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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왜 그녀들은 ‘카미노’를 향해 걸어가는가 산티아고

코리아트레일 2007. 7. 8. 07:29
  • [Why] 왜 그녀들은 ‘카미노’를 향해 걸어가는가
  • ‘유럽 땅끝마을’ 산티아고로 가는 800㎞ 여정
    우정·만남 찾는 한국 여성들에 ‘조용한 돌풍’
  • 박선이 여성전문기자 sunnyp@chosun.com
    입력 : 2007.07.06 22:20 / 수정 : 2007.07.07 15:52
    • “비를 맞으며 걷던 아침, 속에서부터 복받쳐 올라온 무엇, 터져 나온 울음 이후 나는 비로소 알 수 있었다. 내가 왜 그 길에 서 있는지…” (최인아·제일기획 전무)

      “밖에서 볼 때는 매끄러워 보였지만 실상은 요철이 많은 암벽이었다. 단지 두려움 때문에 포기할 뻔 했다는 생각에 미쳐버릴 것 같았다.”(파울로 코엘료·작가)

      “온종일 목 뒤쪽이 너무 아파 심하게 고생하면서도 이유를 몰랐다. 하루가 다 가고 (배낭에서) 토마토를 꺼냈을 때야 그 토마토 한 알이 내 목을 내리누를 만큼 무거웠다는 것을 깨달았다.”(조이스 럽·수녀)

       

      # 배낭여행 관심 1순위, 동호인 카페까지 등장 

      스페인 북부를 가로지르며 유럽 대륙의 서쪽 ‘땅 끝’에 이르는 길 하나가 지금 한국에 조용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카미노’(Camino·스페인어로 길이라는 뜻)란 애칭으로 불리는 카미노 데 산티아고. 피레네 산맥에 면한 프랑스의 작은 도시 생 장 피드포르에서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이르는 800㎞의 여정.

      2005년 만해도 한국인 공식 방문객이 14명 밖에 안됐던 이 길이 올 여름에는 배낭여행자들의 관심도 1순위에 올랐고 교사들의 테마연수지로까지 등장했다. 여행자 대부분이 ‘홀로 걷기’에 나선 여성이란 점도 독특하다. 블로그와 인터넷 카페에 오른 여행기의 주인공들도 모두 여성들이다. 동호인 카페가 등장했고, 책도 5권이나 나왔다. 여행업계에서는 올 여름에만 적어도 100여 명이 이 길을 찾을 것으로 예측한다. 한해 1000만 명이 해외 여행을 떠나는 마당에 100명은 너무도 작은 숫자. 그러나 한 해 이 길을 걷는 50만 명 중 대부분이 유럽인이고, 아시아인 중 가장 많은 일본인이 지난해 200여 명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한국에서 이 길을 가는 사람의 증가세는 아주 빠른 것으로 평가된다.

    • ▲ 산티아고에 이르는 길. 피레네 산맥에 면한 프랑스의 작은 도시 생 장 피드포르에서 스페인 북부 산과 고원을 거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이르는 800㎞의 여정이다. /여행가 김남희씨 제공
    •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인 사도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곳. 스페인에서 이슬람 세력을 몰아낸 가톨릭은 11세기부터 이곳에 이르는 길을 열광적인 성지 순례 길로 키워냈다. 거친 산과 들, 고원 지대를 관통하는 순례의 길은 16세기 이후 거의 폐허가 되었다가 20세기 말 다시 태어났다.

      한국에도 2번이나 왔던 부지런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이 길을 거쳐 산티아고를 방문한 것이 계기가 되어 1987년 카미노 전체가 유럽문화유산 1호로 지정됐다. 800㎞에 이르는 여정 중 주요 유적이 1800곳에 이른다. 코엘료가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는 체험을 했던 것이 1986년,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걸었던 것이 1997년. 800㎞를 한달 넘게 걷고 또 걷는 이 여정이 왜 머나먼 한국에서 마니아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일까. 왜 여성들이 특히 매혹을 느끼는 것일까.

