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걷기 열풍이 뜨겁다. 이런저런 이유로 걷기에 홀린 사람들이 갈수록 늘고 있는 것.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수십만 명의 걷기 애호가가 한강 둔치, 남산 순환로 등 집 주변의 걷기 명소를 찾아 나서고 있다. 올해는 서울을 비롯 전국 각지에서 수백여 종의 걷기 대회가 열릴 예정이라고 한다. 걷기 운동과 문화답사를 결합한 ‘도보여행’은 이제 새로운 여행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서점가엔 매달 수십 권의 걷기 관련 서적이 쏟아지고 있다. 이제 걷기가 우리 몸에 좋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상식이다. 하지만 걷기가 마음과 뇌에 놀라운 효과를 미친다는 사실까지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뇌를 싱싱하게 하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비결을 담은 <걸을수록 뇌가 젊어진다>(전나무숲 간행)는 책의 주요 내용을 간추려 소개한다. 일본의 뇌과학자 오시마 기요시가 쓴 이 책에서는 웃으며 걷기, 음악 들으며 걷기, 사진 찍으며 걷기 등 즐겁게 걸을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소개하고 있어 걷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레 생기게 만든다.
▲걷기는 금연 치료제다 최근 의학계에서는 흡연에 따른 니코틴 중독을 의사의 치료를 필요로 하는 ‘질병’으로 간주하고 있다. 따라서 금연을 생각하는 사람은 먼저 의사와 상담을 한 뒤, 치료를 받아야 한다.
여기에서는 흡연이 얼마나 뇌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지 구체적으로 알아보기로 한다. 아무쪼록 이 글을 읽고 금연의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뇌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는 내용이므로, 담배를 끊은 사람 혹은 비흡연자라도 대략적으로 훑어보기 바란다. 흡연의 해악에 대해서는 많은 매체가 다루고 있으므로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는 뇌에 미치는 해악을 중심으로 알아보자.
뇌는 생명을 유지하고 지적 활동을 영위하는 총사령탑이기 때문에 안전 시스템이 철저하게 구축되어 있다. 뇌로 이어지는 혈관에는 군데군데 ‘관문’이 있어서, 이물질의 출입을 철저하게 차단한다.
뇌의 유일한 에너지원은 포도당인데, 뇌가 단 하나의 영양소만을 이용하는 이유도 안전 시스템을 염두에 둔 조치다. 그러나 이중·삼중의 잠금장치가 마련된 뇌를 뚫고 들어가는 막강한 실력자(?)가 있다. 바로 마약류와 각성제, 그리고 담배의 니코틴이다. 담배에 함유된 니코틴은 혈액에 녹아들어 교묘하게 뇌의 관문을 뚫고 들어가, 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니코틴은 뇌 속의 쾌감물질인 도파민을 늘리는 작용을 한다. 담배를 피우면 기분이 좋아지고 정신이 또렷해지는 느낌을 받는 이유는 뇌에 침입한 니코틴이 인위적으로 도파민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쾌감에 약한 뇌는 니코틴의 유혹에 점점 빠져들게 된다. 일단 니코틴의 덫에 걸리면, 끊고 싶어도 끊을 수 없는 니코틴 중독 현상이 나타난다.
니코틴 중독이 뇌에 무시무시한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흡연자의 경우 니코틴 자극이 아니면 도파민이 제대로 분비되지 않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비흡연자가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감탄할 때, 흡연자는 아무 느낌도 받지 못한다. 담배를 한 대 입에 물어야 그때 비로소 경치가 좋다는 느낌을 받는다. 여행지에서 담배를 물고 있는 사람을 보면 ‘쯧쯧, 가엾게도 니코틴의 덫에 걸렸구나!’하고 절로 고개를 가로젓게 된다.
게다가 흡연은 혈관을 수축시키는 작용이 있다. 대량의 산소를 필요로 하는 뇌에 충분한 혈액이 공급되지 않으면, 그 참담한 말로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금연을 생각하고 있다면, 의사의 상담과 함께 걷기를 병행하도록 추천하고 싶다. 만약 걸어도 상쾌한 기분을 느끼지 못한다면, 당신의 뇌는 니코틴 자극이 아니면 도파민이 분비되지 않는 상태에 있는 것이다. 혹 자신의 뇌가 니코틴의 지배를 받는다는 무시무시한 사실을 깨달았다면, 하루라도 빨리 끊어라. 싱싱한 뇌를 위해서 담배는 반드시 끊어야 한다.
