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특집/지리산 도보여행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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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걷는 거리 약 165㎞에 이르는 지리산자락 도보여행 제1차 구간(성삼재~마천~밤머리재) 첫 번째 날. 성삼재~달궁으로 이어진 861번 지방도로를 걷다가 반사경 앞에 서서 잠시 한 컷. 첫째 날엔 부산에서 출발한 박현주(왼쪽)씨와 기자, 단 둘이 일정을 소화해냈다. |
백두대간 가장 마지막에 중심축처럼 솟은 지리산은 우리나라 산악의 대표성과 상징성 그리고 역사성을 고루 갖춰 ‘민족의 영산’으로 불린다.
전북·전남·경남 5개 시·군 약 471㎢에 두루 걸쳐 천왕봉(1915m)·반야봉(1751m)·노고단(1507m) 등의 봉우리를 비롯해 25.5㎞의 주능선 상에 해발 1000m가 넘는 준봉들을 연이어 거느리고 있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은 법. 각각의 봉우리마다 칠선·한신·뱀사골·피아골·도장골·목통골·대성골 등의 청정계곡을 품고 있으며, 주능선을 중심으로 각각 남북으로 큰 강이 흘러내린다.
함양과 산청을 거쳐 진주 남강이 되는 엄천강 물줄기와 진안 데미샘에서 발원해 광양 망덕포구에서 짠물과 몸을 섞는 섬진강….산자락 곳곳에는 화엄사·연곡사·천은사·쌍계사·실상사·대원사·칠불사·벽송사 등의 명찰들이 들어서 있으며, 녹차 시배지(경남 하동)와 문익점 면화시배지(산청)도 있어 역사와 문화와 섭생의 적절한 합일체가 된다.
박경리 소설 <토지>, 김동리 소설 <역마>, 조정래 소설 <태백산맥>, 이병주 소설 <지리산>, 최명희 소설 <혼불>, 이성부 시집 <지리산> 등도 이 곳을 모태 삼아 태어났고, 심지어 흥부와 변강쇠의 고장이며, 지리산 곁의 곡성은 심청의 마을로 통하기도 하니, 지리산군은 산행과 문화와 역사체험을 한번에 체득할 수 있는 ‘멀티플렉스 산악지대’라 할 것이다.
그러니 지리산을 산행의 대상으로 한정해선 곤란하다.
아니, 산행만으로도 평생을 걸려 다 알지 못하는 곳이지만 한번쯤, 살면서 딱 한 번은 지리산 둘레를 두 발로 온전히 걸어보며 그 산에 기대어 사는 민초들의 고단한 삶과 오래 전부터 그 자리를 지키어 선 문화재들을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할 터.지리산 둘레는 대략 800리, 너른 도로를 기준으로 약 200㎞이며 임도를 따를 경우 165여㎞까지 걷는 거리를 줄일 수 있다.
1구간은 서쪽 성삼재(전남 구례군)에서 시작해 전북 남원시 달궁~반선~산내를 거친다.
이후 도계를 넘어 경남 함양군 마천~휴천, 산청군 금서를 지나 동쪽의 밤머리재 아래 명상삼거리까지 지리산 북쪽을 감아 돈다.
다음 달에 걷게 될 2구간은 명상을 출발 삼신봉터널 통과 후 하동군 청학동으로 진입, 하동에서 구례를 거쳐 첫 출발점인 성삼재를 오르는 것으로 마칠 예정이다.
첫째 날 성삼재~달궁(쟁기소)~반선 청정계곡의 상징, 달궁과 뱀사골
낮 12시 20분, 구례를 출발해 성삼재(1090m)로 떠나는 군내버스는 송곳 하나 세울 틈도 없이 승객들로 빼곡하다.
발 옆에 엉거주춤 세워둔 배낭은 구비구비 고갯길을 돌아설 때마다 자꾸만 앞뒤로 움직이며 요동친다.
누군가의 배낭에서 잘 익은 김치냄새가 난다.
대부분 주능선 종주 등 산행에 목적을 두었을 테지만 그 고갯마루에 내려 나흘간의 도보 일정을 이어갈 이는 우리뿐. ‘한 번은 걸어야 할 일’이라 위로하지만 산속으로 사라지는 등산화의 둔탁한 발자국 소리에 자꾸만 시선이 간다.
우리에게 할당된 아스팔트는 지열로 이글이글 끓어 올라 달걀이라도 톡 떨어뜨리면 그대로 익혀버릴 태세다.
심원~달궁으로 이어진 861번 도로(약 37㎞)는 원래 군사작전용이었다고 한다.
전쟁이 끝난 뒤 별로 쓸모가 없어지면서 버려지다시피 한 것을 국가에서 지리산 관광개발을 위해 지난 1988년 개통시켰다.
동네 전체를 철거하니 마니,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심원마을(750m) 입구를 지나 오후 3시 4분, 정령치와 달궁으로 나뉘는 도계삼거리(730m)에 닿는다.
정령치까지는 6.5㎞로 육모정을 거쳐 남원 시내로 길이 이어진다.
지리산자락을 돌기 위해선 달궁으로 가야 한다.
성삼재에서 걸어온 길이 5㎞다.
달궁 진입 전 도로 우측의 쟁기소로 내려선다.
계곡에 드리운 철쭉 빛이 아름다워 사진작가들의 발길이 잦은 쟁기소엔 반야봉을 오르는 등산로(8㎞)가 있지만 오는 2015년까진 자연휴식년제로 묶여 산행은 금지돼 있다.
철계단을 내려서자, 된장찌개 냄새가 허기진 위를 콕콕 자극한다.
부부로 보이는 남녀가 식사를 권하는데 정작 한쪽에 놓인 수박이며 참외에 더 마음이 간다.
못 이기는 척 밥에다 된장찌개를 듬뿍 떠 먹으며 권하는 술도 마다하질 않는다.
이러다 음주도보에 걸리는 건 아닌지 걱정, 젊은 시절 이야기 등 40여 분간이나 우리를 잡아두는 중년 사내 앞에서 혹시 불법 취사로 함께 과태료를 물어야 하는 건 아닌지 또 소심한 걱정. “고맙습니다!” 인사를 다급히 건네고 정작 쟁기소 물속엔 손끝 하나 넣어보지 못한 채 황급히 도로로 올라선다.
달궁야영장(오토캠핑 가능)과 덕동마을을 지나면 곧 뱀사골 초입인 반선에 닿는다.
점심 때 성삼재를 떠났으니 더 이상 진행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지리산산채식당’에 여장을 푼다.
지리산표 취나물에 흑돼지 삼겹살을 하나씩 얹고 한나절의 노곤함을 잊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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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천강 자갈밭에서 휴식 중인 취재진. 왼쪽부터 강병규(40세)·박현주(29세)·김현수(32세)씨. 강병규씨와 김현수씨는 도보여행 구간이기도 한 남원시 산내면에 거주 중인 귀농인들이다. |
둘째 날 반선~산내(실상사)~마천~휴천 고정마을 천년 고찰을 뒤로 하고
민박촌으로 이뤄진 부운마을과 유난히 굿당 많은 개선마을을 지난다.
이른 아침 솔숲에서 들려오는 호랑지빠귀 소리는 쓸쓸한 영혼이 불어대는 휘파람 소리 같다.
뱀사골로 진입하는 내령매표소를 거꾸로 돌아 나서면 곧 팔랑마을에 닿는다.
이곳에서 바래봉까지는 약 2㎞. 매년 5월 중순 바래봉 일대를 붉은 빛으로 수놓는 꽃물을 보기 위해 모여든 인파들은 저 건너 운봉과 정령치는 물론 이곳 팔랑을 통해 바래봉을 오른다.
토비스콘도 야영장에서 김치찌개로 아침식사를 해결하고 말없이 걷는 일에만 열중이다.
