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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암동 백사실 산책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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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야흐로 걷기 시대다. 중앙일보 조인스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7명이 주 1회 이상 걷기 운동을 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문제는 장소. 응답자 절반 가까이가 주로 찾는 곳으로 공원.산책로를 꼽았다. 그 외엔 집 주변 도로, 학교 운동장, 출퇴근로 정도가 전부다. 아무리 걷기가 몸에 좋다지만 매일 뻔한 장소만 오가는 것은 지루하다. 어디 신선한 코스는 없을까? 그래서 week&이 나섰다. 이름하여 '등잔 밑 서울 산책'. 고정관념만 버리면 등잔 밑에 숨겨진 개성 있는 산책로를 찾을 수 있다. 산책이란 "우리들이 찾을 생각도 하고 있지 않은 것을 발견하게 해주는 수단(프랑스 작가 장 그르니에)"이라지 않은가. 운동화 끈 조여 매고 함께 떠나 보자.
글=김한별 기자 <idstar@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부암동 백사실…도롱뇽·버들치 뛰노는 '청정 계곡'
서울 도심이 온통 콘크리트 숲이란 생각은 틀렸다. 광화문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멋진 트레킹 코스가 있다. 청와대 뒤편 백사실은 서울 도심에 숨은 '비밀의 화원'. 워낙 깨끗해 도롱뇽.버들치도 산다고 소문난 청정 계곡이다. 한때 노무현 대통령이 찾았다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금세 관심 밖으로 멀어졌다. 지금은 인근 부암동.세검정 주민 정도가 찾을 뿐이다. 위치는 유명한 중국식당 하림각 맞은편. 빌라가 빽빽이 들어찬 언덕 뒤에 숨어 있다.
찾아가는 길은 여럿이다. 최단 코스는 빌라촌 사이로 오르는 백석동 길. 하지만 깎아지른 언덕길이라 산책에는 적당치 않다. 난이도로 보나 '걷는 맛'으로 보나 북악산 산책로에서 내려오는 코스가 최고다. 출발은 자하문 터널 위 부암동사무소. 창의문 쪽으로 오르다 보면 왼쪽에 북악산 산책로 표지판이 나온다. 표지판을 따라 살짝 경사진 길을 걷다 보면 금세 하늘이 뻥 뚫린다. 서울 도심을 발 밑에 두고 걷는 '하늘길 산책로'만의 매력이다.
잰걸음으로 20여 분,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밸 때쯤이면 군 초소 앞 삼거리에 닿는다. 여기서 왼쪽 내리막 길로 몇 발짝 떼면 진짜 별천지가 펼쳐진다. 내내 따라오던 별장풍 저택들이 사라지고 불현듯 한적한 산골마을이 나타나는 것. 푸른 상추가 자라는 건강한 밭, 그 곁을 흐르는 맑은 냇물…. 서울에 몇 안 남은 농사 짓는 마을 '뒷골'이다. 여기서 손 한뼘 넓이의 밭고랑 길로 5분쯤 더 내려가면 백사실에 닿는다.
백사실은 백사(白沙) 이항복의 별장터였다는 얘기가 전해 오는 곳. 실제로 물 마른 연못 터 곁엔 옛 건물 주춧돌이 남아 있다. 하지만 백사실의 진수는 유적보다는 계곡 그 자체. 서늘한 바위틈, 짙은 나무 그늘 아래 몸을 누이면 들리느니 새소리. 꿩소리 뿐이다. 한마디로 자신이 서울하고도 종로에 있다는 사실이 도통 믿기지 않는 곳이다.
■Tip=하림각 앞에 0212번.1020번.1711번 등 시내버스가 많이 선다. 북악산 산책로 출발점 인근에 손만두집(02-379-2648)이 유명하다.
국립서울현충원…참배객만 가는 곳?…나들이 코스로도 굿
호국의 달 6월, 가장 분주한 곳 중 하나가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이다. 유가족은 물론 일반인의 추모 행렬이 줄을 잇는다. 하지만 꼭 참배할 때만 가야 할까? 서울현충원은 여의도공원의 7배 규모. 묘역 뒤편으로 돌아가면 참배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며 조용히 산책할 만 한 곳이 많다. 50여 년간 훼손 없이 보전된 울창한 숲과 연못, 땀을 식혀갈 만 한 오래된 절집까지 있다. 아이들 몸가짐만 잘 단속하면 한 나절 가족 나들이 장소로 부족함이 없다. 무명용사 묘에 꽃 한다발 바치는 정성과 묵념을 잊지 않는다면 순국선열도 대견하다 고개 끄덕이실 게다.