▲걷는 사람은 뇌가 젊어진다 뇌와 근육에는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쓰면 쓸수록 단련된다는 것이다. 다리 근육은 걸으면 탱탱해진다. 마찬가지로 뇌도 쓰면 쓸수록 좋아진다. 강연회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으레 하는 질문이 있다. “그럼 건망증도 고쳐지나요?”
물론 건망증도 좋아지지만, 그보다 더 큰 효과가 있다. 건망증을 두려워하지 않는 긍정적인 마음, 깜빡 잊어도 다시 기억하고자 하는 의욕이 샘솟는다. 이 점이 중요하다. 건망증 자체는 무서운 질병이 아니다. 우리의 뇌는 쉽게 잊을 수 있게끔 만들어졌다. 우리는 잊는 것을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기억하면 된다는 의욕이 사그라지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걷지 않으면 다리 근육은 부실해진다. 마찬가지로 뇌도 쓰지 않으면 퇴화한다. 귀찮아서, 소심해서 등등의 이유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다리도 뇌도 녹슨다. 그러므로 매일 조금씩이라도 의식하면서 걸어라. 의식해서 걷는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매일 어떻게 하면 걷기 운동의 횟수를 늘릴 수 있을까, 의식하면서 걷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걸을 때 막연하게 다리를 운반하는 것이 아니라 오감을 총동원해서 걷기 자체를 즐기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의식한다면, 당신은 평생 젊고 생기 있는 인생을 보낼 수 있다.
현대인은 거의 걷지 않는다. 불과 100년 전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걷는 것이 중심인 생활을 했다. 일부러 걷기를 취미나 운동으로 삼지 않아도 늘 걸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의식하지 않으면 굳이 걸을 필요가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골프를 치지 않는 필자는 골프가 걷기에는 도움이 되는 운동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요즘 골프장에서는 카트로 이동하는 것이 상식이라고 한다.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지 않는가! 이처럼 지금은 의식하지 않으면 걸을 수 없는 시대다. 마찬가지로 뇌도 의식하지 않으면 사용하지 않게끔 되어 있다.
아침부터 밤까지 뒹굴뒹굴 누워서 텔레비전만 보는 것도 가능하다. 출출하면 냉장고에서 뭐든 꺼내 먹으면 된다. 많은 사람들이 보내는 휴일 풍경은 머리를 쓰지 않는 생활의 대표 사례다. 이와 같은 생활 패턴은 ‘거의’라고 할 정도로 두뇌를 쓰지 않는다.
그렇다고 뇌에 기분 좋은 휴식을 선사하는 것도 아니다. 뇌를 쉬게 한다는 것은 뇌가 쾌감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맛있는 요리를 만든다든지, 경치 좋은 곳에 나들이를 간다든지, 취미 생활에 몰두하는 등 능동적으로 생활하며 뇌에 기분 좋은 자극을 주는 것이 뇌에 진정한 휴식을 주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머리 정수리 좌우로 체성 감각령(피부·점막에서의 압각·촉각·온각에 대응하는 감각령의 하나)이라는 부위가 있다. 우리 몸에서 움직이는 부위, 즉 손과 발과 턱을 통해 전해진 정보가 도달하는 곳이다. 걷는 것과 먹는 것, 그리고 수작업은 모두 체성 감각령을 자극한다. 체성 감각령을 자극함으로써 뇌 전체가 활성화되는 것이다.
체성 감각령에 전해지는 정보 가운데 50%는 턱에서, 나머지 50%는 손과 발에서 각각 25%씩 전해진다. 발이 움직이면, 손도 움직이고, 배도 고프다. 바른 식생활이 걷기와 더불어 뇌의 나이를 젊게 만드는 일등공신임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필자의 취미는 즐겁게 걷기와 맛있게 먹기다. 그 덕분에 여든이 넘었어도 여전히 건강하다. 1년에 한 번 건강검진을 받는데, ‘이상 없음’이라는 기분 좋은 결과를 듣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신경 쓸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생활이 계속된다면 나이에 상관없이 눈 깜짝할 사이에 늙어 버린다. 몸과 마음이 모두 함께 늙는다.