야영장을 벗어나 2분쯤 진행하면 원천 시내버스정류장이고 이곳에서 큰 도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돌아 마을길을 따른다.
이 길은 35분 후에 실상사 돌장승 앞에서 끝을 맺는다.
해탈교 입구엔 산나물 등을 판매하는 동네 아낙들이 앉았고, 오가는 관광객 몇이 물건을 이리저리 살피며 가격 흥정에 한창이다.
쑥인절미 한 봉을 사들고 나무 그늘에 앉아 한 입씩 베어 문 후에야 실상사 경내로 들어선다.
통일신라 흥덕왕 3년(828) 홍척 증각대사가 창건했다는 실상사는 평지에 세워진데다 단일 사찰로는 가장 많은 문화재를 보유한 곳 중 하나. 무엇보다 반야봉의 그늘에서 벗어난 산줄기가 이곳 산내에서 비로소 천왕봉·중봉·제석봉의 묵직한 그림자 속으로 들어간다.
낮 1시 45분,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이란 초록색 이정표가 보인다.
남쪽 하동 화개가 경남과 전남의 경계라면 북쪽의 인월과 산내는 전북과 경남의 경계. 지리산자락 어디든 지리산 산행의 들머리가 되겠지만 함양군 마천은 능선 너머 산청군 중산리와 더불어 천왕봉을 오르려는 사람들로 1년 내내 붐비는 곳이다.
오죽하면 동서울터미널에서 이곳 백무동까지 한번에 오가는 버스, 그것도 밤 12시에 운행하는 심야버스를 배정했을까. 백무동 기점 5.8㎞에 장터목대피소가 있고(하동바위 코스), 6.5㎞엔 세석대피소(한신계곡 코스)가 있다.
백무동으로 들어서는 가흥교를 지나 ‘방산집’에서 매콤한 비빔국수로 점심을 해결한다.
오후 4시 2분, 의탄교 앞 폐교 등나무 그늘에 앉아 잠시 쉬어본다.
의탄교를 건너면 칠선계곡이 있는 추성리에 닿는다.
엄밀히 말하면 칠선계곡만 있는 것은 아니다.
2007년까지 자연휴식년제로 묶여 산행이 금지된 칠선계곡은 그렇다 쳐도 국골·초암릉·어름터 등의 천왕봉 코스는 비법정 등산로란 이유로 산행이 금지됐다.
벽송사와 서암도 의탄교 너머에 있다.
오도재 갈림길에서 산청·유림 방면으로 방향을 튼다.
오도재로 올라서면 함양의 금대산~백운산~삼봉산 산행이 가능하다.
원정마을을 지나 오후 5시 용유담 이정표에 닿는다.
함양 군내 등산안내지도가 커다란 얼굴로 도로변에 서있고, 큼직한 바위들이 엄천강을 따라 아무렇게나 흩어져있다.
땀에 찌든 발도 쉬게 할 겸 강가로 내려가 발을 적신다.
생각만큼 시원하진 않지만 발가락 틈을 헤집는 물줄기에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마을 입구마다 뽕나무 하나씩은 뿌리를 내리고 있어, 까맣게 익은 오디 열매가 바쁜 걸음을 더디게 한다.
배낭을 내릴 생각도 없이 나뭇가지 하나씩을 가까스로 끌어내려 작고 까만 열매를 떼어낸다.
손가락이며 입술 주위가 금세 보랏빛으로 물이 들지만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모처럼 동심으로 돌아간다.
견불동 입구를 지나 고정마을에 닿았을 땐 이미 저녁 6시 30분. 진행이야 더 할 수 있겠지만 더 간다 해도 마땅히 숙박할 곳이 없다.
마침 함양으로 가는 군내버스가 온다.
오늘은 함양읍내 찜질방에서 하룻밤 묵기로 한다.
모처럼 시원하게 씻을 생각에 뼛속까지 개운하다.
셋째 날 고정마을~엄천강~구형왕릉~쌍재~향양 길 위의 인연들
함양읍에서 마천으로 떠나는 아침 6시 30분 버스를 타고 어제 벗어났던 고정마을로 향한다.
초행인 길이어서 혹시 잘못 내릴까 잔뜩 긴장이다.
고정마을을 지나쳐 내려도 억울하지만 한참 못 미처 내려도 애매한 노릇 아닌가. 어제 신경 써 봐둔 지형지물을 지나 고정마을에 정확히 내린다.
걸음을 내디딘지 20분이나 지났을까. 검은색 지프차를 몰고 가던 운전자가 행선지를 물으며 태워주겠다고 한다.
때론 여행자 곁을 매섭게 스치는 난폭 운전자들도 있지만 이렇게 태워주지 못해 몸살을 앓는 이들도 제법 많다.
고맙다는 인사만 전하고 계속 걸음을 옮기는데 이번엔 방향을 바꿔 다시 우리 쪽으로 돌아온다.
아무래도 맘이 놓이지 않았는지 대뜸 ‘차 한 잔 대접하겠다’ 인심이다.
우리가 전날 스쳐온 견불동에서 민박집을 한다고.산중에서 만나는 이들이 금세 친구가 되는 것처럼, 길에서 만나는 인연 때문에 도보여행이 빛나는 법. 낯선 남자의 제의에 움찔할 법도 하다만 일단 그의 차를 얻어 타고 견불동으로 올라선다.
해발 400m쯤 자리한 견불동은 마을에서 건너다 뵈는 능선이 누워있는 부처, 즉 와불을 닮아 ‘부처를 마주한 동네’란 뜻으로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혹은 신라시대 ‘견불사’라는 절이 있어 그런 이름이 되었다고도 전한다.
검은 지프차 황기윤(42세)씨의 민박집 ‘운천산방’은 밝고 따스하다.
무릎을 세우고 누운 와불이 몸을 뒤척일 때마다 목 쉰 뻐꾸기가 안쓰럽게 목청을 높인다.
황씨가 대접하는 차를 몇 잔 마시고 견불동을 나선다.
황기윤씨는 우리를 승차 지점에 떨궈놓고 사라진다.
오늘밤 꼭 와서 묵으라는 인사와 함께.오전 9시 50분, 소나무 숲이 울창한 ‘나백정’ 옆으로 양파 수확이 한창이다.
그 모습을 촬영하러 밭으로 들어섰더니 시골 인심이 그리 야박하진 않아서, 동네 아주머니 한 분이 비닐봉지 가득 양파를 넣어주신다.
3박 4일 일정의 배낭이 그리 가벼울 리는 없다만 배낭 속에 양파 꾸러미를 악착 같이 넣어둔다.
딱히 드릴 게 없던 차라 행동식으로 준비한 복숭아캔과 사탕 한 움큼을 내어 드리고 양파밭을 벗어난다.
마천으로 향하는 군내버스 젊은 기사도 엄지를 치켜 세우며 무언의 응원을 보낸다.
나백정을 지나 5분쯤 걸어 ‘지리산리조트(055-964-1171)’ 앞을 지나는데, 그을린 여행객들을 그냥 보낼 수 없었던지 리조트 대표 최상두(34세)씨가 시원한 음료 한 잔을 권한다.
‘엄천강 지킴이’ 최대표는 “강줄기를 따라 이어진 마을 속살길이 더 좋을 것”이라며 강 건너 편을 추천한다.
걸었던 길을 3분쯤 되짚어 올라 한남교를 건넌다.
이제는 큰 도로를 버리고 산청군 금서면 화계까지 강변 마을길을 따르게 될 것이다.
10시 37분, ‘빨치산들이 토벌대의 공격을 피해 산죽비트에서 은신했다’는 내용 등이 적힌 노장대 루트 안내판이 보인다.
자혜마을을 지나면서 길은 한결 소박해진다.
남쪽의 섬진강만큼 수려한 맛은 없지만 강원도 동강의 함양판처럼 정겹다.
낮 12시 54분, 느티나무 한 그루가 나타나며 소도시 풍경이 펼쳐진다.
