1개 코스(10~20km)를 개척한다면 10배, 20배의 현장 답사가 있어야 개통할 수 있습니다. 열정과 설득이 없었다면 이루지 못했을 겁니다.”
# 경기도 삼남길, 역사문화 탐방길로 재탄생
삼남길은 이런 과정을 거쳐 연결되고 있다. 삼남길은 조선시대 10대 대로 중 가장 긴 우리나라 대표 도보 길이다. 해남 땅끝 마을에서 시작해 서울 숭례문까지 1천리에 이르는 길은 한반도의 동맥과 같은 길이다. 하지만 그와 사단법인, 카페가 개척한 지금의 삼남길은 과거의 그 길이 아니다. 역사 속의 삼남길은 대부분 현재 국도로 연결된 부분이 많아서 걷기에 위험하다. 새로 개척한 삼남길은 무엇보다 여성이 걷기에 안전하고, 아름다운 길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이 조가비를 매달고 걷는다면, 삼남길은 짚신을 매달고 걷는 길이다. 경기도 삼남길은 지난해 10월 역사문화 탐방길로 재탄생했다. 개통된 구간은 경기도 수원과 화성, 오산에 이르는 약 34km에 이르는 길로 수원 지지대고개, 화성 용주사, 오산 독산성 등으로 이어진다.
“등산처럼 정상에 오를 필요도 없고 힘이 닿는 데까지 걷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는 게 도보여행이죠. 하지만 단순히 걷는 것이 아닙니다. 길 곳곳에서 역사와 문화, 이야기 등을 만나지요. 도보여행은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는 여행입니다.”
현재 안양, 평택, 의왕, 과천 구간을 추가 개척하고 있다. 그가 이끄는 아름다운 도보여행은 2015년까지 삼남길 전 구간을 연결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통일 후엔 서대문에서 의주로 이어지는, 조선시대 청나라 사신들이 오가던 의주길을 잇는 게 목표다. 의주길이 열리면 삼남길이 실크로드, 산티아고 순례길까지 연결될 수 있을까.
“해남 땅끝 마을에서 시작해 산티아고 순례길까지 이어진다면 세상에서 가장 길고 아름다운 길이 될 겁니다. 삼남길만 보더라도 완성된다면 6개 광역시와 23개 시·군을 지나는 지속가능한 길이 될테니까요.”
# 우울증 극복 위해 산티아고 순례길 도전
7년 동안 걸었다. 그사이 차를 팔았고, 퇴직금을 날렸고, 주택부금을 헐었다. 그를 포함한 사단법인 식구 4명 모두 독신을 고집(?)하고 있고, 한 달이면 집에서 자는 날이 채 10일도 되지 않는다.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미친놈’이라는 소리를 달고 살았다. 다행히 3년 전부터 로드 플래너로서의 벌이가 되고 있다. 2011년 4월 설립한 사단법인은 한 스포츠업체가 후원에 나섰고, 그는 로드 플래너로서 활발한 자문 및 강의,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도보여행으로 돈을 번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다행히 조금씩 이름이 알려지면서 길을 자문하는 전문가로서 활동하는 게 생계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지금은 부모님께서도 좋아하시죠.”
7년 전, 그는 남몰래 앓고 있던 우울증을 극복하고자 걷기에 나섰다. 등산 등 운동에 집중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산티아고 순례길 도전은 돌파구였다. 사람들과 어울릴 때는 전혀 장애가 없었다. 영업 매출도 항상 상위권이었다. 문제는 혼자있을 때였다. 12층 아파트에 혼자 살던 그는 아래를 내려다 볼 때마다 해서는 안 될 생각을 하곤 했다.
“걷기문화가 정착한 유럽, 일본 등에선 이미 학교부적응 학생들과 멘토와 함께 걷는 프로그램이 발달해 있습니다. 산은 정상이 목표이고 경계가 있지만, 길은 소통이며 과정이기 때문이죠. 길 위에선 남녀간, 지역간, 세대간 소통이 가능하고, 걷다보면 단순해지고 이를 통해 정화가 됩니다.”
7년 동안 개인과 카페를 통해 총 3천만원을 기부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모금을 하고 기부도 하는 시민모금가, 7년 전 얼떨결에 얻은 그의 또다른 이름이 그의 삶이 된 것이다.
이금미기자/lgm@joongboo.com
사진 고승민
tip 길을 걷는다는 것은?
“힘이 닿는 데까지 걷고 싶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는 게 도보여행입니다. 단순히 걷는 것이 아니라 길 곳곳에서 역사화 문화, 이야기 등을 만나죠. 또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는 여행입니다. 산은 정상이 목표이고 경계가 있지만, 길은 소통이며 과정입니다. 길 위에선 남녀간, 지역간, 세대간 소통이 가능하고, 걷다보면 단순해지고 이를 통해 정화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