젊음이란 나이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다. 의욕만 있다면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인생을 젊게 살 수 있다. 반대로 의욕이 없으면 20대도 노인이나 다름없다. 뇌가 젊은 사람이 진정한 젊은이다.
▲스트레스 쌓이면 일단 걸어라 현대인은 스트레스와 함께 살아간다. 스트레스로 숨 막힐 때, 치유법은 없는 것일까? 역시 “일단은 걸어 보라!”고 조언하고 싶다. 물론 걷는 동안 스트레스를 말끔히 씻어낼 수는 없다. 그래서 ‘일단은’이라는 단서가 붙은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콩알만한 스트레스를 집채만큼 키워간다. 하지만 일단 걸어 보면 콩알만한 스트레스가 콩알만한 크기로 보인다. 게다가 걷다 보면 기분이 한결 가벼워져서 ‘그래 다시 한 번 부딪쳐 보는 거야’ 하며 마음을 다잡을 수 있다. 스트레스에 맞서고자 하는 힘이 솟는 것이다. 도대체 걸으면 힘이 샘솟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서는 걷기가 왜 스트레스 해소에 효과가 있는지 알아보기로 하자.
뇌가 3층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앞에서 설명했다. 우리의 뇌는 이 세 가지 층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계해 생명 유지에서부터 지적 활동까지 다양한 임무를 수행한다. 그런데 이 제휴 업무가 삐걱댈 때가 있다. 바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다.
인간의 뇌는 중심부에서 표피 쪽으로 진화했다. 따라서 진화의 관점에서 보자면 본능을 관장하는 대뇌변연계는 대뇌신피질에게는 하늘 같은 ‘선배님’에 해당한다. 당연히 본능이 원하는 대로 보다 자유롭게 살고 싶어하는 것이 본능의 뇌인 대뇌변연계의 바람이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울고 싶을 때 마음껏 울고 싶어한다. 화가 나면 그 자리에서 마구 화를 내고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이런 동물적인 본능을 인간다운 이성으로 누르는 것이 새내기인 대뇌신피질이다. 대뇌신피질은 본능보다는 의무와 책임, 도덕을 중요시한다. 목표 달성과 발전을 진지하게 모색한다. 단지 생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휘관으로서 대뇌변연계에 지시한다.
“아무리 화가 나도 대뇌변연계가 좀 참아. 화가 난다고 해서 때려부수면 그게 동물이지, 사람이야?” 까마득한 후배에게 이런 훈계를 들으면 기분 좋을 리는 없겠지만, ‘인간의 덕목’을 강조하면 그 명령을 따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런 일이 매일 우리의 뇌 속에서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스트레스의 원인이다.
‘에이 설마, 그런 일이 정말 내 머릿속에서 일어난단 말이야?’하며 고개를 젓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럼 좀더 쉬운 예를 들어보자.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스트레스가 쌓이면 술로 푸는 경향이 있다. 알코올은 뇌의 3층 구조 가운데 가장 바깥쪽에서부터 중심부를 향해 신경을 마비시켜 들어간다. 따라서 제일 먼저 마비되는 곳이 지의 사령탑인 대뇌신피질이다. 그렇기 때문에 혀 꼬부라진 소리로 했던 말 또 하고 실수를 하게 되는데, 여기서 더 취하면 이성이 실종되고 본능이 고개를 쳐든다.
평소에는 점잖던 사람이 술만 취하면 폭군이 된다거나, 엉엉 울거나 소리치는 것은 본능의 뇌가 자유롭게 활동을 개시하고 있다는 증거다. 지나친 과음은 인간을 동물로 만든다. 술보다는 걷기를 통해 스트레스를 발산하는 것은 어떨까?
걷는다는 것은 다양한 정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집 안에서는 파란 하늘과 청명한 기운을 느낄 수 없다. 언덕을 오르는 기쁨도 맛볼 수 없다. 나뭇가지에 앉은 작은 새도 볼 수 없고, 길가에 핀 꽃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지도 않는다.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도 느낄 수 없다.
바로 이런 다양한 체험이 우리의 지친 뇌를 기분 좋게 마사지해준다. 그러니 일단은 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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