나무 아래엔 평상 공사가 한창이다.
마을회관으로 보일법한 다방을 마주하고 앉아 배낭을 내리고 점심을 준비한다.
왕산(923m)을 보며 흐르던 엄천강은 이곳에서 함양 유림면과 산청 금서면으로 행정구역을 가른다.
오토바이를 탈탈 끌고 오신 어르신들은 신기한 듯 낯선 이방인들을 지켜 보신다.
막걸리를 건네도 좀체 드시질 않으니 우리끼리 홀짝홀짝 더위와 고된 일정에 지친 몸을 녹이는 수밖에. 강 건너 유림 쪽도 보수작업을 하는지 공사 차량만 땀을 뻘뻘 흘리며 먼지 속에 오간다.
해가 높이 뜰수록 햇살은 더 강하다.
주변 쓰레기를 정리한 후 자리를 뜬다.
오후 3시, 60번 국도변으로 구형왕릉 입구가 나온다.
함양을 흐르던 엄천강은 이 왕산 밑으로 물줄기를 모으고 있던 터. 도로는 왕산~필봉산(848m)을 왼쪽으로 크게 휘돌아 밤머리재까지 이어지지만 산간 임도를 따르면 힘은 들지언정 덜 지루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일행들과 상의를 하고 임도 길을 따른다.
임도만도 대략 12㎞. 가락국 마지막 왕 구형왕(521~532 재위)과 왕비를 모시고 제사 지내는 덕양전(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0호)을 지나자 사적 제214호로 지정된 구형왕릉 돌무덤에 닿는다.
돌과 돌을 잇대어 쌓은 것이 마치 피라미드의 축소판 같은데, 무덤 앞에는 ‘가락국 양왕릉’이라 새겨 넣은 비석이 있고, 문인석·무인석·돌짐승·상석·장명석 등이 배치돼 있다.
모두 근래에 만들어진 것이다.
흔히 구형왕릉 앞에 ‘전(傳)’자를 붙이는데 ‘구형왕릉 무덤이라 전한다’는 뜻일 뿐 거대한 돌무더기가 무덤인지 석탑인지도 정확하지 않다고 한다.
구형왕릉을 둘러본 다음 ‘유의태 약수’엘 들른다.
계곡물이 얼마나 차가운지 발을 담그고 1분을 앉아있질 못하겠다.
수통 가득 물을 채우고 젖은 발을 정성스레 닦는다.
도보여행에서 가장 고생하는 신체는 발이어서 쉴 때마다 이렇게 씻어주고 주물러주는 것이 좋다.
오후 4시, 약수를 출발 본격적인 임도 걷기에 나선다.
임도 곳곳 역시 뽕나무 천지다.
하루에 한 번씩은 지리산이 주는 자연산 오디로 몸보신이다.
5시 15분, 진행 방향 우측으로 이 임도 상의 유일한 민가가 내려다보인다.
작년까지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는데…. 주인 내외는 보이지 않고 커다란 개 세 마리만 땀냄새 진동하는 낯선 객들을 향해 매섭게 짖어댈 뿐.오후 6시 20분, 드디어 임도를 벗어난다.
구형왕릉부터 치자면 임도만 3시간 이상을 걸었다.
새터·구사촌 도로를 따라 수철리와 나뉘는 향양으로 내려선다.
세상은 벌써 어스름해서 어린시절 이 맘 때쯤이면 “소영아, 밥 먹어라”라고 부르던 엄마의 목소리, 손에 묻은 흙을 털어내며 밥 익는 냄새 고소하던 집으로 뛰어가거나, 부지깽이를 들고 쫓아 나온 엄마를 피해 더 놀던 날의 추억. 해 혹은 볕을 향한다는 향양마을에도 스멀스멀 어스름 땅거미가 앉았다.
오늘 일정은 이곳까지다.
숙박은 길이 맺어준 인연, 견불동 운천산방에서 묵기로 한다.
‘도보여행이니만큼 절대 호의호식은 없다’ 으름장을 놓았지만 견불동으로 향하는 양손엔 삼겹살에 수박 한 통까지 들려있다.
오늘밤, 목이 쉬도록 울어대던 앞산 뻐꾸기는 또 얼마나 슬퍼하고 있을까.
넷째 날 향양~밤머리재~명상삼거리 밤머리재가 나눈 지리산과 웅석봉
견불동에서 구수한 된장찌개까지 얻어 먹고서야 전날 일정을 마쳤던 향양으로 돌아온다.
시간은 벌써 오전 10시 3분. 이곳까지 태워준 황기윤씨에게 감사의 인사, “언젠가 다시 뵙겠다”는 기약할 수 없는 약속을 전하며 밤머리재를 올라선다.
1차 도보여행의 마지막 기착지 밤머리재…. 성삼재가 종주산행의 출발점이 된다면 밤머리재는 종주산행의 마지막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지리산 최고봉 천왕봉에서 흘러내린 중봉~하봉 능선은 왕등재와 도토리봉을 거쳐 이곳 밤머리재로 떨어진다.
국립공원의 경계가 되며 이 고갯길을 기준으로 서쪽은 지리산국립공원, 동쪽은 웅석봉군립공원에 속한다.
밤머리재를 걸어 올라간다는 말에 동네 어르신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날씨 걱정부터 쏟아낸다.
오늘이 근래 들어 가장 더운 날이라니, 그러고 보면 하루만 뉴스를 못 봐도 세상과 크게 단절된 느낌이다.
아침 태양이 뜨겁다.
도로변 가로수 그늘 아래 배낭을 내리고 쉬기를 반복한다.
멀리 뒤늦은 밤꽃 향기에 정신이 몽롱하다.
어느 과부 속을 절절이 끊으려고 오전부터 이 비릿한 향기는 진동해대는지….신세계콘도를 지나 낮 12시 47분 드디어 밤머리재 도착. 걷는 내내 호위병처럼 따라붙던 왕산과 필봉산의 근엄한 자태도 지리산에게 그 자리를 넘겨준 채 능선 너머로 사라지고 없다.
최근 생긴 간이매점에서 시원한 냉커피로 불붙은 속을 달랜다.
이제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산청군 시천면(덕산), 밤머리재, 대원사(치밭목대피소 코스)로 세 가닥 길이 나뉘는 명상삼거리가 정확한 도착지점이다.
내려가는 길은 한결 수월하다.
그 길이 남쪽을 향하고 있다면 ‘팡고른 숲의 엔트’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옹벽 파이프를 통해 나오는 밤머리재 샘물을 목 뒷덜미로 흘려 보낸다.
홍계 상촌과 북촌 마을을 지나 오후 2시 33분 명상삼거리 도착. 멀리 대원사로 향하는 초록색 버스 뒤꽁무니가 아스라하다.
떠나온 밤머리재 정상에서 모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손가락을 쫙 펼치면 그 사이사이로 지나는 공기의 간지러운 촉감이 느껴질 만큼. 길은 버스가 사라진 쪽으로 무심히 이어져있다.
이제 지리산 남쪽을 걸을 차례고, 우리에겐 그 길을 걸을 만큼의 열정과 시간과 충분한 체력이 남아있었다.
자,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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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상사를 향해 걷는 취재진의 정면 끝으로 중봉·천왕봉·제석봉이 보인다. 성삼재~반선까지는 반야봉이 가장 두드러지지만 산내로 접어들면 천왕봉이 가깝다. 능선상에서 바라보는 천왕봉과 그 천왕봉보다 1000m 이상 키를 낮춘 마을에서 올려다본 천왕봉의 모습은 그 느낌이 사뭇 다르다. |
INFORMATION
지리산자락 도보여행
지리산국립공원의 면적은 대략 471㎢로 그 둘레는 약 800여 리에 달한다.
전북 남원, 전남 구례, 경남 함양·하동·산청에 걸쳐 있으며, 도로를 기준으로 했을 때 200여㎞쯤 된다.