산책 코스는 정문에서 출발한다. 정면의 현충문을 향해 걷다 제1 묘역에서 우회전, 5 묘역까지 쭉 올라간다. 길 끝에서 왼쪽으로 돌면 오르락내리락 살짝 굴곡이 있는 길이 서쪽 묘역으로 이어진다. 경찰충혼탑을 지나 조금 더 걸으면 호국지장사로 들어가는 샛길이 나온다. 정문에서 대략 40여 분 거리. 호국지장사는 현충원보다 더 오래된 이 땅의 터줏대감이다. 지금은 전각 몇 채 남아 있을 뿐이지만 신라시대 도선 국사가 창건한 고찰이다. 입구에 약왕보살 약수터가 있다. 시원한 약수 한 바가지면 걸으며 흘렸던 땀이 순식간에 날아간다.
지장사를 나와 다시 서쪽으로 좀 더 걸으면 '추모의 숲'이 나온다. 일반 공원이 아니니 떠들썩 뛰노는 것은 금물. 하지만 아름드리 나무숲에 작은 연못까지 있어 아이와 잠시 쉬었다 가기엔 딱이다. 좀 더 경관 좋은 곳을 찾는다면 제 1 장군묘역이 최고다. 원래 서울현충원은 뒤로 서달산을 등지고 앞에 한강이 펼쳐진 배산임수의 천하 명당. 그중에서도 제 1 장군묘역은 가장 높은 장군봉에 위치해 한강 조망이 끝내준다. 소나무로 둘러싸인 돌 의자에 앉으면 바로 앞 동작대교는 물론 멀리 반포대교까지 한눈에 내려다 뵌다.
■Tip=입장료.주차료가 없는데도 주차 공간이 넉넉하다. 특별히 추모객이 많은 날이 아니라면 차로 이동하며 중간 중간 산책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호국지장사나 제 1 장군묘역 바로 앞에도 차를 세울 수 있다. 아이와 함께 갔다면 돌아 나오는 길에 야외 유물전시관에 들러 보자. 한국전쟁 당시의 탱크.비행기들을 전시하고 있다.
서울대 관악캠퍼스… '걷고 싶은 거리'연인에 딱~
서울대는 넓다. 건물이 들어선 곳만 105만7856㎡(32만 평), 캠퍼스를 한 바퀴 도는 순환도로가 5.3km나 된다. 하지만 옛날엔 그게 전부였다. 특색 없이 네모 반듯반듯한 건물, 큰 나무 하나 없는 삭막한 조경…. 70년대 현재 위치로 옮겨온 이래 서울대는 '넓기만 하고 멋없는 캠퍼스'의 대명사였다. 하지만 달라졌다. 새 건물과 편의시설이 속속 들어서면서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모던한 캠퍼스로 변신 중이다.
정문에서 왼쪽으로 5분 남짓 오르면 미술관(snumoa.org, 880-9504)이 나온다. 지난해 문을 연 우리나라 최초의 대학 미술관. 하지만 그보단 네덜란드의 스타 건축가 램 쿨하스가 설계한 기하학적 외관으로 더 유명하다. 밑동이 도려진 직윤면체 형태로 전면부가 허공에 둥둥 떠 있다. 이달 말까지 20세기 최고의 독일 작가 중 한 명인 막스 베크만 전이 열린다. 입장료는 일반 3000원, 관악구민 2000원. 시립미술관도 1만원 넘는 전시가 수두룩 한 걸 고려하면 상당히 저렴한 가격이다.
미술관에서 좌회전, 위쪽으로 올라가면 경영대가 나온다. 이곳에서 출발, 문화관 광장~중앙도서관~공과대학~공대 폭포에 이르는 1.2㎞ 구간은 지난해 서울대에서 조성한 '걷고 싶은 거리'. 차와 이륜차 통행이 금지된 보행자 전용 도로다. 양 옆으로 느티나무.왕벚나무.청단풍 등이 우거져 제법 운치가 있다. 특히 야간엔 나무 사이로 은은한 경관 조명이 들어온다. 느릿한 걸음으로 30~40분 코스.
공대에서 순환로를 타고 내려오면 좌측에 새로 지은 자연과학대 건물이 나온다. 지난 3월 이곳 연구동 2층에 비빔밥 전문점 '소반'과 커피전문점 '투썸 플레이스'가 문을 열었다. 야외 테라스 테이블에 앉으면 코앞에 관악산 계곡이 그림 같이 펼쳐진다. 여느 리조트 야외식당 못잖은 경관을 자랑하는 곳으로 인터넷에서도 화제가 됐다.
■Tip=주차료가 비싸다. 최초 30분에 1500원, 그 후엔 10분에 300원씩 올라간다. 지하철 서울대입구역.낙성대역.신림역에서 교내로 들어오는 시내버스를 이용하는 편이 낫다. 홈페이지(www.snu.ac.kr)에서 교통편을 안내해 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