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컬트여행지](7)‘카미노 데 산티아고’800㎞ 도보순례(3) | ||||||
입력: 2007년 02월 15일 09:31:13 | ||||||
작은 배낭 하나에 모든 걸 담아 집을 떠날 수 있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 산티아고로 가는 길에는 풍경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었다. 달팽이만큼이나 느린 내 속도에 기꺼이 맞춰주고 바르셀로나의 집에 1주일이나 머물게 해준 카를로스가 첫 친구였고, 발바닥의 상처를 소독해주고 비상약을 챙겨주던 독일인 아그네스 아줌마, 늘어난 십자인대를 무시한 채 불굴(!)의 의지로 계속 걷겠다는 나를 설득해 병원으로 데려간 아르투르 할아버지도 있었다.
그리고 봄날의 꽃처럼 피어나던 어린 처녀들이 있었다. 길 위에서 만난 청년의 열렬한 구애를 받던 스무살 처녀 주느비에브, 혼자서는 아무것도 안 하려고 해 무엇이든 혼자 하고 싶어 하던 나를 지치게도 했던 오사카의 ‘시티걸’ 나오코. “걷기 시작한 지 1주일 만에 7㎏이 빠졌어!”라며 환호해 쇠고기 한 근 무게의 피하지방조차 내버리지 못한 나를 기죽이던 헝가리 처녀 나래타. 말은 한 마디도 통하지 않았지만 만날 때마다 꼭 껴안아주던 이탈리아인 나디아 아줌마, 마흐진느. 그리고 미처 이름을 묻지 못한, 혹은 기억하지 못하는 수많은 얼굴들.
그때, 저마다 하던 일을 잠시 접고 산티아고로 향했을 때, 우리는 모두 간절한 질문 하나씩을 품고 있었다. 삶이 던진 질문들. 그 질문에 정직하고 용감하게 답하기 위해 집과 일터와 배움터를 떠나 왔었다. 우리는 아직 젊었던 만큼 진검승부로 삶과 마주하고 싶었다. 비겁하게 회피하거나 도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산티아고로 향하는 길에 오른 건 고독 속에 자신과 마주하며 내면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저마다의 선택이었다. 한 달을, 혹은 그보다 더 긴 시간을 땀에 젖고, 외로움에 흔들리며 걸었다. 모두들 발바닥은 물집투성이였고, 어깨나 무릎이 시큰거렸다. 그렇게 걷다가 뒤를 돌아보면 웃는 얼굴이 있었다. 나를 향해 미소 짓는 타인의 얼굴이 그토록 깊은 위안이 될 수 있음을 그때 알았다. 우리는 다 가난했고, 배낭 속에 든 것도 없었고, 입성도 남루했지만, 마음만은 우주를 품고도 남을 만큼 컸다. 그래서 먼 길을 걸어 도착한 산티아고의 대성당 앞에서 그토록 뜨겁게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끌어안을 수 있었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포옹과 가장 따뜻한 입맞춤을 나누던 그때, 우리는 모두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고, 저마다 활짝 핀 꽃이었다. 결국 어떤 곳을 특별하게 만드는 건 그 곳에 함께 있었던 이들과의 기억이다. 말을 더해 무엇 하리. 산티아고의 경험은 글이나 사진으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체험으로 공감되는 것인데!
‘산티아고의 길’. 스페인의 수호성인인 야곱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이어지는 길을 말한다. 중세부터 내려온 길로 다양한 경로가 있으나 가장 인기 있는 길은 ‘카미노데프란세스’다. 카미노데프란세스는 프랑스-스페인 국경인 생장피드포르에서 시작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 산티아고까지 이어지는 800㎞의 길을 말한다. 원래는 가톨릭 성지순례길이었으나 현재는 전 세계에서 도보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찾아온다. 〈글·사진 도보여행가 김남희 www.skywaywalk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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