출발지점을 어디로 정하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지만 첫날 체력 소모와 상징적 의미를 감안할 때 성삼재가 가장 무난하다.
도보여행은 산행과는 달리 주로 아스팔트를 걷게 되지만 중간중간 비포장길과 임도를 만난다.
특히 1차 도보여행 중엔 계곡으로 유명한 달궁과 뱀사골을 지난다.
달궁계곡은 도로 옆이므로 손쉽게 내려설 수 있다.
산내면에선 신라 고찰 실상사(www.silsang.net)와 길이 연결된다.
마천은 백무동과 칠선계곡 등으로 오르는 산행 코스의 초입이다.
휴천과 유림에는 지리산 등산로가 별로 없지만 대신 엄천강을 끼고 달리는 강변길이 예쁘다.
왕산~필봉산을 호위병으로 둔 채 지리산 곁을 흐르는 밤머리재 오름길은 마지막 여정임에도 불구하고 생각만큼 지치는 길은 아니다.
지난 여름 ‘섬진강 따라 걷기’ 편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일정 중 상당수가 아스팔트를 걷는 길이어서 무엇보다 발 관리에 신경 써야 한다.
민박이나 찜질방 등에서 자고 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하지 않는 한 배낭 무게가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무더위에 묵직한 배낭을 메고 아스팔트를 걷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빠르면 일정 첫날부터 물집이 생긴다.
물집 예방에는 몇 가지 속설이 있는데, 양말 속에 여성용 판타롱스타킹을 신거나 생리대를 깔 것, 발가락 사이에 베이비파우더를 뿌리거나 비누가루를 뿌릴 것, 발가락 양말을 신을 것 등등이 그것. 충격 흡수가 어려운 아스팔트이므로 워킹용 경등산화에 얇은 것과 두툼한 것, 두 겹의 양말을 겹쳐 신는 것이 좋다.
쉴 때마다 양말을 벗고 발을 마사지 해주는 것도 중요하다.
만약 물집이 잡혔다면 바늘에 실을 꿰어 물집을 통과시키고 바늘만 빼낸다.
그럼 실을 타고 물집 속의 물이 빠져 나와 아침에 아문다.
이번 도보여행의 경우 일행 중 누구도 물집 때문에 고생하지 않았다.
지리산자락을 모두 보려면 1:5만 지형도 남원·운봉·산청·하동 넉 장이 필요하다.
시중에 유통되는 1:7만5천의 등산지도에는 마지막 구간인 밤머리재가 제외돼 있다.
이번 1차 도보여행의 경우 걸은 길은 약 76.1㎞이다.
총 3박 4일 중 첫날과 마지막 날은 한나절씩만 걸었다.
일정별 주요 포인트 체크
첫째 날 취재진의 경우 동행들의 거주지역 출발시간을 고려, 구례에서 낮 12시 20분발 버스를 타고 낮 1시 10분부터 걷기 시작했다.
해발 1000고지에서 내려서는 터라 무리가 되진 않는다.
출발 40분쯤 후에 ‘심원쉼터’라고 적힌 간이휴게소를 만나고, 그 옆에 냉장고 물처럼 시원한 샘터가 있다.
여기서 식수를 보충한다.
심원마을은 바로 코앞인데 도로에서 얼마간 내려가야 하므로 발걸음이 잘 떨어지질 않는다.
심원마을에서 30분을 걸으면 정령치로 갈리는 도계삼거리(730m)이다.
우리는 달궁 방면으로 가야 한다.
20분간 진행하면 도로 우측 아래로 쟁기소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인다.
이곳 역시 계단을 오르내리기가 상당히 곤욕이지만 한번쯤 쟁기소 물에 두 손을 담그는 것도 좋겠다.
곧 오토캠핑이 가능한 달궁야영장이 나오며 1시간 후쯤 뱀사골 산행 초입인 반선집단시설지구에 닿는다.
반선을 중심으로 달궁과 덕동, 부운과 팔랑마을 등에는 민박집이 많으므로 그날 일정에 따라 적당한 지역에서 묵는다.
취재진은 반선의 ‘지리산산채식당(063-625-9670)’에서 저녁을 먹고 하룻밤 묵었다.
첫날은 전남 구례군 산동면 성삼재에서 출발해 전북 남원시 산내면 반선까지 내려온 셈으로 휴식을 제외한 걸은 시간은 2시간 30분, 거리는 14.1㎞이다.
둘째 날 뱀사골 내령매표소(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것이므로 입장료는 내지 않는다)를 지나 계곡 옆 토비스콘도 야영장에서 아침을 먹었다.
비를 피할 수 있는 너른 쉼터가 있으며 화장실과 식수대가 있다.
제대로 관리 되지 않으므로 물은 꼭 끓여 먹을 것을 권한다.
도로를 따라 산내면소재지를 지나 실상사까지 갈 수 있지만, 취재진은 원천마을 버스정류장에서 우회전해 마을길과 제방길을 따라 실상사까지 갔다.
이 경우 실상사 매표소를 거치지 않으므로 매표 부담이 없다.
실상사 앞에는 차를 마실 수 있는 소박한 찻집 ‘항우공방(063-636-1070)’이 있어 잠시 쉬어갈 만하다.
실상사에서 큰길로 나와 도로를 따르면 곧 경남과 경계인 함양군 마천면이다.
취재진은 마천에서 4,500원짜리 비빔국수(055-962-5780)를 먹었지만 마천 명물은 ‘소문난짜장(055-963-3799)’이다.
마천을 넘어서면 함양읍으로 오가는 버스를 자주 만날 수 있다.
마천 이후로는 지리산 등산로와는 다소 멀어져 있어 민박집을 구하기 어려우므로 이 버스를 타고 함양으로 나가 24시간 영업하는 ‘중앙레스파(055-963-0606)’에서 묵는 것도 괜찮다.
이용료는 5천원이다.
찜질방 옆 ‘형제식당(055-962-2656)’이 음식 맛 깔끔하고 맛있다.
김치찌개나 청국장은 5천원씩이다.
함양으로 나올 생각이 없다면 이동 중 민박을 하는 것도 좋다.
견불동 ‘운천산방(010-7576-9999)’을 비롯 민박집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둘째 날은 남원시 산내면에서 시작해 함양군 휴천면에서 끝을 맺었다.
휴식을 제외한 걸은 시간은 5시간 45분, 거리는 21.8㎞이다.
셋째 날 함양에서 아침 6시 30분 차를 타고 전날 승차 지점인 고정마을에 하차한다.
요금은 2,200원으로 40분쯤 걸린다.
물레방아가 있는 백연마을을 지나면 우측으로 한남교가 보인다.
이 다리를 건너면 비포장 혹은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좀더 한적하게 도보여행을 할 수 있다.
세검정가든에서 길이 나뉘는데 큰길을 따라도 되고, 왼쪽의 제방길을 따라도 된다.
제방길을 따를 경우 숲으로 길이 막히므로 돌아서 나와야 한다.
셋째 날의 가장 큰 고민은 구형왕릉 입구에서 하게 된다.
60번 국도를 따라 밤머리재 초입인 향양으로 갈 것인지, 임도를 따를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데, 대부분 아스팔트를 걷는 일정이므로 이번엔 임도를 따르는 것도 괜찮다.
구형왕릉과 유의태 약수를 만날 수 있다.
임도만 약 12㎞로 일행이 없다면 도로에 비해 심심하거나 다소 무서울 수도 있겠다.
두 개의 큰 갈림길이 있는데 처음은 왼쪽, 두 번째는 오른쪽으로 간다.
도착지점인 향양에는 마땅한 숙박시설이 없으므로 산청읍내로 나간다.
찜질방 ‘산청온천(055-972-2232)’ 등이 있으며 6천원이다.
셋째 날은 경남 함양 휴천면에서 시작해 산청군 금서면에서 끝을 맺었다.