      “쉰 넘은 여자가 혼자 걷겠다니까, 다들 무슨 마음의 상처가 있는 줄로 알더라구요. 그건 아니었어요. 타박타박 작은 걸음으로 하루하루 진전해 나가고, 그걸 다 해내면 제 자신이 아주 뿌듯할 거라고 생각했죠.”

      서울 잠실에 사는 김효선씨는 만 50세가 되던 지난해 자신을 ‘격려하기 위해’ 카미노를 걸었고 그 경험을 첫 책으로 냈다. 탄천과 한강변, 석촌 호수를 걷는 것으로 체력 단련을 했고 배낭 무게가 7㎏이 넘지 않도록 짐을 버리고 또 버리는 연습도 했다. 하루 평균 20㎞를 걸어 36일 만에 산티아고에 도달했다. 지난 4월 서른다섯 생일을 맞아 길을 떠난 한 여성은 자신의 블로그에 “까칠하고 까탈스런 옷을 벗어 던지고 열린 마음을 연습하고 발견하며그 길을 걷게 될”것을 기대했다. 초등학교 교사 원유림씨는 강원도 교육청 지원을 받은 동료 교사들과 함께 8월 초 카미노를 걷기로 했다. 그의 관심은 사람들이다. “학교 탐방도 하고 사진도 찍을 겁니다. 다녀와서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줄 게 많을 것 같아요.”

    • ▲ 유럽대륙 땅끝마을 피니스 테레. /김남희씨 제공
    • 론리플래닛의 조사에 따르면 전체적으로도 여성이 60~70%에 이른다. 배낭 여행 전문인 신발끈 여행사 장영복 대표는 “치안이 좋고 길이 그리 험하지 않은데다, 여행자들 사이에 순례자의 동지애와 우정이 생긴다는 여행담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고 분석한다. 국내 여성 블로거들의 카미노 횡단기를 보면 바로 이 같은 우정과 만남을 기록한 김남희씨의 책을 읽고 여행을 결심했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신의 마음 갈피를 찾아, 헛된 욕망과 분노를 내려 놓기 위해, 보다 넓은 세상과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이곳을 다녀온 사람들은 하나 같이 ‘자기 자신과의 만남’을 첫손 꼽는다.

      카미노의 순례 증명서는 이 길을 걸으려는 사람들에게 이유를 묻는다. 종교, 문화, 스포츠, 영적인 이유와 기타, 모두 5가지로 분류되는데, 순례협회 추산에 따르면 문화와 영적인 이유가 가장 많다.

      지난해 가을, 30년 가까운 기자 생활을 끝내고 카미노로 떠났던 서명숙씨는 “한달 넘는 시간을 완전히 자유롭게, 내 맘대로 걸으며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생각했다”고 말한다. 그는 고향인 제주도에 이런 ‘순례의 길’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안고 돌아왔다.

      최고의 카피라이터로 주목 받는 광고인 최인아씨는 지난해 5월 휴가를 내고 36일 간 이 길을 걸었다. 비행기로 12시간 이상 날아가서, 곰팡내 나는 숙소 귀퉁이에서 눈을 붙이며, 한달 넘게 물집과 싸워가며 길을 걸어서 무엇을 얻었을까. 그는 “걷는 내내 내가 왜 이 길에 서 있는지를 물었고, 나도 모르는 새 답을 얻었다”고 말한다.

      # ‘산티아고 순례’ 책들 

      베스트셀러 ‘연금술사’의 작가 코엘료가 이 길에서 겪은 영적 체험을 쓴 ‘순례자’(문학동네)가 지난해 출간된 뒤 5만부 팔렸고, 미국의 수녀 작가 조이스 럽이 쓴 ‘느긋하게 걸어라’(복있는사람)가 최근 출간됐다.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나는 걷는다’(효형출판)에서 이 길을 걸은 경험을 기쁨으로 외쳤다. 지난해부터 실제 그 길을 걸은 한국인들의 여행기도 책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여행가 김남희의 ‘소심하고 겁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산티아고 편’(미래M&B)이 출간 1년 만에 3만부 넘게 나갔고 주부이자 여행가인 김효선의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유럽을 만나다’(바람구두)가 지난주 선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