휴식을 제외한 걸은 시간은 약 7시간(임도 약 12㎞로 3시간 10분 소요), 거리는 25.5㎞이다.
넷째 날 취재진은 우연히 길에서 만난 황기윤씨 덕분에 견불동에서 자고 이튿날 아침 다시 향양으로 돌아왔다.
이제부터는 밤머리재를 넘어 대원사 갈림길인 명상삼거리로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밤머리재 정상에 간이매점이 있고, 고개에서 조금만 내려서면 왼쪽 옹벽에 파이프를 연결한 샘터가 있다.
마지막 일정은 명상삼거리에서 끝난다.
취재진은 명상 인근 ‘털보농원(055-972-6901)’에서 백숙으로 일정을 마무리했다.
셋째 날은 산청 금서면에서 밤머리재를 지나 삼장면으로 넘어왔으며 휴식을 제외한 걸은 시간은 3시간 30분이다.
총 거리는 14.7㎞쯤.
교통
시작 지점인 성삼재로 가는 대중교통은 전남 구례에만 있다.
새벽 4시 20분부터 저녁 5시 20분까지 하루 8회(04:20 / 06:00 / 08:20 / 10:20 / 12:20 / 14:20 / 16:20 / 17:20) 운행한다.
요금은 3,200원으로 약 30분 걸린다.
성삼재로 가는 도중 천은사 관람 여부와는 상관없이 문화재관람료가 포함된 입장료 3,200원을 별도로 내야 한다.
마지막 도착 지점인 명상삼거리에는 진주와 대원사를 오가는 버스가 있다.
버스 시간이 맞지 않을 경우 택시를 타고 덕산으로 나온 다음 덕산에서 원지나 진주를 거쳐 서울과 부산 등으로 갈 수 있다.
명상삼거리~덕산 택시요금은 8천원이다.
덕산 개인택시 055-972-6363
지리산 도보여행 2
덕산~삼신봉터널~회남재~악양~화개~구례~성삼재
글·사진 황소영 기자 2006.08 월간m
◇1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무딤이들 가운데 의연하게 솟은 소나무.
이 소나무는 SBS-TV에서 방영한 대하 드라마 <토지>의 타이틀롤을 비롯 여러 드라마에
단골손님으로 등장한다. 악양에서 19번 국도로 나서기 전 이 논둑길로 걸어보는 것이 좋다.
서울에서 내려온 최재봉(52세)씨의 말에 따르면 가을처럼 파란 하늘이 내내 이어지다가 함양을 지날 때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단다.
남쪽은 연일 비를 뿌리고 있었다.
이 조그만 땅덩이 안에서의 극명한 날씨 대조다.
내일부터 시작될 일정을 위해 도보여행에 참가할 사람들은 일찌감치 경남 산청군 삼장면 ‘털보농원’으로 모여 들었다.
“한 사날 힘쓸 일 많을 테니 기회 있을 때 실컷 먹으라”고 툇마루에 앉아 밥상 위에 올라온 담백한 닭백숙을 뜯으며, 새로운 길에 대한 설렘과 걱정으로 밤을 지샌다.
때때로 처마 밖으로 팔을 내밀어 손바닥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의 차가운 촉감을 느껴본다.
부디 내일은 거짓말처럼 하늘이 맑아질 것이라 믿으며….
다섯째 날 명상삼거리~덕산(덕천서원)~삼신봉터널~원묵계
터널 하나로 나뉘는 산청과 하동
산야는 이미 희뿌연 안개에 젖어 마치 김승옥의 소설 속 ‘무진’에서처럼 묘하고 야릇한 기운을 뿜어대고 있었다.
지난 달 마지막 발자국을 찍었던 명상삼거리에 내려 아스팔트 한쪽에 4장의 지형도(도엽명 남원·운봉·산청·하동)를 펼쳐놓는다.
폭염 속에 걸었던 길들과 빗속에 걸어야 할 길들을 손가락으로 짚어본다.
지도로 보이는 길을 모두 이으면 2m도 안 될 것 같은데, 그 길을 고스란히 걷는 데만도 꼬박 일주일. 어깨를 파고드는 통증과 발바닥에 불이 붙을 듯한 고통을 감내해가며 우리는 또 새로운 길로 접어들 것이다.
명상삼거리를 출발한지 2시간이 조금 못돼 닿은 시천면소재지(덕산)는 지리산 정상 천왕봉(1915m)을 오르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곳 중 하나다.
천왕봉 최단 코스인 중산리를 가기 위해서도 그렇고, 대원사~치밭목을 오르기 위해서도 그렇고, 거림을 통해 세석으로 향하기 위해서도 그렇다.
비법정등산로(샛길)로 묶인 한적한 길들까지를 모두 꼽자면 이곳 덕산이야 말로 지리산으로 통하는 가장 많은 등산로를 갖고 있는, 지리산의 진정한 관문이 되는 셈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 본소도 이곳에 있을 정도.덕산은 ‘덕을 쌓을 수 있는 땅’이란 뜻으로 조선중기 대표적 산림처사였던 남명 조식(1501~1572)이 이름 지은 곳이다.
경남 합천에서 출생한 남명은 같은 해 태어난 퇴계 이황과 쌍벽을 이루던 당대 최고의 성리학자로 알려져 있다.
61세가 되던 해 덕산으로 옮겨와 10여 년을 살다가 지리산의 이마가 올려다 보이는 시천면 사륜동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사적 제305호로 지정된 덕천서원은 남명 조식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1576년 문인들에 의해 세워졌다.
이후 임진왜란 등으로 몇 차례 소실되었다가 1926년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된 것. 아무도 없는 덕천서원에 질퍽이는 발자국만 남겨두고 길을 잇는다.
덕천강을 낀 20번 국도는 가도 가도 끝이 없다.
시원하게 볼일도 보고 싶고, 배불리 밥도 먹고 싶은데, 도통 쉴 곳이 없다.
결국 외공마을 구멍가게 평상 위에 배낭을 내려놓는다.
“아주머니, 이곳에서 점심 좀 해먹어도 되죠? 대신 시원한 막걸리 한 통은 사 먹을 랍니다."
넉살 좋은 강병규(42세)씨의 미소에 주인아주머니도 흔쾌히 자리를 내주신다.
2000원짜리 막걸리 뒤로 맛있는 김치와 매콤한 고추가 공짜 안주로 나온다.
중산리와 진주를 오가는 연두색 버스가 외공마을을 지날 때마다 차창 밖으로 호기심에 가득 찬 사람들의 시선이 내리 꽂힌다.
우리는 즐겁게 먹으면 그만이다.
배는 단단히 채웠지만 보슬비 쌓인 국도는 좀체 끝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수업을 끝낸 신천초등학교 남학생이 노란색 티셔츠를 입고 일행을 앞서 걷는다.
가방을 멘 조그만 체구가 안쓰럽고 귀여워 구멍가게 앞을 지나면서 불러 세운다.
아이스크림을 사주겠단 핑계로 우리도 하나씩 먹을 셈이었는데, 아뿔싸! 가게는 굳게 문이 닫혀 괜히 어른들이 초등학생에게 무안하게 됐다.
“그 다음 수퍼는 어디 있니?” 멋쩍은 제의만 건넨다.
신천초등학교 6학년, 이름이 성철이라고 했던가. 성철이는 어른도 걷기 힘든 먼 길을 돌고 돌아 학교와 집을 오가고 있었다.
“청학동까지는 되게 멀어요.” 성철이의 근심어린 충고대로 ‘TWIN 펜션’ 이정표 아래 적힌 ‘청학동 5㎞’ 거리 표시는 도보여행꾼들을 비웃는 사기였다.
오후 3시 31분, 적어도 1시간 30분이면 닿을 수 있을 거라 안심했는데, 1047번 도로를 따라 예치터널과 남대마을을 지나도록 청학동은 나오질 않았다.
그러더니 길이 나뉘는 판기마을엔 청학동이 4㎞ 남았다는 거리표가 의기양양 서있는 게 아닌가. 거리표대로라면 1㎞를 장장 1시간 16분간 걸어왔단 얘기다.
휴우-오후 5시 35분, 삼신봉터널이 드디어 발 앞에 드러난다.
경남 하동군 청암면 청학동과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 및 거림 관광단지를 연결하는 이 터널(해발 650m)은 사업비 총 493억 원을 들여 97년 말 착공, 6년 5개월 만에 완공했단다.
터널 속 노란 불빛은 안개에 잠식돼 힘이 없다.
터널 길이만 2110m. 보행이 가능한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고 미끄러지듯 터널로 들어선다.
인적이 드문 곳인데다 날씨도 궂어 오가는 차량은 많지 않았지만 차들이 지날 때마다 우이잉- 제트기가 이륙하는 것처럼 지독한 굉음이 들려온다.
보도블록을 밟고 지나는 우리의 발자국도, 앞사람을 부르는 조용한 목소리도, 터널 안에선 몇 배쯤 더 크게 진동한다.
정확히 35분이 지나서야 터널 끝, 어둑한 바깥 공기가 콧속으로 들어온다.
터널 밖 청학동은 산청보다 더 많은 빗줄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말 그대로 ‘길고 긴 어둠의 터널’을 통과한 보람도 없이. 배낭 옆에 꽂아둔 우산을 꺼내기도 하고, 오버재킷을 덧입기도 하며 숙박지인 원묵계 ‘다오실’로 향한다.
오후 6시 10분, 하동쪽 지리산은 비에 섞여 더 어두워져 있었다.
여섯째 날 원묵계~삼성궁~회남재~악양
묵계와 악양 잇는 오롯한 고갯길
누룽지를 끓여 아침식사를 한다.
‘산에서 차 마시는 그대가 신선’이라고 적혀 있었던가. 스스로 “술 마시는 사람 괴롭히기 위해 태어났다”며 웃어 보이는 주인 성낙건씨와 차 몇 잔을 나누고 아쉬운 걸음을 돌린다.
다오실에서 15분쯤 걸어 내려가면 갈림길이다.
오른쪽 청학동 방향으로 들어선다.
회남재를 넘는 일도 쉬운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아스팔트보다는 임도가 편하다.
서당촌으로 변모한 청학동은 한자와 예절을 배우려는 전국의 초등학생들로 빈틈이 없다.
여기저기 운율에 맞춰 한자를 외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마치 조선시대 양반가를 지나는 것처럼 쾌활하게 들려온다.
소문에 의하면 여름 두 달간 청학동 서당촌이 벌어들이는 수익이 결코 적지 않다고.
전날 삼신봉터널을 향할 때처럼 삼성궁으로 향하는 길도 꾸준한 오르막이어서 오전부터 힘에 부친다.
도로변에 앉아 행동식으로 넣어온 복숭아 캔을 꺼내 먹는다.
길은 다시 삼성궁(왼쪽)과 청학동으로 갈린다.
오전 11시, 만덕진인~공공진인~한빛선사~낙천선사를 거쳐 지난 1984년 한풀선사에 의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삼성궁에 닿는다.
매표소에서 표(3300원)를 끊고 배낭을 부탁한다.
빈 몸으로 오르는 길이 한결 수월하다.
주차장을 포함 부대시설은 전보다 훨씬 나아진 듯한데 정작 삼성궁은 이상하리만치 초췌해진 느낌이다.
입구에 세워진 징도 금이 갔고(입구에서 징을 세 번 치면 안내인이 나온다), 내부의 찻집도 문을 닫았다.
기념품 판매점의 창호지는 손톱으로 긁어낸 것처럼 갈기갈기 찢어져 있고, 수행자들도 거의 보이질 않는다.
다오실을 떠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삼성궁을 들러 보고 나왔을 땐 이미 정오. 점심은 회남재에서 먹기로 하고 행동식으로 허기만 달랜다.
아스팔트를 버리고 흙 위를 걸으니 발바닥이 다소 안심하는 눈치다.
삼성궁에서 회남재 정상까지는 약 5.7㎞. 비가 내려 단맛은 덜하지만 길옆으로 붉은 산딸기가 가득하다.
‘산딸기’하면 자동기억장치처럼 ‘원 투 쓰리’가 따라 붙기 마련인데, 주인공이 누군지 내용이 뭐였는지는 하나도 떠오르질 않지만 이 나이쯤 각인되는 산딸기는 그 붉은 빛깔이며 비디오로 유통되던 성인영화의 야릇한 추억과 맞물려 묘한 색채로 다가선다.
1차 때는 오디, 2차 때는 산딸기, 게다가 주부 29년 차의 조은희(51세)씨가 길옆에서 수확한 지리산표 죽순까지 자연이 주는 먹거리가 풍부하다.
회남재 정상에는 “지리산의 입산 거점으로써 이용이 가장 빈번한 경로 중 하나로 지대가 험준하여 정규전의 형태보다는 매복 중 습격하는 전형적인 게릴라전을 벌인 곳”이라 적힌 안내판이 있다.
산청 쪽에서 보급 활동을 하던 빨치산들도 회남재를 넘나들었던 터라 토벌대의 수색작전 및 매복이 자주 행해졌던 지역이란다.
너른 고갯마루 한쪽에 앉아 죽순 넣은 된장찌개를 끓인다.
회남재 곁으로 노란색 표지기가 붙어 있지만 수풀에 싸여 산길(형제봉~시루봉~회남재~칠성봉~구재봉)로 들어설 엄두가 나질 않는다.
이정표대로라면 악양까지 10.6㎞. 잘하면 19번 국도까지도 갈 수 있을 것 같다.
식사를 마치고 2시 50분이 되어서야 회남재를 떠난다.
길 위로 망사 스타킹 같은 뱀허물이 깔렸다.
멧돼지의 흔적도 즐비하고 줄기차게 쏟아지는 계곡 물소리도 우렁차다.
40분이 지나서야 임도가 끝나며 아스팔트가 나타난다.
악양쪽 회남재 진입도로는 유실에 따른 포장 공사중. 완공한지 1년도 안된 포장도로 일부 구간이 장맛비에 붕괴되면서 환경성 검토실시, 책임자 처벌, 예산낭비 지적 등 환경단체의 반발을 사는 곳이다.
이 구간은 지리산생명연대가 뽑은 2005년 ‘지리산 10대 환경뉴스’에도 선정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공사현장 곁으로 난 좁은 길을 따라 간신히 내려선다.
이곳에서 삼성궁이 8㎞, 삼성궁에서 회남재가 5.7㎞였으니 회남재에서 악양 도로까진 3㎞가 조금 못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악양까진 7㎞가 되는 셈인가. 머릿속으로 가야 할 길을 그려보지만 두 다리는 마냥 늘어지며 아프다고 앙탈이다.
분명 내리막인데도, 우리가 걸어온 회남재가 저 멀리 보이는데도 결코 쉽지 않은 길. 도로변에 아무렇게나 앉아 등산화를 벗고 열심히 발바닥을 주물러본다.
결국 오후 6시 37분, 19번 국도를 저 멀리 남겨두고 매암차문화박물관(www.tea-maeam.com) 앞에서 일정을 마감한다.
일곱째 날 악양(매암차문화박물관)~화개~구례
야생차 향기가 가득합니다
모두 사람이 살고 산수가 매우 아름답다’라며 지리산의 수많은 지역 중 화개와 악양을 가장 먼저 소개하고 있다.
현재 악양에는 약 30여 개의 마을이 있는데 “거지가 악양에 들어와 한 집에서 한 끼씩만 얻어먹어도 여섯 집이 남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만큼 넉넉한 땅과 인심을 가진 곳이란 뜻이다.
이곳은 지리산에서 보기 드문 평야다.
악양 평사리는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또는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등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작가 박경리는 2002년 나남출판사에 의해 새롭게 선보인 소설 <토지>의 서문에 “악양 평야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외부에서는 넘볼 수 없는 호수의 수면 같이 아름답고 광활하며 비옥한 땅이다.
(중략) 지리산이 한과 눈물과 핏빛 수난의 역사적 현장이라면 악양은 풍요를 약속한 이상향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오늘 일정은 전날 마지막 발자국을 찍었던 매암차문화박물관에서 시작한다.
42년간 단 한 톨의 비료도 섞지 않았다는 2만여 평의 차밭에서 상큼한 아침 냄새가 난다.
“차는 기호식품입니다.
자기 입맛에 맞는 차가 제일 좋은 명차지요. 그렇지만 명품은 다릅니다.
차를 만드는 사람의 성품이 차의 향기처럼 단아해야 할 테고 살아온 인품만큼 차를 만들어온 연륜도 쌓여야겠지요.” 강동오(41세) 관장이 전하는 차 이야기를 들으며 향긋한 햇차로 입안을 헹궈낸다.
오전 11시 15분, 드디어 19번 국도로 들어선다.
4월 초순 연분홍 꽃잎을 흩날렸을 벚나무 가로수는 온통 초록색. 꽃이 일찍 피고, 일찍 지는 성급한 나무여서, 벚나무 낙엽은 8월 하순부터 거리에 나뒹굴기 시작한다.
버스가 지날 때마다 매연을 섞은 시원한 바람이 분다.
에어컨이 쌩쌩 들어올 저 차 안의 사람들에게 무거운 배낭을 메고 여름을 헤집는 우리들의 모습은 어떻게 비쳐질까.
대단하다, 미쳤다, 할 일 없다, 젊음이 좋다? 일행 중엔 50대도 있고, 또 그들이 가장 선두에 나서고 있으니 나이는 결코 중요하지 않은 모양이다.
최재봉씨는 매일매일 동네 뒷산을 오르내리고, 조은희씨도 쉬는 날마다 산행에 나선다 하니 젊음이 어찌 숫자에 구속될 수 있겠는가. 후미의 젊은 사람들끼리 “출발 전 산삼이라도 드시고 오셨냐?” 짓궂게 물어볼 뿐. 결국은 그 젊음도 얼마나 잘 지키고 유지하냐에 따라 유통기한이 달라지는 셈이다.
최재봉씨의 말처럼 기상청의 일기예보는 일기중계에 불과했다.
비가 오지 않을 것이란 예보를 따라 날짜를 정했지만 마치 월드컵 중계방송처럼 하늘은 시시각각, 역전과 재역전의 묘미를 보여주듯, 빗줄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날이 흐리다 하여 자외선으로부터 자유로운 것도 아니어서 벌써 반팔 밖으로 드러난 팔뚝은 검게 그을렸다.
“자장면이 먹고 싶다”는 강병규씨의 소원대로 화개 영당마을 앞 중국음식점에서 자장면·짬뽕·콩국수를 차례대로 주문하고 텅 빈 뱃속을 차곡차곡 채워본다.
땀 냄새만도 곤욕일 텐데 비까지 섞여 그 냄새가 거의 고문 수준이다.
일부러 야외탁자에서 식사한다.
색색의 배낭커버를 씌운 채 흑설탕을 섞은 미숫가루처럼 누렇게 흐르는 섬진강을 따른다.
19번 국도는 지난해 여름 ‘섬진강 따라 걷기’ 때도 걸었던 길. 멀리 진안 데미샘에서부터 숨가쁘게 달려온 강줄기는 전라도의 산을 그 물에 담고 바다로 향하고 있었다.
오후가 되면서 빗줄기가 제법 굵어진다.
평탄한 도로이므로 그간 걸어온 길보다 편할 것이란 기대도 보기 좋게 빗나간다.
처마 밑 버스 정류장에 잠시 배낭을 내리면 기다렸다는 듯 피에 굶주린 모기들이 새까맣게 달려든다.
멀리 산능선 사이로 구름이 수없이 피었다 사라진다.
노고단은 아예 보이질 않고 종석대만 날렵한 능선을 구름 위로 내보이고 있었다.
“시간만 된다면 더 진행할 수 있다”는 대다수 의견 속에서 나는 차라리 이렇게 내려주는 비가 반가울 지경이다.
더 이상 갈 힘도 없다.
구례읍 진입 전 삼거리에서 화엄사 방향 우측으로 돌아 제일 가까운 민박집에 여장을 푼다.
오후 6시 35분, 지겹도록 힘든 여정이 간신히 끝을 맺는다.
여덟째 날 구례~천은사~시암재~성삼재
다시 원점을 향해 걷는 길
지리산국립공원이 입산통제에 들어갈 만큼 구례 전역은 폭우에 잠겼다.
비는 잠도 없이 아침까지 이어졌다.
오전 8시 55분, 비옷 하나씩을 걸친 채, (젖은 배낭은 민박집에 맡기고) 더울 땐 차라리 벗기도 하며 성삼재로 오른다.
계곡을 타고 흐르는 물은 도로까지 흘러 자박자박 등산화 바닥에 부딪히는 물소리가 요란하다.
빗줄기가 거세지면서 고어텍스 기능도 졸도, 침몰된 타이타닉호처럼 우리의 발가락은 물속에서 허우적대며 길을 잇고 있었다.
오전 10시 50분, 비에 젖은 몰골로 매표소를 통과해 천은사(www.choneunsa.org)로 들어선다.
흥덕왕 3년(828) 인도 승려 덕운조사가 세웠다는 천은사의 창건 당시 이름은 ‘이슬처럼 맑고 차가운 샘물’이 있다는 뜻의 감로사. 이 물을 마시면 정신이 맑아진다고 해서 한때는 1천 명이 넘는 스님들이 지내기도 했다는데, 조선시대에 들어와 점점 퇴락하던 것이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아예 모두 불타 버렸다.
감로사가 천은사로 이름을 바꿔 중건된 건 조선 숙종 4년(1678), 샘가에 나타나던 구렁이를 죽인 뒤부터 물이 솟지 않아 ‘샘이 숨었다’는 의미로 천은사가 되었다고.
비는 오락가락, 오전 내내 변덕을 부리며 폭우와 소강을 반복하고 있었다.
토요일임에도 불구 구례에서 12시 20분에 출발한 성삼재행 버스에는 승객이 하나도 없었다.
수도암 앞에 앉아 젖은 양말을 짜며 무심히 버스를 보낸다.
시암재에서 성삼재는 고작 10여 분 남짓. 안개 속으로 휴게소 건물이 숨바꼭질을 한다.
시원한 석류차로 목을 축이고 마지막 힘을 짜낸다.
두 달에 걸친 도보여행도 머잖아 끝을 맺게 될 터. 하늘도 슬프게 퍼붓던 빗줄기를 잠시 거두고 나흘간의 일정 중 처음으로 푸른 하늘을, 그것도 손수건만큼 작게, 첫사랑의 흔적만큼 짧게, 반짝 드러낸다.
발아래 구례군 산동면 일대의 건물들이 촘촘히 깔렸고, 산자락은 마치 온 산을 우윳빛으로 채색할 것처럼 구름 꽃을 피운다.
바람에선 비에 젖은 산 냄새가 난다.
등줄기를 끈적하게 흐르던 땀방울도 성삼재에 닿고서야 기세가 꺾인다.
오후 3시 13분, 그날 처음 출발했던 지리산 고갯마루엔 끙끙대며 산을 넘는 비구름과 등산화를 벗고 마음껏 숨을 쉬던 우리들의 짓눌린 발이, 같은 바람 속에서 공존하고 있었다.
1차 때를 합쳐 약 167㎞의 길. 두 발로 온전히 걸어보고 가슴으로 만났던 많은 인연들, 바람에 달콤한 입맞춤을 해두고 편안히 산을 떠난다.
그리운 인사 한 조각 남겨둔 채로….
◇2 마지막날, 성삼재를 오르다 말고 강병규(왼쪽)씨와 최재봉씨가 폭우로 수량이 불어나 생긴 임시 폭포에서 물을 맞고 있다. 비가 많이 내린 탓에 이미 등산복이며 등산화가 젖은 상태다.
INFORMATION
지리산자락 도보여행
2차 도보여행은 대략 90.6㎞로 1차(성삼재~반선~마천~금서~쌍재~밤머리재~명상삼거리) 약 76.1㎞ 때보다 체력적으로 더 힘이 들고 일정도 한나절 정도 길다.
1차 때 왕산~필봉산 사이를 잇는 쌍재 임도와 밤머리재를 넘는 길이 고비였다면, 이번에 다녀온 2차는 삼신봉터널까지, 회남재 구간, 성삼재 오르기가 어려운 곳으로 꼽을만하다.
2차 때는 남명 조식의 덕천서원, 최근 서당촌으로 유명해진 청학동(삼성궁), 매암차문화박물관, 천은사 등을 들릴 수 있으며, 덕천강과 섬진강변을 걷게 된다.
일정별 주요 포인트 체크
다섯째 날 1차 때는 일행들의 거주지역 출발시간을 고려, 구례에서 낮 12시 20분발 버스를 타고 낮 1시 10분부터 걷기 시작했지만, 2차는 1차보다 거리가 조금 더 길어 전날 미리 민박(055-972-6901)을 하고 이튿날 아침부터 일정을 소화했다.
출발지는 1차의 마지막 지점 명상삼거리. 이후 덕산까지 이어진 7.5㎞의 길은 중앙선 없는 좁은 왕복 2차선 도로여서 차량 운행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덕산(시천면소재지)에서 우회전해 10분쯤 진행하면 남명 조식선생의 학덕을 기린 덕천서원이 있다.
길옆인데다 별도의 입장료가 없으므로 꼭 들러 볼 것을 권한다.
이후 덕천강을 옆에 끼고 20번 국도로 이어진다.
취재진은 버스 정류장을 겸하는 외공마을 구멍가게 앞 평상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이후 길은 곡점을 지나 ‘TWIN펜션’ 이정표에서 좌회전해 진입한다.
이후 예치터널을 통과, 판기에서 다시 좌회전하면 삼신봉터널이 나오는데 터널 길이만도 2110m로 통과하는데만 35분이 걸린다.
터널을 통과하면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로 취재진은 ‘산에 미친 사람’으로 통하는 성낙건씨의 다오실(055-883-8618)에서 묵었다.
찻집을 병행하는 다오실에는 황토로 지어진 별채가 있다.
다만 묵을 경우 미리 전화로 예약을 하는 것이 좋다.
다섯째 날은 경남 산청군 삼장면 명상삼거리에서 출발해 하동군 청암면 묵계까지 이동했으며 휴식을 제외한 걸은 시간은 6시간 50분, 거리는 26.4㎞이다.
여섯째 날 숙소에서 10분쯤 걸어 내려가면 우측으로 청학동 갈림길이 있다.
청암에서 악양을 넘어가는 길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3군데로 요약할 수 있다.
횡천면 방향으로 직진해 신기마을에서 심곡을 거쳐 악양으로 넘어가는 논골 임도(악양 중간으로 빠지는 장점이 있는 반면 청암에서 아스팔트(1014번) 길을 14㎞쯤 걸어 땀을 빼야 한다), 가장 대표적인 회남재를 넘는 길은 삼성궁 앞과 묵계(농협샘물)에 각각 있는데, 묵계 쪽이 4.3㎞, 삼성궁은 5.7㎞로 묵계가 더 가깝다.
삼성궁(입장료 3300원)을 구경하고 나왔다면 주차장 아래로 회남재 진입로가 보인다.
회남재 임도만 놓고 봤을 때 거리는 약 8㎞, 2시간쯤 걸린다.
취재진은 회남재 정상에서 점심식사를 해결했다.
식수는 미리 챙겨가야 한다.
현재 악양쪽 회남재 입구 도로 유실로 차량 왕복 통행은 불가능하다.
아스팔트 도로 시작 부분에서 매암차문화박물관(악양면소재지)까지는 도보로 약 2시간쯤 걸린다.
시간과 체력이 허락된다면 3.4㎞쯤 더 걸어 19번 국도에서 일정을 마칠 수도 있다.
다만 악양에는 숙박시설이 그리 많은 게 아니어서 택시나 버스로 화개 혹은 피아골24시한증막(061-783-7775)에서 묵고 이튿날 일정을 이어가는 것도 괜찮다.
취재진은 기자가 살고 있는 화개면 용강리 화랑수마을에서 1박 후 이튿날 매암차문화박물관으로 회귀해 일정을 진행했다.
여섯째 날은 하동군 청암면에서 시작해 악양면에서 끝을 맺었다.
휴식을 제외한 걸은 시간은 5시간 50분, 거리는 대략 20㎞이다.
삼성궁을 둘러보는 시간만 1시간이 걸렸고, 막판 악양을 벗어나는 길이 지루하다.
일곱째 날 매암차문화박물관(이하 매암)에 들러 차를 마시느라 출발이 다소 지연되었다.
그러나 출발시간을 늦추더라도 매암의 차밭을 배경으로 따스한 차 한 잔 마셔볼 것을 권한다.
매암을 나와 도로를 버리고 평사리 무딤이들 사잇길(시멘트 포장)로 지나는 것이 운치 있다.
너른 논 사이에 서있는 두 그루의 소나무를 배경으로 사진 찍는 것도 추억이 된다.
이후 19번 국도를 만나면 길은 섬진강을 옆에 끼고 큰 오르막이나 내리막 없이 평평하게 이어진다.
19번 국도는 차량 통행이 많은 것에 반해 인도가 확보되지 않은 곳이므로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
대체로 관광지여서 중간 중간 음식점이 많다.
취재진은 화개 직전 영당마을 앞 중국음식점에서 자장과 짬뽕 등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이날은 구례읍으로 빠지기 전 우측 화엄사 방향으로 꺾어 가장 가까운 민박집에서 묵었다.
날도 어두웠지만 큰비로 더 이상 진행이 불가능했다.
남악주유소 옆 ‘대중약방민박(061-782-4026)’. 큰방 하나를 4만원에 주고 들어갔지만 나머지 방 3개도 개방해둔 터라 여유있게 묵었다.
일곱째 날은 하동군 악양면에서 시작해 전남 구례군 마산면 냉천리에서 끝을 맺었다.
휴식을 제외한 걸은 시간은 약 6시간 30분, 거리는 27㎞이다.
여덟째 날 지리산국립공원이 통제될 만큼 폭우가 쏟아져 배낭을 민박집에 맡기고 빈 몸으로 성삼재를 올랐다.
냉천에서 화엄사 쪽으로 가다가 ‘KT지리산수련관’ 방향으로 좌회전한다.
천은사 직전 매표소에서 국립공원 입장료와 문화재관람료를 더한 3200원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
따라서 천은사는 꼭 들러 보는 것이 좋다.
이후 2시간 이상 꾸준한 아스팔트길을 걸어 올라가면 시암재휴게소에 닿는다.
시암재에선 마지막 지점이자 1차 구간 출발점인 성삼재가 가깝게 올려다 보인다.
두 휴게소간 거리는 1㎞가 조금 넘으며 10분 남짓 걸린다.
취재진은 성삼재에 마지막 발자국을 찍고 일행들의 상경 교통편을 고려, 산 넘어 전북 남원시 산내면에서 뒤풀이를 하고 헤어졌다.
여덟째 날은 구례 마산면 냉천에서 시암재~성삼재를 올랐으며
휴식을 제외한 걸은 시간은 4시간 20분이다.총 거리는 17.2㎞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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